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짜증 나는 계절이 아니라 작은 행복 만나는 제철
작가, 무더위의 다른 관점 제시
여름 '휴식의 계절'이라 일러줘
제철 음식ㆍ여행ㆍ낭만ㆍ선물 등
계절에 맞춘 행복 이야기 풍성
학생들도 방학 때 짐 내려놓고
작은 일에도 진심 다하길 당부
여름이 이토록 더운 것은 우리에게 쉬어갈 명분을 만들어 주려고, 무리하지 않는 법과 휴식의 자세를 가르쳐 주려고, 무엇보다 쉬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쉴 때 느껴야 하는 건 죄책감이 아니라 평온함임을 알려 주려고. (184쪽)

기후 위기와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마다 여름을 나기가 쉽지 않다. 연일 지속하는 무더위에 심신이 지쳐가고, 쉬었으면 하는 찰나에 방학이 찾아왔다. 지금 곁에 와 손짓하고 있는 무더위를 무심코 지나쳐 버리고 싶지만, 제철 행복을 챙겨 보려고 몇 달 전 읽었던 김신지의 에세이 <제철 행복>을 다시금 펼쳐들었다.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틈을 내어야 하는 여유, 24절기에 맞춰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자연에 마음을 기울이고 계절에 발맞추는 것만으로 잘살고 있다는 기분, 인생의 질문은 결국 '나에게는 무엇이 행복인가'로 돌아오곤 했는데, 나의 행복은 자주 제철과 자연에 머물렀다"(7쪽)는 작가의 말에 공감하며 찾아 읽게 되는 책이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인 '24절기'. 태양이 1년에 걸쳐 이동하는 한 바퀴를 스물네 개로 나눈 전통적인 역법인 절기는, "사계절이라는 너른 보폭을 스물네 계절로 쪼개어둔 것"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과 추분, 낮이 가장 긴 하지와 밤이 가장 긴 동지까지 계절의 기초가 되는 네 개의 '기절기'에 계절이 시작되는 입춘ㆍ입하ㆍ입추ㆍ입동 네 개의 '입절기'까지 여덟 절기 사이사이에 그 무렵의 기상 현상이나 자연 변화를 담은 이름의 절기가 두 개씩 더해져 24절기를 이룬다. 쉽게 이야기하면 대서가 7월 22일만 대서가 아니라, 대서 시작일로부터 입추까지의 14일 정도가 대서 기간인 셈이다. 그래서 대서 기간에 무더위가 지속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여름이면 생각나는 풍경 - 더울 때 얼음 동동 띄워 먹는 고소한 미숫가루, 집 마당 수돗가에서 등목을 하고서는 가족과 수박 한 통을 다 비우고 잠들던 여름밤이 있었다. 그리고 노을이 허기질수록 하루해를 달래던 저녁 시간이 되면 온종일을 맞바꾼 파지를 판 돈으로 장 보러 간 어머니는 검은 비닐봉지에 장어 몇 마리를 담아 오셨다. 내장을 다 제거한 장어를 사 와서는 굵은 소금을 뿌린 후, 장어를 1시간 정도 끓여 멀건 국물에 갖가지 양념을 넣어 장어국 한 그릇을 밥상에 올리셨다. 여름 보양식으로는 장어국이 최고인 줄 알고 해마다 여름이면 비지땀을 흘러가며 부엌에서 장어를 손질하던 어머니, 다소곳이 곁에 앉아 방아잎을 얹어 주며 든든하게 먹어 두라고 일러 주던 어머니, 이제 더는 맛볼 수 없는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지는 여름을 나고 있다.
