안미경중의 종언… “한미 제조 동맹으로 中 기술 굴기에 대응해야”
산업·경제 전문가가 본 한미회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 시각) ‘이제 안미경중(安美經中)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 열린 현지 초청 강연에서였다. 외교적 수사일 수도 있지만, 기로에 선 한국 경제의 현실이 투영된 고백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한국이 과거처럼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적 실익은 다른 곳(중국)에서 취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최근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 재편이 본격화되면서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 어긋나게 행동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 기업들은 1500억달러에 이르는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자동차와 로봇, 차세대 원전, 항공 등 전방위적인 투자였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는 이를 “탈(脫)중국 공급망을 추구하며 한국 같은 동맹국 제조업을 끌어들이는 미국의 신(新)제조 동맹 구상”이라고 말했다. 미·중 경쟁과 공급망 위기가 ‘경제 안보’ 시대를 열었다는 의미다.
미국 주도 경제 안보의 핵심은 ‘미국에 투자하지 않으면 미국 시장 접근도 없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로선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선 대규모 투자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동시에 국내에선 연쇄적인 친노동 입법으로 인해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저성장에 직면한 기업들은 탈(脫)한국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전문가들은 “신제조 동맹은 우리 경제의 글로벌 확장이라는 기회 측면과 산업 공동화라는 위기 요인을 모두 품고 있다”고 말한다.

◇한미 신제조 동맹 위기이자 기회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기회’라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에 투자하면 한국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는데 지금 같은 통상 환경에서 우리 기업이 대미 투자를 안 하고 국내 투자만 늘려 어디다 수출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중국과 경쟁이 격화된 상황에서 만약 국내 투자와 생산만 늘리면 ‘수출할 시장이 없는 과잉 생산’에 봉착한다는 뜻이다. 정 원장은 “그런 점에서 대미 투자가 국내 사업을 강화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제조 동맹은 우리의 제조 경쟁력을 높일 기회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병연 교수는 “미국의 중국 견제가 장기화하면 한국으로선 기술로 치고 올라오는 중국과의 격차를 벌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런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한국이 단순히 제조업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데 그치지 말고 설계와 엔지니어링 같은 미국의 기술 역량을 우리 것으로 내재화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동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강점인 다양한 산업 포트폴리오를 활용해 AI(인공지능)와 제조업을 결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미 협력은 한국이 국제적인 AI 제조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미 투자, 국내 경제에 도움”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내 산업 공동화가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허정 서강대 교수(한국국제통상학회장)는 “미국은 조립 공장뿐 아니라 소재, 부품, 기자재 등 모든 것을 미국 내에서 해결하려 한다”며 “과거 대중 투자와 달리 대미 투자는 한국 내 투자를 줄이는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대미 투자 성과, 즉 이익을 어떻게 나눌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번에 그 부문을 어떻게 할지 확정하지 못한 건 향후 협상에서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허 교수는 “포항, 울산 등 동남쪽 제조업 클러스터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할 수 있다”며 “아무리 동맹을 해도 우리가 굶는 상태가 된다면 문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미 투자가 국내 산업 공동화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이 국내로 들어와 성장의 선순환을 그릴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국내 투자 환경을 개선해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국에 진출할 정도로 규모를 갖춘 대기업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 더 성장할 여지가 있지만 미국에 갈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은 결국 대기업과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장 원장은 “양극화를 줄이고 한미 협력을 기회로 만들기 위해선 국내 첨단 제조 기반을 유지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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