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 만에 일본 ‘조세이 탄광’ 희생자 유골 발견

임명진 2025. 8. 2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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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136명이 바다에 수몰된 일본 조세이 해저 탄광에서 83년 만에 당시 희생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다.

당시 일본 시민단체인 '조세이 탄광의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하 일본 시민단체) 의 취재를 통해 136명의 조선인 희생자 중에서 확인 가능한 경남 출신은 34명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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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뼈 추정 3점 이어 두개골 1점 추가 수습
경남출신 희생자 여부 철저한 조사 규명 필요
해저 갱도 붕괴 사고로 조선인 136명 희생
사천·고성 등 경남 출신 34명이나 포함돼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136명이 바다에 수몰된 일본 조세이 해저 탄광에서 83년 만에 당시 희생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다. 희생자 중 상당수가 경남 출신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것 만큼 발견된 유골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 26일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희생자 귀향 추진단은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의 니시카와 해변에 위치한 조세이 탄광 사고 현장에서 수중 조사를 통해 두개골 1점을 추가로 수습했다고 밝혔다.

이곳에는 전날에도 사람의 뼈로 추정되는 물체 3점이 발견됐다.

본보는 2014년 7월 중순, 일본 현지를 찾아 조세이 해저 탄광의 비극을 현장 취재했다.(2014년 8월 14일 자 20면 보도, '아직도 풀리지 않는 恨-평화로운 바다, 그 수면 아래서 벌어진 참혹의 역사')

이번 조세이 해저탄광의 희생자 발굴 작업과 맞물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 본보가 보도한 기사를 소환했다.

조세이 탄광은 1942년 2월3일 오전 9시께 해저 갱도가 붕괴하면서 작업 중이던 조선인 노동자 136명과 그들을 감시하던 일본인 47명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 수몰된 비극적인 사고 현장이다.

조세이 탄광에는 1939년부터 400여 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1일 2교대로 사고 당일까지 해저 갱도에서 석탄을 채굴했다.

당시 일본 시민단체인 '조세이 탄광의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하 일본 시민단체) 의 취재를 통해 136명의 조선인 희생자 중에서 확인 가능한 경남 출신은 34명으로 파악됐다. 다른 출신지는 경북 60명, 충남 9명, 전남 4명 등이다.

특이하게도 부산항을 통해 일본에 건너간 조선인 노동자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경남보다 경북 출신이 더 많았다.

조세이 탄광은 우베시의 가장 동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길이 1010m의 해저 갱도를 가지고 있었다. 현지 일본인들이 '조선 탄광'이라고 불릴 정도로 조선인들이 많았다.

해저 갱도의 경우 지표면과의 거리를 100m 이상 둬야 하지만 조세이 탄광은 25~30m 정도에 불과했다. 갱도를 뚫을수록 그만큼 붕괴 위험이 컸다.

현장에서 취재를 도왔던 일본 시민단체의 우치오카 사다오 당시 공동대표는 "위험하다는 소문 때문에 일본인들은 일하기를 꺼렸다"라며 "증언에 따르면 그때 갱도 위쪽의 바다를 지나는 배의 엔진소리가 들릴 정도로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조선인들이 많이 동원됐다"라고 말했다.

그가 제공한 조선인 노동자 명단을 보면 조세이 탄광에 도착한 날을 기점으로 1940년 5월 10일 31명(출신지 미기재), 1940년 9월21일 72명(사천군, 고성군), 10월 17일 82명(사천군, 고성군), 10월 30일 46명(사천군, 고성군), 11월 30일 49명(출신지 미기재), 12월 20일 42명(출신지 미기재) 등 경남에서도 사천군과 고성군에서 집중적으로 징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조세이 탄광의 비극은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여러 사건의 하나로 치부돼 한일 양국의 어느 정부도 이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이번 발굴이 80여 년 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희생자의 수습과 진상 규명이 이뤄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본보 2014년 8월 14일 자 20면 보도된 조세이 해저탄광 붕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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