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는 섬, 월미도] 3. 억압·시련에도…원주민 '귀향 열망' 꺾이지 않았다
인천상륙작전 끝나도 귀향 '불허'
월미도 입구 차단…고향 땅 못 밟아
미군·韓 해군 주둔에 '끝없는 절망'
징발 민유지, 국방부 관리 재산 편입
귀향, 법·행정적 장벽에 겹겹이 갇혀
市, 공원 조성으로 귀향 약속 무산
대책위 진정서 제출에도 '제자리'
진실화해위 지원 권고 불구 논의 외면
정부 “市 권한…대응할 게 없다” 고수
대책위 “목소리 잊히지 않아야…
애쓴 게 아까워서라도 멈출 수 없어”


"고향이 눈앞인데 들어가지 못했어요. 다리 초입에서 헌병이 아무도 못 들어가게 지키고 있었으니까."
지난달 18일 월미도에서 만난 박채분(80)씨는 피난에서 돌아온 1952년 하인천의 기억을 꺼냈다. 인천상륙작전이 마을을 휩쓴 지 2년이 지났지만 귀향은 허락되지 않았다. 미군은 월미도 입구를 막아섰고, 원주민들은 집터로 가는 길에 발조차 디딜 수 없었다. 고향은 철조망 너머 불과 1.5㎞ 앞에 있었다. 실향민 처지가 된 마을 주민들은 "군이 나가면 돌아갈 수 있다"는 인천시 약속만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71년 미군 철수 뒤에는 우리 해군부대가 들어섰고, 1999년 해군이 떠난 이후 국방부·인천시 간 매매 계약과 월미공원 조성으로 귀향길은 또다시 닫혔다. 그 사이 주민들은 진정서와 탄원서, 천막 농성,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진실 규명 신청, 소송까지 이어가며 귀향을 요구했다. 75년은 약속이 번번이 무너진 시간이었다.


▲'징발 민유 재산'에 포함된 마을
전쟁 직후 원주민 삶터는 제방을 사이에 두고 월미도가 건너다보이는 하인천 부두 옆 소금 창고, 대한제분 앞 판잣집이었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이들은 나무껍질로 불을 지피고, 배에서 떨어진 고철을 주워다 팔며 살아갔다. 김달순(79)씨는 "시집와 보니 애들은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힘들게 사는 모습이었고, 다들 '군부대만 나가면 월미도에 들어가겠지' 하고 버텼다"고 회상했다.
월미도 원주민들은 1951년 귀향대책회를 만들고 이듬해 3월24일 당시 표양문 인천시장에게 첫 귀향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에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모두 피난을 떠나야 했고, 집과 재산은 잿더미가 돼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처지로 다른 곳에 얹혀산 지 이미 3년째"라는 내용이 담겼다.
1963년 2월15일에도 "관청에서 특별히 배려해 주셔서 다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거주지와 생활 터전을 마련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한다"는 추가 진정을 냈다.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진정인으로 참여했던 진순옥 귀향대책회 초대 회장은 "(시장이) 지금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니 도리가 없지 않느냐. 걱정하지 마라. 미군이 철수하면 다 들어가게 해주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현실은 달랐다. 미군이 철수한 1971년 이후로도 해군이 주둔하며 월미도 원주민 마을이 있던 곳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됐다. 미군 군사시설을 이어받은 국방부는 부지 소유 문제를 정리하는 작업부터 나섰다.

1973년 1월5일 국방부 장관이 해군참모총장에게 보낸 공문에는 월미도 인수 재산 목록에 '민유지 1만1999.2평'이 포함됐다.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가 발굴한 해당 문서에서 9필지인 민유지 지번은 만석동(현 북성동1가) 75~100번지로 나타난다. 지금의 월미공원 전통정원, 인천상륙작전 때까지 원주민 마을이 있던 자리다.
민유지가 국방부 관리 재산으로 넘어가는 과정에는 '징발'이 있었다. 국방부 공문에는 이들 민유지가 '징발 민유 재산'으로 표기됐다. 징발 일자는 1951년 3월1일이었다. 한인덕(80) 귀향대책위원장은 "국방부 재산으로 관리한 토지에 월미도 마을 땅도 들어 있다"며 "미군이 전쟁 중 민간인에게 징발한 토지를 아무런 보상 없이 국방부 소유로 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철조망에 가로막힌 귀향은 법적·행정적 장벽에도 겹겹이 갇혔다.

