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굴 긁어주나 [뉴스룸에서]

김선식 기자 2025. 8. 2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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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손. 클립아트코리아

김선식 | 뉴콘텐츠부장

“독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기사를 써라.”

10여년 전 선배 기자들은 이런 얘길 했다. 왠지 알 것 같아서 고개는 끄덕였지만 말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말한 사람은 알고 말한 걸까? 독자가 가려운 곳과 기자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난 가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썼고 아주 가끔 내가 좋아하는 걸 썼으며, 자주 내가 쓸 수 있는 걸 썼다.

기자들은 별로 주목하지 않은 기사인데, 에스엔에스(SNS) 반응이 폭발할 때가 있다. 지난주(18~24일) 한겨레 엑스(X·옛 트위터)에서 가장 널리 퍼진 기사는 ‘‘인류 최강’ 잠수능력 제주 해녀…국제 학계도 명맥 끊길까 근심’이다. 특검 수사와 한-일 정상회담 기사를 제치고 이용자 화면 노출 238만회, 리트위트 1만건, ‘좋아요’ 1만건을 기록했다. 평균 70살 이상 해녀들이 인류 최강 잠수 능력자들이며, 작업 중 물속에 있는 시간 비율은 바다사자 이상이라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 기사다. 엑스 이용자들은 ‘바다사자가 비교군인 게 너무 신기하네’ ‘근력도, 젊음도 아닌, 삶 전체로 다져온 지혜와 호흡이 세계 최강이라니 이건 현실이면서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판타지’ 같은 의견을 올렸다. 제주 해녀의 고단한 삶과 잠수 능력에 대한 존경과 호기심을 표현한 이들이 많았다.

해녀. 클립아트코리아

독자 의견을 꼼꼼히 살펴보기 전엔 왜 이렇게 반응이 뜨거운지 알 수 없는 기사도 있다. 지난 19일 ‘앱으로 기차표 예매, 키오스크로 음식 주문…성인 26%는 버겁다’ 기사가 그렇다. 한겨레 엑스 계정에 이 기사를 올린 게시물은 노출 39만회, 리트위트 1천건, ‘좋아요’ 450건을 기록했다. ‘적지 않은 ‘노인’들이 키오스크 불편해하는 거야 다 아는 사실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엑스 이용자들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파고들었다. ‘젊은 사람인 나도 키오스크가 버겁다’며, 사용자 경험 개선을 요구한 것이다.

‘노년만 그런 게 아니고 나다. 내 이야기다. 제발 쉽게 만들어줘.’ ‘나는 창창한 재수생인데도 버거킹 가서 주문할 때 뒤에 사람 있으면 땀이 뻘뻘 남. 그래서 결국 와퍼 주니어 단품 주문하고 적립도 못 하고 끝냄 ㄷㄷㄷ.’ 키오스크의 사용자 경험과 인터페이스가 문제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좀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직관적으로 바꾸거나 머 다른 조치를 취해야 할 듯.’ ‘제발 키오스크 시스템 좀 통일했으면 좋겠음. 나도 헷갈려.’ ‘키오스크 정말 쓰기 불편하고 어플 예매도 너무 불편함. 일단 직관적이지가 않아서 메뉴 찾으려면 한나절 걸림. 게다가 옵션 선택하려면 또 오래 걸림.’

엑스 이용자들은 현장·전화 구매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는 건 ‘심각한 차별과 강요’라고도 했다. 왜 ‘노인’들에게 편리한 선택지를 일방적으로 빼앗고 젊은이한테도 어려운 ‘디지털 학습’을 ‘강요’하냐는 거다.

키오스크. 클립아트코리아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솔직한 독자 반응을 보기도 한다. 팔로어 100만명이 넘는 한 패션·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인스타그램 계정에선 이번주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지난 24일 짧게 소식만 전한 ‘노란봉투법 국회 본회의 통과’ 게시물이 좋아요 3800개 이상, 댓글 600개 이상, 공유 7300회 이상을 기록했다. ‘노조의 무분별한 파업→투자 위축, 해외 이전→일자리 감소, 취업난 심화’라는 재계 입장에 가까운 논리를 펴는 댓글이 많았다. 눈에 띄는 건 노란봉투법을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이런 반응들이다. ‘진짜 노동자가 오히려 반대해야 하는 법 아닌가요? 저거 때문에 내가 노동할 공간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는데.’ ‘대학교 4년제 고생하면서 나오면 뭐 하나ㅋㅋ 취업이 안 될 텐데.’ 하지만 이런 실업의 공포를 퍼뜨리는 논리가 극단적으로 부풀려진 주장이라는 반박이 잇따랐다. ‘노란봉투법은 무분별한 파업까지 모두 허용하는 게 아님.’ ‘회사가 과도한 손해배상·가압류를 청구하지 못하게 막는 법.’ ‘하청노동자에게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을 보장하는 법.’

나는 요즘 주변 기자들에게 독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긴 누가 누굴 긁어주나. 내가 몰랐거나 빠뜨린 ‘가려운 곳’을 에스엔에스와 댓글 창에서 독자들이 긁어주고 있는데. 독자 반응만 잘 살펴도 다행이다.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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