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30년, 소멸의 늪 넘어라
실질적 분권 완성 원년 삼아 미래 30년 재도약 박차

1995년 단체장 직선제 실시 이후 주민은 직접 대표를 선출하며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져왔다. 그간 지방자치는 주민 삶의 질 개선과 지역 맞춤형 정책 실험을 가능케 했지만, 동시에 지방은 저출산·고령화와 수도권 집중에 따른 소멸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30년간 지방자치는 제도적으로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 지방사무 비율은 1994년 25%에서 2022년 36.5%로 확대됐고, 주민투표제·주민소환제 등 직접 민주주의 장치도 도입됐다. 그러나 재정 자율성은 여전히 취약하다.
1994년 21.5%였던 지방세 비율은 2023년에도 24.6%에 그쳤다. OECD 주요국 지방세 비중이 50%를 넘는 것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2할 자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조례 제정권 역시 '법령 범위 안'이라는 제약 탓에 지역 특수성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
하혜수 경북대 교수는 "물은 100도에서 끓듯 지방분권도 임계점을 넘어야 효과가 나타난다"라며 "재정 분권이 미흡한 상태에서 지방소멸 위기를 막기는 어렵다"라고 진단했다.
위기의 현실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2023년 기준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절반 가까운 113곳이 소멸 위험 지역이다.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는 청년층이 늘면서 지역은 인구와 재정 모두 취약해지고, 고령화가 겹쳐 존립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조재구 대한민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 (대구 남구청장)은 "지방자치 30년이란 기점은 지금까지의 성과를 돌아보는 시점인 동시에 지방자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할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협의회의 노력에도 지방자치가 제도적·형식적으로 확대된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제약이 많다"며 "특히 제한적 재정자립과 권한 없는 책임 구조 등 형식적 자치는 민선 자치의 뿌리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아직도 기초자치단체들은 주민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일선 행정을 책임지면서도, 스스로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과 재정은 턱없이 부족한 문제를 갖고 있다.
이동협 경북시군의회의장협의회장 (경주시의회 의장)은 "지방의회는 단순한 감시기관이 아니라 정책 주도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라며 "서울과 경주의 해법이 같을 수 없다.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자치입법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위기의식을 공유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정책이나 예산 배분에서 지방 배려 수준을 넘어서, 지역 우선 정책을 펴겠다"라고 선언했다.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5극 3특' 전략은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대구·경북, 부산·경남, 충청권 등 권역별 거점을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전 정부도 화려한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권한 이양이 뒤따르지 않아 실패했다"라며 "실질적 분권 없이는 이번에도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전문가와 현장은 공통으로 △광역시·도의 통합과 권한 강화 △국세 이양 및 재정 형평 장치 마련 △정당공천제 개혁으로 정치 자율성 확보 △주민조례발안·참여예산제 실효성 강화 등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하혜수 교수는 "중앙이 권한을 과감히 내려놓고 지방이 정책과 재정을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동협 의장도 "도로·복지·일자리 같은 생활 문제 해결이 곧 지방자치"라며 "의회가 주민과 함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라고 했다.
민선 30년은 제도의 뼈대를 닦은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30년은 '실질'을 채워야 하는 시간이다. 절반의 지방자치단체가 소멸 위기에 놓인 지금, 지방자치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과제가 됐다.
학계와 지방자치단체 현장은 "2025년은 지방소멸을 극복하고 실질적 지방자치를 완성하는 원년이 돼야 한다"라고 한목소리로 강조한다.
제도는 이미 무르익었다. 이제는 중앙과 지방, 그리고 주민이 함께 답해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