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 소나무세상, 뷰포인트가 다르네

구례 광의면 한국통신로 도로변 일대 플라타너스가 반긴다. 늠름하고 우람한 나무들의 도열이다. 수형으로 볼 때 적지 않은 시간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시기적으로 빨간색으로 치장한 백일홍 나무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선 플라타너스가 주인공들이다. '플라타너스 커피숍' 안내판을 보니 목적지에 다다른 것 같다. 주차를 하고 정원에 들어서니 깔끔하고 아름다운 숲속의 정원이 시선을 빼앗는다.
"와" 감탄사와 함께 카메라를 들이대니 멋진 그림엽서 속의 사진과 같다. 아담한 공간에 나무와 꽃, 자연석, 연못 등 정원 구성 요건은 모두 갖췄다. 소나무와 자연석이 조화를 이룬 연못의 물이 얼마나 맑던지 세상의 먼지를 다 씻어낼 것 같다. 동행한 송태갑 박사는 "정원이 품격을 갖추기 위해서 연못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원에 연못을 갖추는 것이 쉽지 않다. 많은 사안이 결합해야만 가능하다"면서 "이렇게 물 맑은 정원은 정원을 만나기는 쉽지 않아 압권이다"고 했다.
송 박사의 설명대로 이 정원의 클래스는 다른 것 같다. 전남도 내 '정원산책'을 하면서 둘러본 정원들과는 확실한 차별성을 보인다. 반야원(般若園) 얘기다. 반야원은 불교와 연관이 있는 듯하나 꼭 그렇지만 않다. 지역에 중점을 두고 지혜라는 반야(般若)의 뜻이 좋아 지리산 반야봉에서 이름을 차용했다.

반야원의 귀빈은 소나무들이다. 100년 이상에서 최소 20~30년생, 300그루 정도이다. 소나무정원이라도 해도 전혀 들리지 않다. 전국에서 유일한 '소나무정원'이라는 자부심이 정원에 스며들어 있다.

구례 골짜기에 이 멋진 아름다운 정원을 설계하고 가꾸어가는 사람은 박용하 회장으로, 여수화학석유산업단지에서 중견기업 와이엔텍을 운영하고 있다. 선친의 문화적 소양을 물려받은 안목이 그에게 있었다. 그의 선친 박우종씨는 여수에서 양조업 등을 운영한 사업가로서,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었다. 가난한 시절이라 문화예술가들이 그의 집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문화예술인들이 박씨의 집에서 몇 달간 머무르면서 작품활동을 했고, 이들은 작품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문화예술인을 후원하는 메세나 활동인 셈이다. 어릴적부터 당대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을 보고 이들과 소통을 해왔던 터라 자연스럽게 문화적 소양과 내공을 갖추게 됐다. 선친의 영향으로 축적된 문화예술적 안목은 그만의 경지를 넓혔다. 국내외를 넘나드는 그림을 보는 수준은 전문가 이상일만큼 해박하다. 작품 수집에도 열심이다. 그의 또 다른 사업장인 보성CC내 우종미술관과 반야원 갤러리에서 그의 높은 미술적 식견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대 정치학과 대학원시절 박 회장은 부친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귀향, 불가피하게 사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학문을 좋아하는 박 회장은 지금도 철학을 비롯한 자연, 미술, 음악 등 서적을 손에서 놓지 않고 공부하는 데에도 열정적이다.
박 회장은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지만,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온 독창적인 방법으로 정원에는 그의 학문적 관심과 가치가 예술적 토양 위에서 그대로 녹아있다.

박 회장은 반야원 개관식 때 '반야원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상상하며 조성한 꿈이 있는 정원입니다' 직접 쓴 글에 자신의 이름과 김 교수의 이름을 넣어 안내석을 설치했다. 우리나라에서 정원을 조성할 때 정원주가 정원사 이름을 안내석에 남기는 일은 흔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후원자였던 로렌츠가 미켈란젤로를 알아주는 것처럼, 지음(知音)에 대한 그만의 예우였다.
반야원 소나무들은 전국에서 '모셔'졌고, 자연석 역시 전국구이다. 보성CC서 옮긴 반야원 입구 앞에 길게 드리워진 소나무는 이동 과정에서 몇차례 교통경찰의 단속을 받아야 했다. 65t에 달하는 경북 고령에서 온 정원석도 기존의 공간적 구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놓인 히스토리를 품고 있다. 정원석에는 인간 찰나의 삶에서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을, 유구한 세월의 지혜를 지니고 있는 바위에게 길을 묻기 위한 그의 마음이 앉았다.
올해로 개관 3년째인 반야원은 일 년에 12만명이 찾는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국내외 유명 기업인과 정치인 등이 찾아와 정원을 거닐고 커피를 마시는 여유를 찾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구례군의 캐치프레이즈인 '자연으로 가는 길'에 부합되는 정원으로 충분하다.
구례를 넘어 전남을 대표하는 관광콘텐츠가 된 셈이다. 김재왕 대표는 "반야원을 한번 찾아온 방문객들은 재방문율이 높다. 개인적으로 찾아왔다 나중에는 친구나 가족끼리 오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정원 중앙에는 수령이 70년을 넘은 플라타너스가 우뚝 서 있다. 반야원의 역사를 말해주는 나무이다. 박회장의 장인인 고 우종수씨가 심었는데, 이젠 사위와 장인이 시공간을 넘어 대화와 소통을 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중학교 교사였던 우씨는 구례인들이 주축이 된 지리산권역 최초 산악단체인 구례 연하반을 창립해 지리산이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반야원의 목표는 나무에 바탕을 둔 사계절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나무만 있으면 정원의 분위기가 무거워지기에 곁들여 꽃을 심는다. 꽃의 다양화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앞에는 개량종을 심고, 뒤에는 구근 중심의 숙근초를 심는 것으로 설계했다. 특히 지리산과 섬진강 자생수종인 노각나무와 히어리 등을 배치하고 있다.
김재왕 대표는 "나무 관리보다 꽃 관리가 어렵다. 폭우 폭염에 녹아버리고 장마철 습기에 관리가 어려워 돈과 장비가 많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반야원의 미래는 어떻게 그려질까? 궁금해진다. 진정한 정원의 완성은 시간이라 했다.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정원들은 한 세대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조부모, 부모 대를 이어받은 오래된 정원들이다. 영국의 그레이트 딕스터 정원 역시 지금은 크리스토퍼 로이드의 정원으로 더 잘 알려진 있지만, 그의 어머니 데이지 로이드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야원도 대를 이어 더욱 푸르러지고, 모든 이들이 옴서감서 사랑받는 공간으로 사계절 푸르른 소나무와 함께 여유를 느끼는 문화적 명소로서 자리잡아가길 소망한다.
글·사진=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Copyright © 무등일보.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