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삶이 물었고 매미는 울었다

백범준 칼럼니스트 2025. 8. 27.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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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여름의 끝자락. 숲이 요란하다. 주범은 매미다. 하늘과 땅과 나무는 매미의 울음에 잠식된다. 그러나 그 울음은 짧다. 가득 찼던 고성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다. 세상이 적막에 잠기면 이내 가을이다. 울음은 한때요 적막도 한때다. 매미의 생은 울음의 굴곡 속에서 열리고 그 굴곡에서 닫힌다. 매미는 잠시 산다. 땅 밑에서 몇 해를 버티고 땅 위에서 며칠을 산다. 살면서 울고 울다가 죽는다. 매미의 짧은 생을 보고 인생이 묻는다. 허망하지 않느냐고. 그러나 불교는 답한다. 허망이 아니다. 제행이 무상할 뿐이다. 머무르지 않는 흐름이 진실이다. 그 흐름만이 실재다.

매미는 어둠을 뚫고 나온다. 흙을 찢고 나온다. 그리고는 울음을 터뜨린다.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목숨의 불꽃이다. 울음이 꺼지면 생도 꺼진다. 매미에게 울음은 삶이고 삶은 울음이다. 불꽃이 제 몸을 태우듯 매미는 울음으로 생을 태운다. 생을 던진다. 짧은 생에 무슨 뜻이 있느냐 묻지 마라. 어리석은 물음이다. 길어도 빈 생이 있고 짧아도 가득한 생이 있다. 기다림 속에 절정이 배어 있고 절정 속에 기다림이 녹아 있다. 매미의 어둠과 빛과 생과 울음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수년의 기다림과 며칠의 절정은 무명(無明)에서 해탈(解脫)로 이어지는 길과 다르지 않다. 매미의 울음은 오도송(悟道頌)이고 임종게(臨終偈)다.

매미의 울음은 증언(證言)이다. 살아 있음의 전언(傳言)이고 사라짐의 진언(眞言)이다. 불교는 거듭 말한다. 생긴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 그러니 지금을 살아야 한다. 숨이 있고 생이 있는 지금을 살아야 한다. 매미는 시간을 세지 않는다. 내일을 묻지 않는다. 죽음을 앞서 걱정하지 않는다. 짧기에 충만하다. 매미는 있는 힘을 다해 울고 남기지 않는다. 흘려보내지 않는다. 그 충만이 곧 그의 삶이다. 중생은 다르다. 내일을 셈하고 오늘을 흘린다. 영원을 바라며 충만을 잃는다. 충만이 빠진 자리는 결핍의 자리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지금에 있다. 매미는 오늘을 산다. 어리석은 중생은 어제와 내일 사이에서 오늘을 버린다.

매미의 울음은 홀로 있지 않다. 땅과 태양과 나무가 있고 울음이 있다. 여름이 깊어야 매미가 운다. 더위가 불러낸 울음이 더위를 흔든다. 생은 홀로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서로 물리고 기대어 선다. 이렇듯 연기(緣起)는 연기여서 또다시 연기를 낳는다. 오늘의 울음은 내일의 적막을 낳고 적막은 다시 울음을 잉태한다. 매미의 울음은 공(空)이다. 생겼다가 사라진다. 공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또다시 공이다. 없음은 닫힘이 아닌 열림이다. 공은 텅 비어서 충만하다. 매미의 울음의 끝자락은 공이다. 사라짐이고 또한 열림이다. 여름이 가면 매미는 죽는다. 매미가 죽으면 여름도 죽는다. 매미는 생으로 가르친다. 그 가르침은 간명하고 단호하다. 오늘을 살아라. 내일을 구하지 마라. 생은 지금밖에 없다. 울음으로 오늘을 다해내라. 목숨은 불꽃이다. 불꽃은 머뭇거리지 않는다. 꺼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제 몸을 다 태운다. 울음은 짧았으나 가득했다. 울음은 사라졌으나 그 가르침은 남았다.

중생은 어리석어서 헛되게 오래 살기를 원한다. 죽어서도 영생을 원한다. 숫자놀음으로 숫자를 쌓아올리며 시간을 버린다. 허나 삶은 길이가 아니다. 삶은 무게다. 무게는 순간에 있다. 허공을 가로지른 매미의 울음은 단단하다. 그 단단한 울림은 무겁다. 인간의 생에도 단단한 울음이 무거운 울림이 있어야 한다. 오늘의 울음은 오늘 울어내야 한다.

생이 무어냐는 물음에 매미는 울음으로 답했다. 죽음이 무어냐는 물음에 매미는 묵언으로 답했다. 어느덧 가을이었다. 나는 구태여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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