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가 구원받는 영화’ 틀지 않으면 잘못! [ㄷㄷㄷ, 인권위 그날⑤]
상임위, 어느 영화제의 책임을 추궁하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국가인권부’가 아닌 것은 합의제 국가기관이기 때문이다. 독임제와 달리, 여야가 함께 구성한 위원들이 합의해서 의사결정을 한다. 방송통신위원회, 국가교육위원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이태원참사특별조사위원회도 같은 성격의 위원회다. 인권위, 방통위가 상설기구인 반면, 진실화해위·이태원특조위처럼 법률로 기간을 정한 한시 기구도 있다.
위원회 회의는 공식 기록된다. 위원 전체가 참여하는 전원위원회가 열리면, 반드시 지난번 회의 기록에 오류가 없는지 먼저 점검한다. 회의록엔 녹취된 위원들의 모든 말이 기록된다. 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순간은 회의록에 담긴다. 2025년 2월10일을 중심으로 인권위 회의록을 본다. 인권위원들을 본다. 출범 24년 만에, 최대 위기에 처한 인권위를 본다.
‘ㄷㄷㄷ, 인권위 그날’은 매주 수요일 독자들과 만난다.
이충상 위원 : 동성애 찬성 영화, 동성애 반대 영화 두 가지를 같이 상영하자고 하니까 이 진정인이 거부한 것은 맞습니까?
남규선 위원 : 예, 그렇습니다.
이충상 위원 : 그러면 이 진정인이 잘못했구만요. 두 가지 다 상영하도록 해야지. 왜 자기 원하는 것만 상영합니까?
“잘못했구만요.”
이것은 남도 방언이다. ‘~요잉’, ‘~당께’, ‘~랑께’ 등의 마무리 말과 유사하게, 친근하고 정겨운 어감을 띤다. 하지만 정색을 하고 뱉은 말이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확히 누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지난 회에 이어 2024년 12월19일 열린 제25차 상임위원회 현장으로 가본다. 이날 남규선 상임위원이 개회와 함께 한 주 전인 12월12일 상임위에서 못다 한 발언을 하려 하자 이충상·김용원 위원은 억센 말을 쓰며 가로막았다. “공무집행 방해”, “현행범”, “강제 퇴장”, “억지소리 그만하라”고 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입 좀 닥치세요”라는 극언이 튀어나왔다. 그런데도 남 위원이 발언을 멈추지 않자 이충상·김용원 위원은 상임위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이때가 회의 시작 17분 뒤인 오전 9시47분. 앞서 퇴장을 요구받고 나온 기자들은 대기실에서 무슨 영문인지 몰라 의아해할 뿐이었다.
영화 이야기는 8분 뒤 속개된 상임위 회의 중간에 나왔다. 물론 예술에 관한 토론이 벌어진 건 아니었다. 지역 영화제 상영작에서 특정 영화 배제를 요구한 광역단체장을 상대로 인권위의 차별시정 권고를 이끌어낸 영화제 책임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지 말자는 거였다. 영화제 관련 사안은 이날 처리하기로 한 6가지 보고·의결 안건 중 세 번째에 속해 있었다. 남규선 위원을 제외한 위원장과 위원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이었다. “진정인이 잘못했구만요”라는 완곡한 화법에서 다수파의 여유만만함이 느껴진다. 이날의 회의록을 조금 앞으로 돌려보자.

김용원 위원 : 이 진정인은 인천여성회 회장으로 있는 ○○○이라는 사람인데 이 진정의 내용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진정의 발단이 된 사건이 인천광역시에 퀴어 영화 상영을 하도록 하자는 그런 요구에 대해서 이 피진정인 인천광역시청하고 담당과장인 ○○○이라는 공무원에 대해서 진정을 한 것인데 그 진정의 원인이 된 사건이 피진정인 쪽에서는 동성애 영화와 탈동성애 영화를 같이 상영하도록 하자는 입장인데 반해서 진정인 쪽에서는 탈동성애 영화는 상영하면 안 된다, 이런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그 문제하고 관련해서 진정인 쪽에서 그 후에 피진정인2 여성정책과장을 향해서 아주 노골적으로 압박을 했습니다. 본인에게 직접으로 제가 보기에는 거의 협박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그런 의사를 밝히기도 했고, 그다음에 여성정책과장 징계하라고 누구든지 그 실명을 알 수 있는 방식으로 기자회견을 두 번 했고, 그 다음에 피켓시위는 2023년 6월19일부터 7월13일까지 무려 19일간 인천시청 출입 현관 앞에서 했죠. 그리고 그렇게 되니까 언론에 피진정인의 실명이 여러 번 거론되게 됐고 이로 인해서 피진정인은 수치심과 모멸감을 엄청나게 느끼고 불면증에 시달리고 여러 가지 심적인 고통을 받았다는 겁니다.(중략)
위원장 안창호 : 제가 하나 묻겠는데요. 이 보상금 지급 사유에 퀴어 영화를 제외하라는 피진정기관의 요구가 있었습니까?
