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뽐낼 IP · 세계가 탐낼 플랫폼… ‘100년 먹거리’ 찾아라

안진용 기자 2025. 8. 2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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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게이츠가 택한 ‘유 퀴즈’처럼…
빌 게이츠 ‘유퀴즈’는 IP의 힘
BTS도 2017년 美 방송 노크
CJ ENM 드라마 각국 흥행 등
문화콘텐츠 세대 초월해 인기
‘케데헌’ 수익 대부분 넷플릭스
거대 자본과 계약 제작자 늘어
국내 OTT기업들 역할론 부각
“글로벌 경쟁하는 플랫폼 필요”
빌 게이츠(가운데) 게이츠 재단 이사장이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CJ ENM 제공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이자 지난 25년간 1000억 달러(약 140조 원)가 넘는 기부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게이츠 재단의 빌 게이츠 이사장이 한국을 찾았다.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재계 인사들과 두루 만난 게이츠의 3년 만의 내한은 공교롭게도 지난 18일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유 퀴즈) 출연 소식을 통해 전해졌다. 여기에 궁금해지는 건 ‘게이츠가 왜 ‘유 퀴즈’를 선택했느냐?’다. 이는 방송인 유재석이 진행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토크쇼로 거듭난 지식재산권(IP),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유통시킬 수 있는 플랫폼의 힘이다.

최근 한국을 배경으로 삼고, K-팝을 소재로 다룬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를 본 외국인 관광객들은 낙산공원 성곽길, 남산타워 등 ‘케데헌’에 등장한 한국의 명소를 찾아 인증 사진을 찍고 있다. 하지만 IP를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은 ‘빈손’이다. 자본력과 플랫폼이 없다면 콘텐츠 무한 경쟁 시장에서 변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IP 주권’ 확보의 필요성이 커지는 이유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잘 키운 IP, 100년 간다!

지난 2017년,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음악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직후 가장 먼저 출연한 현지 토크쇼는 ABC ‘지미 키멜 라이브’(Jimmy Kimmel Live)와 NBC ‘엘런 디제너러스 쇼’(The Ellen DeGeneres Show)였다. 모두가 BTS를 섭외하기 원할 때, 그들이 두 프로그램을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지미 키멜, 엘런 디제너러스라는 걸출한 MC가 진행하는 전통 있는 토크쇼이고, 전국 방송이 가능한 ABC와 NBC라는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기 때문이다. 이는 게이츠가 ‘유 퀴즈’를 택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쉽게 말해, BTS와 게이츠가 각각의 프로그램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IP로 인정한 셈이다.

문화 콘텐츠 IP는 파급력과 생명력이 길다. 과학과 기술의 경우, 시간이 지나고 발전을 거듭하면 과거의 IP는 가치를 크게 상실한다. 반면 문화 콘텐츠는 다르다. 시대에 맞게 유연하게 변화하며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다. 1950년대에 태어난 미국인이 배트맨·스파이더맨·아이언맨을 코믹북으로 봤다면, 1980년 이후 출생한 이들은 마블이 만드는 영화로 이 캐릭터를 즐기는 식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7일 발표한 ‘새로운 성장 지식재산권의 산업화 방안 보고서’를 보면 톱50 명단에 미국이 32개, 일본 7개, 중국·프랑스가 각 2개씩 포함됐다. 1위인 미키마우스는 1928년, 6위인 배트맨은 1939년, 10위인 헬로키티는 1974년에 각각 탄생했다. 잘 키운 슈퍼 IP 하나면 백년지계(百年之計)를 수립할 수 있다는 뜻이다.

