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 그림으로 105년 만에 ‘부자 상봉’…초본과 최종본 나란히 걸렸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땅속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막 설레면서 가슴이 두근거렸지요. 아버지가 이 걸작들을 20대 중반에 그리셨다니…, 붓을 놀리는 아버지의 섬세한 손길이 떠올랐습니다.”
한국 근대 채색 화단에서 최고 대가이자 실력자로 첫손 꼽혔던 이당 김은호(1892~1979)의 아들 김성원(80)씨는 부친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창덕궁 벽화 ‘백학도’의 밑그림 초본을 봤을 때 감격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2년 전 가을 경기 광주 창고에 있던, 고인이 생전 쓰던 반닫이에서 100년 넘게 둘둘 말린 채 보관돼온 부친의 그림 두루마리를 풀자 튀어나온 뜻밖의 성과였다. 혹시나 상할까봐 고민하다 종이 상태를 살펴보려고 큰맘 먹고 풀었더니, 학들이 바다에서 바위가 있는 뭍으로 힘차게 날아와 앉는 ‘백학도’의 채색하지 않은 선묘본이 나온 것이다.
그 발견 덕분에 창덕궁에서 헤어진 ‘아버지 그림’(‘백학도’ 초본)과 ‘아들 그림’(‘백학도’ 최종본)이 105년 만에 경복궁 박물관에서 만나게 됐다. 지난 14일 시작한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창덕궁의 근사謹寫한 벽화’에서 큰 화제를 모은 학 그림 벽화의 내력이다.

한일병합 직후 1912년 조선서화미술회에 편입학해 수학하고 궁중 화원으로 왕족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된 이당은 암울한 조선 화단에서 촉망받는 청년 화가로 두각을 드러냈다. 조선서화미술회 안중식과 조석진(1853~1920) 문하에서 전통 화법을 배운 그는 스무살 어린 나이에 순종의 어진을 그렸고, 이후에도 세조·원종의 어진을 모사하여 ‘어진을 그린 최후의 궁중 화원’으로 불렸다.
1920년 그는 불탔다가 재건한 창덕궁 대조전의 벽화를 그려달라는 파격적 제안을 받고 공들인 초본 작업을 거쳐 이 그림을 완성했다. 3·1운동 당시 독립신문을 배포하다 6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몸이 만신창이가 됐던 그는 착잡하고 복잡한 상념 속에 그림을 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화재로 불탄 창덕궁 대조전을 재건하면서 문화통치 전략의 일환으로 대형 벽화 제작 계획을 세운 조선총독부와 이왕직의 작업 제안은 일종의 부역 성격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자신을 아낀 고종의 은덕을 생각하며 번민하다 제안을 수락한 이당은 고종에 대한 추모심과 마지막 황제 순종에 대한 애상, 장수를 비는 염원 등을 안고 최상의 노력을 기울여 여섯폭인 창덕궁 벽화 중 채색이나 선묘 등에서 완성도가 가장 뛰어난 ‘백학도’를 그려냈다.

‘백학도’는 임금의 거처인 대조전 대청의 동쪽 벽을 장식했던 오일영·이용우의 봉황도와 짝을 이뤄 대조전 대청의 서쪽 벽을 장식했던 벽화다. 왕실의 무병장수와 무사함을 빌면서 길한 12가지 영물인 십장생 중 하나인 학 16마리를 하얀 보름달 떠오른 하늘을 배경으로 그렸다. 학은 장수를 뜻하는 동물이다. 그림에 나온 소나무, 모란, 바위, 불로초 같은 십장생 영물들 또한 임금 내외의 평안과 장수를 기원한다. 소나무와 학을 궁중 장식화의 소재로 즐겨 그린 이유다. 뻗은 소나무의 이파리, 힘찬 물줄기, 세련된 모란의 꽃잎 등은 화가가 자연물을 묘사하는 데 능숙했음을 드러낸다.
초본은 ‘백학도’를 그리기에 앞서 화면을 구획하고 도상을 선택하고자 제작했다. 그림 사이에 남겨진 메모와 붉은 기준선은 이 작품이 연습용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왼쪽에 희미하게 그려진 5마리의 크고 작은 학은 실제 벽화에선 실현되지 않았으나, 다양한 소재의 배치를 구상했음을 일러준다. 초본에 그리지 않았던 달, 구름, 불로초 등을 최종본에 그려넣는 등 새로운 경물을 추가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작가의 작품 구상 과정과 회화적 실험이 담겨있고, 벽화와 달리 화면 왼쪽에 김은호가 소장했음을 보여주는 낙관이 남아있다는 점에서도 회화사적 가치가 높다. 무엇보다도 벽화에 없는 여러 마리의 학과 고치기를 되풀이한 선의 흔적 등을 통해 작가의 복잡한 속내와 창작 과정의 산고를 보여준다는 점도 지나칠 수 없다.

아들 김성원씨는 수년 전 부친이 남긴 그림 유품 더미를 뒤적이다 해방 뒤 그린 엘리자베스 여왕의 초상화 밑그림 등과 이 그림을 발견했고, 곧장 국립고궁박물관 쪽에 알렸다. 지난해 8월 박물관에서 매입, 소장하게 됐고, 아들 격인 벽화와 나란히 놓여 105년 만에 해후하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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