남규선 위원 : 예, 있었습니다.
위원장 안창호 : 그러면 제외하라는 요구는 왜 한 거죠?
남규선 위원 : 위원장님, 이 자리가 보상금 지급 대상자에 대한 심의·의결하는 자리인데요. 이 사건 자체는 이미 차별시정위원회에서 한 결정입니다. 이 내용에 있어서 지금 말씀하실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위원장 안창호 : 왜 그러냐면 지금 우리 김용원 위원께서 문제 제기를 하셨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 안건 제목은 ‘2024년 상·하반기 보상금 지급계획(안) 의결의 건’이다. 인권위 진정사건에 기여해 보상금 지급대상에 오른 21명(단체 포함)에게 총 2000만원을 주는 안으로, 12월12일 상임위에서 심의했지만 논의를 끝내지 못한 터였다. 영화제 관련 진정인은 전체 보상금 지급 대상 후보 중 하나였다. 앞서 12일에도 김용원 상임위원은 이 진정인을 비롯해 4건에 대해 독하게 비판하며 보상금을 한 푼도 주지 말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날 같은 발언을 하면서 “(해당 진정인은) 포상금 대상이 아니라 처벌 대상, 스토커”라는 말까지 했다. 진정인이 피진정인 징계를 요구하며 시위를 했다는 이유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인권위 소위원회 중 하나인 차별시정위원회의 2024년 6월19일 회의로 거슬러가보자. 당시 차별시정위는 인천여성영화제를 주관해온 인천여성회 회장이 인천광역시장과 실무 간부를 상대로 “퀴어 영화 상영 배제를 요구당했다”며 낸 진정에 대해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보조금 지원 거부 등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관리자급 직원들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한다”고 의결했다. 당시 차별시정위원은 남규선(소위원장), 원민경·강정혜 세 사람이었다.

영화제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2019년부터 매해 인천여성영화제에 보조금을 지원해온 인천시는 2023년에도 공모 및 심의절차를 거쳐 보조금 지급을 결정했다. 그런데 이 해에 처음 퀴어 영화 상영작이 있다는 이유로 주최 쪽에 “부적합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주최 쪽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라며 항의하자, 인천시는 탈동성애 작품을 동시 상영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오히려 더 큰 반발을 샀다. 인천여성영화제는 항의시위를 조직하기도 했지만, 2023년 7월 결국 지자체 지원 없이 자체 예산으로 영화제를 개최했다.(2005~2018년에도 자체 예산 개최) 이 과정에서 인천시가 보인 행태에 대해 인권위 소위가 “차별”이라는 공식 판단을 내렸는데, 그로부터 6개월 뒤 상임위의 다수파 위원들은 전혀 다른 소리를 하며 보상금 지급도 반대한 것이다.
결국 이날 상임위에서는 인천여성회 쪽 진정인에게 인권위의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안창호 위원장과 이충상·김용원 위원은 “퀴어 영화를 상영할 거면 탈동성애 영화도 상영했어야 한다. 진정인이 잘못했다”고 몰아갔다. 이에 대해 남규선 위원은 “이 안건은 보상금 지급 기준에 맞느냐 안 맞느냐만 따져야 한다. 보상금 지급 심의를 핑계로 소위(차별시정위) 결정을 비난하는 거냐”고 반박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안창호 위원장은 “차별시정위 결정을 논하는 것이 아니고, 보상금 지급을 별도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으나, 보상금 지급 반대 논거는 차별시정위 결정이 잘못됐다는 판단에 기초해 있었다.
1 대 3이었다. 남 의원의 반론은 먹히지 않았다. 광역자치단체가 사전 검열로 표현과 예술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비판이 통할 틈은 0.1㎜도 없어보였다. 회의록엔 남 위원에 대한 나머지 세 사람의 집중난타 분위기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은어를 찾자면 ‘다구리’, 그러니까 ‘몰매’였다.
위원장 안창호 : 저도 이게 예를 들어서 같이 하는데 퀴어 축제만을 배제시켰다, 여기 적힌 대로 퀴어 영화를 제외하라고 요구했으면 일응 지급해도 괜찮다고 하지만 너도(퀴어 영화도) 하고 반대하는 영화도 같이 상영해라, 이렇게 됐는데 나는 그걸 못 하겠다 하고 나간 것으로 지금 이충상 위원님이나 또 다른 자료를 보니까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지금 남 위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두 가지 다 같이 상영하라 이랬는데 나는 같이 상영하는 데는 동참 못 하겠다 하면서 혼자 했는데 우리가 보상금을 지급한다, 이게 과연 적절한지….
