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쓰고, 침묵하라… 3시간·7개층·100여개 방에서 펼쳐지는 특별한 공연

김유진 기자 2025. 8. 2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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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40보.'

'슬립노모어'를 보고 나온 기자의 스마트폰 건강 앱에 찍힌 숫자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 매키탄호텔(옛 대한극장)에서 막을 올린 이머시브(관객 몰입형) 공연 '슬립노모어'.

미국 뉴욕타임스는 '슬립노모어'를 두고 "작품의 크리에이티브 팀은 관객의 머릿속을 엉망으로 만드는 임무를 맡은 것 같다. 마치 인공 자극제처럼 말이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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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키탄호텔 ‘슬립노모어’ 체험기
관객이 호텔 초대받은 투숙객 돼
배우들 따라다니며 서사 이어가
3번째 연회 장면은 꼭 관람하길

‘6740보.’

‘슬립노모어’를 보고 나온 기자의 스마트폰 건강 앱에 찍힌 숫자다. 3시간 동안 가면을 쓴 채 7층 건물 전체를 돌아다니느라 얼굴은 이미 땀투성이였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 매키탄호텔(옛 대한극장)에서 막을 올린 이머시브(관객 몰입형) 공연 ‘슬립노모어’.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의 줄거리에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연출 기법이 더해진 누아르풍의 작품으로, 미국·중국의 장기 공연에 이어 한국에도 상륙했다. 관객이 계단을 오르내리고, 배우를 쫓아다니고 건물 구석구석을 탐방해야 하는 공연 특성상 관람은 ‘극한 체험’에 가까웠다.

문을 열고 들어선 뒤 휴대전화를 제외한 모든 짐을 카운터에 맡기고 입장 티켓 역할을 하는 트럼프 카드 한 장을 받는다. 휴대전화는 제작사 측에서 나눠준 가방에 넣은 뒤 잠근다. 잠근 가방에는 호텔 룸 키와 같은 키링이 달려 있는 등 여기서부터 ‘1930년대 스코틀랜드의 한 호텔’이라는 콘셉트에 동참하게 된다. 관객은 미스터리한 호텔에 초대받은 투숙객인 셈이다.

맨덜린 바에서 음료 한 잔을 마신 뒤 부여받은 카드 번호에 맞춰 입장을 시작한다. 들뜬 기분도 잠시, 칠흑 같은 어둠이 관람객을 감싼다. 왼쪽 벽을 더듬더듬 짚고 앞으로 나아가면 안내자가 흰 가면을 손에 쥐여준다. 관객이 지킬 규칙은 두 가지. 흰 가면을 쓰고 침묵할 것.

엘리베이터를 타고 벨보이의 지시에 따라 내린 곳은 어딘지, 몇 층인지조차 알 수 없다.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누군가는 정신병동에, 누군가는 안개가 자욱한 숲에, 누군가는 고풍스러운 상점 거리에 도착한다. 이쯤에서 관람 팁을 하나 준다면, 꼭 주연 배우를 따라다닐 필요는 없다는 것. 애초에 7층 건물에 100여 개의 방을 만든 만큼 모든 장면을 보는 건 불가능하다.

물론 메인 스토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 맥더프 부부를 따라다녀야 하지만 간호사와 수선집 주인, ‘스피크이지 바’(1920년대 미국에 금주령이 내려지자 정부 몰래 운영하던 무허가 주점)의 바텐더 등 조연들을 따라가다 보면 충분히 주요 스토리와 합류할 수 있다. 운에 따라서는, ‘19세 관람가’의 수위 높은 장면들과도 마주칠 수 있다. 공연마다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특이한 구조이기에 ‘N차 관람객’ 맞춤형이기도 하다.

총 3시간의 러닝타임이지만 1시간 분량의 공연 한 편이 세 차례 반복되는 식으로 구성된다. 배우들은 같은 연기를 3번 재연한다. 1시간 동안 여러 장면이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펼쳐지기에 최대한 많은 장면을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중 연회 장면은 3번 모두 보기를 권한다. 연회에 참석하는 인물들이 모두 주요 캐릭터인 만큼 다음 1시간 동안은 궁금했던 인물을 하나둘 점찍어 그의 서사를 쫓아가면 된다. 슬로모션 같은 연회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도 준다. 결말에 해당하는 3번째 연회 장면은 그 전과 다르니 꼭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슬립노모어’를 두고 “작품의 크리에이티브 팀은 관객의 머릿속을 엉망으로 만드는 임무를 맡은 것 같다. 마치 인공 자극제처럼 말이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러니 이 작품에 대해 공연계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라고 하는 것도 과언은 아닐 테다.

폐막일은 미정이다. ‘슬립노모어’가 궁금했던 관객이라면 빨리 매키탄호텔로 달려가시라. 다만 관람은 19세 이상부터 가능하다.

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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