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MBTI

전현주 수필가 2025. 8. 27. 19:4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生의 한가운데

집에 돌아오면 옷을 겨우 갈아입고 우선 잠시 눕는다. 두 시간여 모임에 다녀왔을 뿐인데 마라톤이라도 하고 온 사람처럼 쓰러져 멍하니 있다. 무대에 올랐거나 말을 많이 하고 돌아온 날은 더 한참 누워있다. 오래된 습관이다. 낯가림이 심해서인지 사람이 많은 곳에 다녀오면 멀미가 나고 어지럽다.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마음속으로는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한다. 어릴 때도 갑자기 집에 손님이 오면 후다닥 다락방에 숨곤 했었다. 손님이 엄마와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다락방 구석에서 노끈으로 묶어 놓은 책을 빼내어 읽거나 한강 쪽으로 난 조그만 창문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었다. 나이 들고 넉살 좋은 중년이 되면 나아지리라 기대했으나 헛된 희망이었다. 한 번 그렇게 태어난 사람은 끝까지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법칙이라도 있는 것인지 전혀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오래 만나 익숙해진 사람들과는 활기차고 명랑하게 지낸다. 두 얼굴, 세 얼굴이라도 되는 걸까?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에게 개그우먼을 해보라는 황당한 소리도 들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내가 커밍아웃하듯이 심각하게 이런 고충을 털어놓으면 대부분 피식하며 웃는다. 분명 그들과도 어색한 첫 만남이 있었고 빙빙 겉돌던 시간이 있었을 텐데 다행히 내가 능청스럽게 연기를 잘했거나 시간이 지나 그들의 기억이 희미해졌음이 틀림없다. 나는 왜 늘 이 모양인지…. 모두 편안하게 잘 살아내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자주 불편하고 삶과 직면하지 못하는 걸까.

예전에는 걸핏하면 혈액형을 물어대더니 언제부터인가 MBTI를 궁금해한다. MBTI를 이용한 마케팅도 활발하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많아졌다. 하다 하다 이젠 대통령이나 연예인의 성격을 놓고도 MBTI 타령이다. 처음 MBTI를 검사했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마치 나를 오랫동안 관찰한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처럼 나와 거의 일치하는 성격 유형이 있었다. 나만 이런가 하고 쓸쓸하게 살아오던 내게 느닷없이 지구 전체 인구의 4%나 되는 익명의 동지가 생겼다. 그러나 그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나와 비슷한 사람을 어떻게 찾는다는 말인가. 또 행여 찾은들 무엇이 달라진다는 말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나와 장단이 잘 맞고 자주 어울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다.

MBTI는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내가 왜 힘든 여건에서도 그토록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는지. 혼자만의 시간에 빠져있는 동안 어떻게 내면의 나와 소통하고 힘을 얻었는지. 또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를 표현하면서 어떤 모습으로 세상 앞에 서고 싶어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일반적인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에 유난히 분노했던 것도, 현실의 불의에 자주 상처받고 좌절했던 것도, 철없이 아름답고 순수한 세상을 꿈꾸던 것도 이제야 설명되었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꼬리표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실수 없이 해내고 싶은 마음에 오랫동안 일을 미루고 벼르다가 생긴 별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들이 나의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MBTI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정체성을 찾는 데 도움은 줄 수 있겠지만 왠지 이 열풍이 석연치 않은 점도 같은 이유다. 한 사람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이해보다 16가지로 분류해 놓은 성격 유형 하나에 꿰어맞춰 섣불리 판단하고 몇 마디의 단어로 단정하여 매도해 버리는 일도 종종 있지 않은가. MBTI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정상이라고 답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지 못한 사람을 놀리는 말이지만, 성격에도 좋고 나쁨이 있다는 선입견에 비틀어 대답하는 말로도 들려 한편으로는 시원하기도 하다.

내 MBTI는 정상이다.

Copyright © 충청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