에세이 <제철 행복>에는 '제철 음식' 이야기가 풍성하다. 우수(雨水) 기간에 냉이무침과 냉이된장국, 쑥버무리와 쑥국을 먹었던 이야기, 곡우(穀雨) 기간에 북한강을 달려 등나무집 아래에 앉아 막걸리에 돌미나리전과 비빔 국수를 마주한 이야기, 하지(夏至) 기간에는 햇감자에 맥주가 제철이라면서 태양의 기운을 머금고 여문 햇감자, 햇마늘, 햇양파로 한결 풍요해진 하지(夏至) 밥상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절기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쪽수에는 그 절기에 맞는 제철 숙제가 3개씩 적혀 있다. 소만(小滿) 무렵의 제철 숙제는 무언가를 보고 누군가 생각난다면 싱거운 안부 전해보기, 효도가 제철, 이맘때 하면 좋은 일을 찾아 가족들과 시간 보내기, 여름을 부르는 개구리 소리 소쩍새 소리 주변에서 채집해 보기가 나열되어 있고, 대서(大暑) 무렵의 제철 숙제는 여름 더위를 식히는 나만의 방법을 여덟 가지만 적어보기, 그 목록을 하나씩 실천하면서 내게 맞는 휴식의 자세를 취해보기, 무더위의 보상이기도 한 여름 제철 과일 찾아 먹기가 숙제이다. 각각의 계절에 담긴 이야기와 마음들을 한 계절 한 절기씩 읽어가다 보면 마치 처서의 제철 숙제 '포쇄-젖거나 축축한 것을 바람에 쐬고 볕에 바램'처럼 눅눅했던 마음이 절로 보송보송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당연히 행복해지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어렵게 찾은 행복은 두 가지. 오늘의 일과와 의무 사이에서 '틈틈이' 행복해지기. 그리고 앞날에 행복해질 시간을 '미리' 비워두기(중략) 행복해질 시간을 미리 비워두는 데는 약간의 성실함이 필요하다.(95p)
3년 전 모교 강단에서 'OO으로 살아온 OO의 마음'이라는 주제로 후배들에게 특강을 한 적이 있었다. 00에 넣을 수 있는 단어들을 떠올려 보라 하고, OO에 자신의 이름을 넣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는지를 서로 나누었다. 부모로 살아온 부모의 마음, 교사로 살아온 교사의 마음, 준헌으로 살아온 준헌의 마음, 난 노력했고 최선을 다했지만, 애써 자신의 힘들고 지친 마음을 외면하고 인정해 주지 않을 때, 곁에 아무도 없다고 느껴질 때, 20대 청년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후배들에게 OO로서 잘 살아왔다고, 대견하다고 칭찬해 주었다. 먼저 인사하고 말 걸고 손 내미는 작은 행동이 별것 아닌 듯해도 소소한 일상에서 나눌 수 있는 관계와 소통의 시작이라고, 누군가의 마음을 먼저 인정해 주고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약간의 성실함은 작은 기적을 이룰 수 있다고 일러 주었다.
에세이 <제철 행복>을 읽으면서 'OO 행복 찾기'도 그러한 마음에서 시작해 볼만하다. OO에 아빠, 엄마, 아들, 딸 등 가족의 구성원을 넣어 보아도 되고, 사계절을 넣어 보아도 되고, 직업이나 직급, 이름을 넣어 보아도 되는 행복 찾기 놀이를 2학기에 우리 학급에도 펼쳐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곳 영산고등학교에서 학생들과 한 학기를 보내고 처음 방학을 맞이했던 시간도 이제 2주가 지났다. 3주간의 짧은 방학이지만, 학생들은 저마다 행복 찾기에 나섰을 것이다. 1학기 학생생활기록부 입력을 위해 출근해서 학생들의 1학기 활동들을 되새겨 보는 방학, 새로운 2학기를 준비하면서 마음속 작은 바람을 가져 본다. 꿈을 이룬 사람보다는 꿈을 이루어 가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어깨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자고, 시작이 작다고 해서 끝이 작은 것도 아니며, 작은 실천이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듯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에 진심을 다해보자는 안부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방학이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입추(立秋)의 기간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가올 학생들을 마중하러 나가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아그들아, 2학기도 무탈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보자!
★<추천하고 싶은 책>
- 최진영 산문 <어떤 비밀> (난다)
- 나민애의 인생 시 필사노트 <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 (포레스트 북스)
★<추천하고 싶은 영상>
- 임순례 감독, 김태리 주연 <리틀 포레스트> (2018)

☞ 필자는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은 약한 존재이지만 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장 강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임을 인식하는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해 이해하는 '문학',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살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들여다보는 '역사'를 꾸준한 책읽기를 통해 심어주자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