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일본 아이들의 글은 분명 달랐다 [새로 나온 책]

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한쪽 눈은 유리눈입니다. 그 눈은 천황 폐하께서 주셨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글은 대부분 거대 담론이다. 독립운동가의 의분이나 친일파의 윤색으로만 이 시대를 바라보기 쉽다. 책은 자못 낯선, 일제강점기 어린이들의 글을 모았다.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 수상작들이다. 총독부는 이 대회에서 정치와 거리를 둔, 순수하고 ‘어린이다운 표현’에 주안점을 두었다. 동물 기르기, 동생의 병, 공습 대비 훈련 등 그간 상상치 못했던 생생한 일상이 담겨 있다. 그러나 저자는 조선과 일본 아이들의 글은 분명 달랐다고 적었다. 재조 일본인 어린이는 문장력이 뛰어나고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승전을 염원하는 반면, 조선인 어린이는 가계 사정으로 고민하며 전쟁에 무지하고 표현이 부정확하다. 100년 전 어린이들의 글과 저자의 적절한 해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만들기
팀 잉골드 지음, 차은정 외 옮김, 포도밭 펴냄
“나는 그보다는 만들기를 성장의 과정이라 생각하고 싶다.”
‘만들기’라는 행위는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내 마음에서 이 책의 이름은 줄곧 〈네 개의 A(The 4 As)〉여야 했다”라는 서문의 첫 문장이 넌지시 그 실마리를 제공한다. 인류학(Anthropology)·고고학(Archeology)·예술(Art)·건축(Architecture)은 단어의 첫 글자가 같은 동시에, 제작자와 물질이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를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류학자인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개념인 ‘조응’은 만들기의 핵심이 관념적 설계·디자인이 아니라, 직접 몸을 움직이는 행위와 그로부터 체득하는 감각이라고 말한다. 이는 글의 상당 부분을 ‘인간의 손이 가진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지’ 설명하는 데 할애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사례로 든 역사적 문화유산 면면은 문명의 변곡점마다 빛을 발한 위대한 ‘만들기’의 역사이자, 곧 인류 성장의 역사다.

뉴 로컬 컬처 키워드
박우현 외 지음, 북바이북 펴냄
“거대 담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던 지역의 진짜 이야기.”
일본 도쿠시마현에 가미야마 마을이 있다. 고령화 정도만 보면 지역 소멸 위기 지역인데 젊은 작가나 디자이너 같은 프리랜서들이 몰려와 현재 일본에서 가장 젊은 마을로 변신하고 있다. 외부 청년층을 유입하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가미야마는 자본이나 정책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 주민과 이주민의 자발적 참여와 아이디어로 변화를 만들었다. 역시 지역 소멸을 겪고 있는 한국에 영감을 주는 사례다. 한국에도 가미야마 같은 사례가 없을까. 지역 자원을 발굴해 고유의 문화를 일궈나가는 사람이나 장소를 찾아 〈기획회의〉에 연재하게 된 까닭이다. 충북 옥천군의 ‘안남어머니학교’, 전북 남원시의 ‘지리산이음’, 충남 공주시의 ‘마을 스테이 제민천’ 등 18곳의 ‘새로운’ 지역 이야기가 담겼다.

한국 만화 트리비아
서찬휘 지음, 생각비행 펴냄
“나는 한국 만화의 한 시기에 스스로 사관이자 전기수의 역할을 해왔다고 감히 생각한다.”
‘트리비아’는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숨겨진 이야기나 여러 방면에 걸친 사소한 지식 등을 이른다. 만화 칼럼니스트 서찬휘씨가 1945년 해방기부터 현재까지 80년 동안의 한국 만화의 사건을 정리했다. 전쟁·독재·계엄과 같은 역사적 상황에서 한국 만화가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투쟁하고 노력했는지 보여준다. 예컨대 2022년 7~8월 카툰 ‘윤석열차’ 사건은 어떤 전조였다. 한 고교생이 그린 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인데, 문화체육관광부는 이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예산을 삭감해버렸다. 풍자에 대한 보복이었다. 만화계가 이를 세게 비판했다. 비상계엄 직후인 2024년 12월9일 내란 사태 수사를 촉구하는 만화인 성명에 만화계 566명이 연명했다.

아우슈비츠는 멀리 있지 않다
조너선 프리드랜드 지음, 김재경 옮김, 아카넷 펴냄
“루돌프 브르바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탈출의 마술사 중 하나였다.”
루돌프 브르바는 열아홉 살에 알프레드 베츨러와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탈출했다. 이후 두 사람은 ‘브르바-베츨러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가 1944년 6월에 한 신문을 통해 알려졌다. 전 세계 대중이 ‘아우슈비츠’라는 단어조차 거의 들어보지 못했을 때였다. 이 보고서는 헝가리 유대인 20만명의 생명을 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홀로코스트 다큐멘터리를 본 영국의 저널리스트가 다큐에서 인상적으로 본 루돌프 브르바의 삶과 흔적을 오랫동안 추적해 그의 일대기를 이 책에 담았다. 지은이는 “루돌프 브르바라는 이름이 안네 프랑크, 오스카 쉰들러, 프리모 레비의 이름 곁에 당당히 올라가 있어야 한다고 확신한다”라고 말한다.

이주, 경계, 꿈
권준희 지음, 고미연 옮김, 생각의힘 펴냄
“조선족의 이야기는 결코 낡거나 종결된 주제가 아니다.”
문화인류학자이자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수인 저자가 2004년부터 2016년까지 옌볜을 오가며 진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조선족’의 삶을 조망한다. 19세기 말 두만강을 건너 옌볜에 정착한 조선족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 사회로 진입해 ‘코리안 드림’을 좇는 이주노동자 집단이 되었다. 2004년 만난 조선족 노동자들은 10년 안에 중국이 한국을 앞설 것이라며 중국의 부상을 예언하기도 했고, 한국과 중국의 역사를 제대로 모른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12년의 시간이 지나며 코리안 드림을 굳게 믿던 조선족 사회도 변한다. 회의와 후회, 새 삶을 모색하려는 흐름이 그것이다. ‘이주의 꿈’이 어떻게 탄생하고 ‘다층적인 경계’를 넘는지 조선족의 사례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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