▲군부대 떠났지만 뒤집힌 약속
원주민 생사 확인 끝에 귀향대책위는 1997년 활동을 재개했다. 그즈음 해군부대 이전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듬해 귀향대책위는 청와대와 국방부, 인천시, 중구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원주민들은 "이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귀향대책위 총무를 맡고 있는 전영숙(75)씨는 "군인들이 나간다는 말이 돌았다. 다들 '이번엔 진짜'라는 분위기였다"고 떠올렸다.
"갑은 위 표시 재산을 을에게 일금 289억1680만8400원으로 매각한다."
2001년 8월30일 인천시와 국방부는 월미도 해군기지 일대 부지를 매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갑'은 국방부, '을'은 인천시였다. 인천일보가 입수한 당시 매매 계약서를 보면 매각 대금을 2005년까지 5회에 걸쳐 분납하는 방식이었고, "대금 완납 시까지 공원 조성에 필요한 행위를 하고자 할 경우 '갑'의 사전 승낙을 득한 후 할 수 있다"는 문구가 담겼다.
월미산과 원주민 마을에 주둔했던 해군기지는 '월미공원'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한 위원장은 "1950년대부터 진정과 탄원서를 제출했는데도, 원주민과 아무런 협의가 없었다"고 말했다.
매매 계약서에는 "매각 재산을 명도한 후 발생하는 모든 사고에 대해 '을'이 책임을 진다"고만 명시됐다. 관리 주체는 바뀌었지만, 귀향 대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국방부 국유재산과 관계자는 인천일보와 통화에서 "국방부 부지로 편입됐다가 공원 사업을 위해 인천시에 매각한 땅"이라며 "소유권, 민원 관련해서 모든 게 인천시 소관"이라고 말했다.

월미공원 계획을 수립한 초기 단계부터 행정 문서에서 원주민 귀향 논의는 배제된 상태였다. 1992년 6월 인천시가 발간한 '월미공원 조성 기본계획(변경)' 자료를 보면 5만382㎡ 면적의 현재 전통정원 위치는 애초에 '유희시설구역'으로 구상됐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폭격 피해를 입은 원주민 마을 자리다. 시는 "이용객의 오락적 행위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대단위 유희시설을 배치한다"며 관람차 등 놀이기구와 실내 오락시설 설치 계획까지 세웠다.
"군부대가 떠나면 귀향"이라는 수십년간의 행정 답변이 공원화로 뒤집히자 귀향대책위는 2004년 10월7일 월미공원 정문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순번을 정해 밤낮없이 농성장을 지킨 원주민들은 2006년 10월16일부터 인천시청에서 431일간 릴레이 1인 시위도 이어갔다.

▲진실화해위 권고에도 가로막힌 귀향
기나긴 싸움 속에서 귀향대책위는 또 하나의 분기점을 맞았다. 2005년 12월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자 원주민과 유가족 등 35명은 이듬해 4월6일 진실 규명을 신청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1년여에 걸친 조사 끝에 "전쟁이 끝나고 대부분 피난민은 다시 귀가해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자발적 귀향이 차단된 월미도 거주민들은 생명은 물론, 지역 공동체마저 파괴돼 타지에서 정착할 터전을 찾아 헤매야 하는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다"며 2008년 2월 진실 규명을 결정했다. 특히 "귀향 권리를 보호할 실정법이 존재하지 않는 실정"이라며 '미국과의 협상 권고', '위령 사업 지원', '월미도 원주민 귀향 지원'을 권고했다.
귀향길은 여전히 막혀 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주민 요구에 부응하는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는데도, 국방부는 "인천시 해당 사항이라 국방부가 대응할 게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시 보훈정책과 관계자도 "별도의 귀향 대책 논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2006년 이후 세 차례나 월미도 원주민 보상 근거를 담은 법안이 발의됐는데,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정도 길을 열지 못했다. 2013년 서울고등법원은 원주민들이 대한민국과 인천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공무원들은 법이 없어서 안 된대요. 국회의원들이 법을 만들려고 했는데도 소용이 없어요. 그래도 억울함은 풀어야 하잖아요."
2005년부터 귀향대책위를 이끌고 있는 한 위원장은 지난 7일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월미도 귀향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60대였던 나이는 어느덧 80대로 접어들었지만, "목소리가 잊히지 않아야 한다"며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어렸을 때 월미산에 쑥을 캐러 다녔던 기억이 난다"는 채분씨도, "지금까지 애쓴 게 아까워서라도 멈출 수 없다"는 영숙씨도 귀향의 꿈을 놓지 않았다.
/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이순민·이아진·변성원·정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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