IP 확보의 중요성은 국내 히트작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CJ ENM이 만든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눈물의 여왕’ ‘나의 아저씨’ 등은 글로벌 흥행을 일구며 외국팬들이 K-콘텐츠를 경험하고, 또 다시 찾게 만드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시니어 예능 ‘꽃보다 할배’가 미국 NBC에서,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일본에 각각 리메이크된 것은 대표적 IP 수출 사례로 꼽힌다. ‘보이즈 플래닛’을 통해 K-팝 그룹 제로베이스원을 배출하고, K-팝 시상식 ‘마마 어워즈’(MAMA AWARDS), 한국 문화를 한자리에 누릴 수 있는 ‘케이콘’(KCON) 등은 IP의 연결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는 사례다.

오징어게임

◇IP 주권의 필요조건? 힘 있는 플랫폼!

미국 포브스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케데헌’이 글로벌 수익 10억 달러(약 1조4000억 원)를 기록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013) 못지않은 성과를 거뒀지만, 정작 제작사인 소니 픽처스가 가져가는 수익은 2000만 달러(280억 원)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아울러 지난 2021년 소니가 넷플릭스와 스트리밍 독점 계약을 맺으며 제작비의 25% 금액을 사전 협상 프리미엄으로 받고 최대 2000만 달러를 수익 상한선으로 정했으며, IP는 넷플릭스가 가졌다고 설명했다. 소니 입장에서는 땅을 칠 노릇이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자.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지 않았다면 ‘케데헌’이 이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넷플릭스의 글로벌 영향력이 ‘케데헌’의 성공을 견인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IP를 내어줄 수밖에 없다. 결국 IP 주권을 지키려면 궁극적으로 넷플릭스의 대항마가 될 수 있는 토종 플랫폼을 키워 IP를 한국 안에 둬야 한다.

과거 지상파 방송사들은 드라마와 예능 등을 직접 제작하며 강력한 IP 홀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시청자들은 TV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선호한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국내 제작자들은 ‘글로벌 진출’과 ‘제작비 전액 투자’라는 달콤한 유혹에 이끌려 IP를 몽땅 내주는 ‘바이아웃’ 방식으로 계약한다. 눈앞의 작은 이익을 위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모할 IP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CJ ENM을 비롯한 국내 콘텐츠 기업들의 역할론이 부각되고 있다.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CJ ENM은 tvN, Mnet, OCN 등 14개 오프라인 채널 외에 국내 OTT 중 가장 점유율이 높은 티빙을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본력을 가졌다. CJ ENM 측은 “지난 30년간 문화사업에 직접 투자한 금액은 약 10조 원이며, 현재까지 창출한 IP는 5000여 개에 이른다”고 전했다.

물론 아직은 넷플릭스의 공세에 맞서기는 역부족이다. 그렇기 때문에 티빙·웨이브를 통합해 덩치를 키우고 효율을 높여야 한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지난 22일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린 ‘국내 OTT·FAST 산업의 AI 혁신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서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케데헌’을 우리가 제작할 수는 없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정부 입장에서도 가슴이 아프다. 우리 역량으로도 ‘케데헌’ 같은 작품을 만들어 생태계에 선순환 효과가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케데헌’은 K-팝이 소재지만, 종주국인 한국이 확보한 IP는 없다. ‘오징어 게임’ 역시 엄밀히 말해 ‘무늬만 국산’일 뿐, 모든 권리는 넷플릭스가 갖고 있다. 게다가 넷플릭스의 자본 앞으로 줄서기하는 크리에이터들은 증가 추세다.

결국 IP 주권 확보, 그리고 양질의 IP를 유통시킬 수 있는 경쟁력 있는 토종 플랫폼이 수반돼야 한다. 그래야 넷플릭스 일변도로 흐르는 콘텐츠 시장에서 자생력을 갖추고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미디어 산업 평론가 조영신 박사는 “넷플릭스보다 좋거나 유사한 조건을 제공할 수 있는 제2, 3의 OTT플랫폼의 등장이 필요하다”면서 “로컬 시장에서만 통하는 플랫폼은 안 된다. 글로벌 체인과 경쟁할 수 있는 유통 창구 구축이 필수적이며, 어느 정도 정부의 개입도 필요해 보인다”고 충고했다.

안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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