(중략)
남규선 위원 : 그러니까 이유도 명확하지 않은 채로 일방적인 편견을 가지고….
위원장 안창호 : 일방적인 것은 아니고 지난번에 말씀을 드렸지만,
김용원 위원 : 혼자 생각이고, 혼자 생각을 왜 남에게 강요를 하세요.
위원장 안창호 : 혼자 강요를 얘기하면 안 됩니다. 다른 분들도 다 생각이 있고 나름대로 여태까지 쌓아온 인격이 있습니다.
남규선 위원 : 더군다나 퀴어 영화 상영을 이유로 한 보조금 지원 사업 미승인 건과 관련해서 위원회가 한 결정에 대해서 반대되는 발언들을 하시고.
위원장 안창호 : 언제 반대되는 발언을 했습니까? 방금 얘기했듯이 당사자들이 이것이 자기만 배제시켰으면 문제가 크죠. 그렇지만 같이하라고 하는데 그거를 거부하고 하는데 난 그 부분은 퀘스천이 갑니다.(중략)
남규선 위원 : 위원장님.
위원장 안창호 : 이거는 회의입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문제 제기가 있으면, 혼자 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하는 거죠. 저는 제 생각이 굉장히 반민주적이고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저는 합리성을 추구하고 또 고민도 하고 그런 과정에서 결정을 한 것이고, 지금 이 안에 대해서 세 분이 찬성하고 있어요, 한 분만 반대하고 있습니다.
(중략)
남규선 위원 : 그래서 퀴어 영화라서 안 되는 겁니까?
위원장 안창호 : 퀴어 영화라고 해서 안 된다고 안 했습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래서 제가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이분들의 의견이 자기들이 상영하려고 하는데 못하게 했다고 하면 저는 지급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군데에서 반대되는 것도 하고 같이 해라, 그런데 나는 못하겠다, 그러는데 보상금을 준다? 나는 그런 부분은 이해가 안 돼요.

이날 상임위는 성소수자 문제를 바라보는 인권위의 시선이 안창호 위원장 취임 이후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풍경이었다. 인권위는 2001년 출범 이후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금지, 동성 파트너 차별 방지를 위한 민법 개정, 성별 정정 허가신청 등에서의 지침 개정 등을 꾸준히 국회와 사법부에 권고해왔고, 실제 “수술 없는 성별 정정 허가” 등 법원의 전향적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인권위에 성소수자는 존중과 보호를 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였다. 하지만 현재 인권위에서 성소수자는 ‘다수의 권리를 침범하는 불편한 소수’로 취급되는 분위기다. “탈동성애 영화가 다수를 위한 것”이라는 식이다.
3명의 위원은 상영작에 대해서는 전혀 묻지 않았다. 인천시가 2023년 문제 삼은 퀴어 영화는 세 편이었다. 장편 다큐멘터리 ‘두 사람’(감독 반박지은)과 단편 극영화인 ‘50㎝’(감독 김소정), ‘아빠가 자꾸 살아 돌아와(감독 김현수)’였다. 파독 간호사 등 독일 이주민으로 독일 교회에서 만나 반평생을 함께 보낸 70대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두 사람’은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각장애인이 동성 애인과 마라톤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 ‘50㎝’는 2023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모두 국비나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이 지급되는 영화제다.
그렇다면 탈동성애 영화란 무엇일까.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쉽게 작품 이름도 찾을 수 있다. 주인공이 동성애를 극복하고 구원받는 줄거리를 담았거나, 동성애는 하나님의 자연법칙을 거스른 타락의 결과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날 상임위 초반에 나온 김용원 위원의 “입 좀 닥치세요”라는 발언은 여러 언론에 보도되며 유명해졌다. 그러나 인천여성영화제 주최 쪽 진정인의 보상금 지급과 관련된 대화 내용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둘 다 비공개회의 상황에서 나온 말이었다. “입 좀 닥치세요”가 자극적이지만, “탈동성애 영화를 상영했어야 한다”는 발언도 자극적이고 파격적이다. 이 발언 뒤에 이어지는 ‘나는 인격을 쌓았고, 반민주적이지 않고, 합리적’이라는 안 위원장 말도 흥미롭다. 인격과 민주와 합리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인권위에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 윤석열을 위한 방어권 보장 안건은 갑자기 나온 게 아니었다. <다음 회에 계속>
2024년 12월12·19일 24·25차 상임위원회 참석자
위원장 안창호(68)/검사·헌법재판관 역임 **윤석열 전 대통령 지명
상임위원 남규선(62)/민가협 총무 및 인권위 공보담당관 역임 **더불어민주당 추천
상임위원 이충상(68)/판사 및 교수(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역임 **국민의힘 추천
상임위원 김용원(70)/검사 및 변호사 역임. **윤석열 전 대통령 지명
(나이는 2025년 기준)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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