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민주정신 예술로 되살린 마산여고 학생들

문정민 기자 2025. 8. 2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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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의거 민주정신 계승, 학생 주도 상징 조형물 제작
현장 답사와 토론 거쳐 '열린 투표함·소녀 형상' 구상
1년 3개월 참여 과정, 민주주의 배움과 체험의 장

마산여고 외침, '껍질만 남은 자유는 필요치 않다' 새겨
"우리 작은 행동도 민주주의를 이어가는 힘이 돼요"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맞서 마산 거리에는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교실을 박차고 나온 학생들, 특히 마산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의 외침은 도시를 뒤흔들었다. 김주열 열사의 죽음은 4·19 혁명의 불씨가 됐다. 65년 뒤, 그 목소리가 다시 교정에 전해졌다. 마산여고 비비추 쉼터 한쪽, 높이 3m의 스테인레스 조형물이다. 작품명은 '껍질만 남은 자유는 필요치 않다.' 당시 마산여고 학생들이 거리에서 외쳤던 바로 그 구호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참여해 완성한 민주주의의 기념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마산여고 교정에 세워진 3·15 의거 기념 조형물 앞에 선 제작 참여 학생들. 지난 1년간의 역사 탐방과 아이디어 토론, 제작 과정을 함께해온 이들은 민주주의의 의미를 몸소 체험하며 작품을 완성했다. /문정민 기자

 ◇학생들 참여로 시작된 민주주의 기록 = 경남교육청의 '3·15 의거 기념사업' 지원으로 추진된 이번 프로젝트는 학생들이 주도한 창작 활동이었다. 학교는 '민주주의의 본질은 참여'라는 취지 아래,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경남대학교 건축학부·역사학과 교수, 지역 조각가가 멘토로 함께했다.

프로젝트는 지난해 4월 모집 공고로 첫발을 뗐다. 미술이나 건축, 역사에 관심 있는 학생 누구나 팀을 꾸려 신청할 수 있었다. 일주일 만에 네 팀이 꾸려졌고, 모두 19명이 참여했다. 그중 당시 1학년이었던 정지이, 전수인, 이보성, 이보연 학생은 같은 반 친구와 쌍둥이 자매라는 인연으로 팀을 꾸렸다.

학생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3.15 유적지를 직접 찾아가는 일이었다. 경남대 교수진과 함께 3·15 민주묘지,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마산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등을 둘러봤다. 교과서로만 보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자 감정의 결이 달라졌다.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에 직접 서 있으니 과거와 현재가 함께 있는 것 같았어요. 역사적 무게를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보성)

"현장의 무게를 체감했어요. 내가 그 시대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스스로 물었어요."(수인)

"차로 늘 스쳐 지나가던 3·15 의거 기념탑 앞에서 멈춰 서 설명문을 끝까지 읽었어요.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됐어요."(지이)

현장 답사를 마친 학생들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외침이 있었다는 게 크게 다가왔어요."
3·15 민주묘지,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창동 기념관 등지에서 진행된 역사 현장 답사. /마산여고

◇토론과 합의로 빚어낸 조형물 = 답사 이후 학생들은 본격적으로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각자 A4 용지에 스케치를 하고, 모둠별로 모여 토론을 거듭했다.

한 팀은 숫자 '3·15'를 그대로 벤치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학생들이 직접 앉아 쉴 수 있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숫자가 드러나도록 한 구상이었다. 또 다른 팀은 열린 투표함을 떠올렸다. 민주주의를 짓눌렀던 부정선거의 상징을 오히려 진짜 민주주의의 출발점으로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세 번째 팀은 소녀상을 내놓았다. 당시 거리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던 여학생들을 기리는 형상이었다. 마지막 팀은 김주열 열사를 떠올렸다. 최루탄에 맞은 그의 얼굴을 스케치로 담아내면서 민주주의의 아픔과 희생을 기억하려 했다.

아이디어는 다양했고, 한데 모으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학생들은 의견을 주고받으며 공통점을 찾아갔다.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합의점을 만들어 내는 과정 자체가 작은 민주주의 실천이었다.
각 팀은 '참여와 합의'를 바탕으로 민주주의의 상징을 형상화한 다양한 조형물 구상을 제안했다. 사진은 학생들이 팀별로 완성한 조형물 구상품을 들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이보성, 이보연, 전수인, 정지이 학생. /문정민 기자

경남대 교수들의 멘토링은 학생들 구상을 더 단단하게 다듬어 주었다. 국외 기념 조형물 사례를 함께 살펴보며 빛과 그림자, 공간의 쓰임을 배웠고, 재료와 안전성 문제도 꼼꼼히 짚어 갔다. 덕분에 추상적이던 아이디어는 점차 구체적인 형태를 띠어 갔다.

최종적으로 학생들이 선택한 작품은 열린 투표함을 형상화한 구조였다. 닫힌 틀을 깨고 민주주의가 열리는 모습을 담았다. 내부에는 손을 높이 치켜든 소녀가 서 있었다. 단순히 걷거나 서 있는 모습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강인한 형상이었다. 그 모습은 과거 시위에 참여했던 선배 학생들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작품 전체는 김주열 열사의 얼굴과 최루탄을 연상시키는 비스듬한 선으로 마무리됐다.

작품명은 당시 마산여고 학생들이 거리에서 외쳤던 구호에서 따왔다. '껍질만 남은 자유는 필요치 않다.' 학생들은 그 말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다. "겉만 자유롭고 속이 비어 있다면 그건 진짜 자유가 아니에요.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야 민주주의가 끝까지 채워진다고 생각해요."
지난달 11일, 마산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앞에서 열린 시민 캠페인에서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3·15 기념 에코백을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마산여고

◇참여의 결실, 교정에 서다 = 지난달 24일, 1년 3개월의 여정을 마친 조형물이 마산여고 교정 비비추 쉼터에 세워졌다. 조형물이 교정에 세워지는 순간, 학생들은 지난 시간을 되돌아봤다.

"프로젝트 시작할 때만 해도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모든 과정이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았어요."(지이)

"내 손으로 만든 작품이 학교에 남는다는 게 뿌듯해요."(수인)

"우리가 만든 조형물이 민주주의를 환기시키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하니 자부심이 들어요."(보연)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성찰은 한층 깊어졌다. 시민 의식과 참여의 가치를 직접 배우는 시간이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프로젝트였어요.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민주주의 참여라고 생각해요."(보성)

"기억하고 행동하는 한 역사는 계속 살아 있다고 생각해요. 작은 참여라도요."(수인)

"우리가 사는 바로 이곳의 역사임을 깨달았어요. 우리가 한 행동도 역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보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후손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요."(지이)

학생들의 말 속에는 단순한 참여를 넘어선 책임감과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하현미 지도교사는 그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봤다. "처음에는 역사에 큰 관심이 없을까 걱정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진심으로 몰입했어요. 작품에는 학생들의 의견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길을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어냈어요."

졸업 이후에도 교정에 남아 후배들을 맞을 조형물에 대한 말도 이어졌다. "후배들이 이 조형물을 단순히 멋지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읽어주길 바래요."

이제 교정에 선 조형물은 단순한 금속 구조물이 아니다. 학생들이 배우고 토론하며 합의해 완성한 민주주의의 기록이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숫자 '3·15'는 오늘도 시민들의 눈길을 끈다. 그 앞에 선 누구라도 잠시 멈춰 선다면,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며 민주주의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오는 29일 열리는 제막식은 그 의미를 공식적으로 알리는 자리가 될 것이다. /문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