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오, 어쩌면 좋아 / 박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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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
박소유(1961~, 서울 출생)의 오, 어쩌면 좋아는, 영탄법 중 감탄형 어구를 조합한 것이 특징이다.
즉, 오, 어쩌면 좋아는 제목 속에 벌써 어떻게 삶을 살다가야하는지, '나와 세계에 대한 강렬한 물음과 자각'이 숨었다.
오, "어쩌면 좋아, 아무렇지 않게 멀어져가네/ 잡으려고 해도 손이 없는데" "그저 스쳐가는 슬픔인 줄 알았는데/ 오, 오, 오, 오, 동그랗게 내가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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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어쩌면 좋아 / 박소유
뼈만 남은 사연이 함께 굴러 갈 동안/ 바퀴 따라가는 생은 모두 급하네/ 벼락같은 속도를 얻었으니/ 저게 모두 발자국이라면 내 발자국도 흔적 없을 터/ 차라리 눈발이거나 서릿발 같이/ 가볍거나 아득했으면 좋겠네// 구부러진 노인이 오그라든 유모차를 밀며 가네/ 서둘러 당도할 곳이 있기나 한 것처럼/세상에서 가장 요란한 발걸음으로 지나가는데/ 가만 보니 소리만 있고 동작이 없네/ 고비마다 손발 떼어주고 오장육부 다 내주고/ 어느 밤중 깜박 잠들어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고/ 둘, 둘, 굴러 집 찾아가는 엄마들/ 똑같은 표정 똑같은 모습으로 지나가네// 어쩌면 좋아, 아무렇지 않게 멀어져가네/ 잡으려고 해도 손이 없는데/ 가볍고 아득한 이 온기는 어떻게 돌려주나/ 어둠은 지나간 모든 것들의 그림자/ 그저 스쳐가는 슬픔인 줄 알았는데/ 오, 오, 오, 오, 동그랗게 내가 굴러가네
『어두워서 좋은 지금』(2011, 천년의 시작)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 (괴테) 시공을 초월해 서정시에서 영탄(詠歎, exclamation)은 중요한 시법이다. 감정의 표현이야말로 시의 핵심이 아니던가. '오, 아아……' 등등의 감탄사는 화자에 감정을 직접적으로 이입하는 효과가 있다. 박소유(1961~, 서울 출생)의 「오, 어쩌면 좋아」는, 영탄법 중 감탄형 어구를 조합한 것이 특징이다. 그는 감탄사를 통해 사물과 사람이 어떻게 얽혀들며 풍경을 이루다 사라지는지를 멋지게 터치했다. 이런 "환유적 상상력은 비단 시를 추동시키는 기법의 문제거나 사유의 패턴이 아니라, 세계의 진실과 통하며 삶의 윤리와 맞닿아"(권채린)있다. 즉, 「오, 어쩌면 좋아」는 제목 속에 벌써 어떻게 삶을 살다가야하는지, '나와 세계에 대한 강렬한 물음과 자각'이 숨었다. 이 시는 또한 "존재에서 존재로 옮겨가는 시선과 감정의 단일한 경로이기보다, 삶과 죽음, 슬픔과 온기, 생기와 소멸이 서로를 밀고 끌어당기면서 지금·여기를 재구성"(권채린)하고 있다. "뼈만 남은 사연이 함께 굴러갈 동안" "내 발자국"이 "가볍거나 아득했으면 좋겠"다를 통해, 허무에 사무친 화자의 인식이 깊게 드러난다. 하여, 내면의 성찰이 의식의 흐름 기법을 타고 어떻게 급경사를 이루는지를 훌륭하게 포착하였다. "서둘러 당도할 곳이 있기나 한 것처럼" 인간은 저마다 죽음을 굴리며 간다. 또한, '구부러진 노인이 오그라든 유모차를 밀며 가'는 풍경은 우리네 삶과 오버랩되어 쓸쓸하기도 하다. 박소유의 시는 행간의 리듬과 반복의 강조가 생의 긍정적 기미를 포획하는 절묘를 얻었다. 오, "어쩌면 좋아, 아무렇지 않게 멀어져가네/ 잡으려고 해도 손이 없는데" "그저 스쳐가는 슬픔인 줄 알았는데/ 오, 오, 오, 오, 동그랗게 내가 굴러"간다. 인간 숙명을 이보다 더 예리하고 적확하게 꿰뚫어 본 허무가 있었던가. 언젠가는 어쩔 수 없이 저승으로 가야만 하는 그 죽음의 서늘한 반복이, 오늘은 왠지 싫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든다.
김동원(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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