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 쏘이고, 자식 줄 감자 캐다 응급실…의료원은 ‘만능’이 돼야 했다

이문영 기자 2025. 8. 2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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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드라마 ‘영월 나이트’ ③ 병의 ‘지역성’
65살 이상 인구 전체 33.39%인 영월
입원·외래 환자 79.5%와 45.3% 65살↑
영월·평창·정선 전체 휴일 진료실 겸해
영월의료원(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입원 환자의 79.5%와 외래 환자 45.3%가 65살 이상이었다. 지난달 17일 영월의료원 수납 창구 풍경. 위준영 김승하 피디 marco0428@hani.co.kr
드라마는 현실을 비추지만 차별적으로 비춘다. 드라마가 비춘 어떤 현실이 ‘프라임 타임’을 차지하는 동안 드라마가 비추지 않는 어떤 현실은 편성표에서 사라진다. 집만 나서면 선택할 ‘의료’가 널려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서울의 대형 종합병원을 무대로 펼쳐지고 있을 때 의료에 닿는 과정 자체가 ‘비상사태’인 사람들의 곤경과 막막함은 드라마 소재조차 되지 못한다. 의료뿐 아니라 ‘의료의 이미지’에서도 ‘대도시 밖’은 말간 공백이 된다. ‘의료 대란 시대’에 정부 정책 개편을 결정하는 기준은 시청률보다 생명이어야 한다. 한번도 방영된 적 없는 논픽션 드라마를 한겨레가 시작했다. 의료취약지역 공공병원 메디컬 드라마 ‘영월 나이트’. 10부작이다.

“너무 심한데요.”

환자의 바지를 가위로 잘라내며 간호사가 말했다.

“그러게, 심하네…. 아는 애였어요?”

당직 의사 조승연(62·현재 외과 근무)이 바지 밖으로 드러난 다리를 살피며 환자에게 물었다.

지난 6월30일 저녁 8시7분. 한 남자가 절룩거리며 영월의료원(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응급실로 걸어 들어왔다. 바지와 양말이 피로 젖은 채였다. 집중치료실 병상에 엎드려 괴로워하는 그의 종아리를 간호사가 물과 식염수로 씻어냈다. 액체가 닿을 때마다 그가 “쓰읍” 고통을 깨물었다. 검붉게 엉겨 붙은 핏덩이를 제거하자 날카로운 무언가에 찢긴 상처가 드러났다. 양쪽 다리에서 살점이 너덜거렸다.

“모르겠어요. 어느 집 애인지….”

홍승구(가명)가 통증을 참으며 말했다.

“보호자를 알아야 치료비라도 요구할 수 있지 않겠냐”며 조승연이 리도카인(국소 마취제) 20㏄를 주사했다. 찡그린 홍승구의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패었다.

“길에서 따라오더니 한쪽 다리를 물더라고요.”

그 ‘애’는 “처음 본 개”였다. 동네 주민이 풀어둔 개인지, 먹이를 찾아 떠도는 들개인지 정체를 “모르겠다”고 했다.

“발로 차서 떨어뜨렸는데 다시 쫓아와서 남은 다리까지 물었어요.”

마취 기운이 돌면서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로 홍승구가 설명했다. “몸집은 그리 크지 않은 녀석”인데 “무는 걸 본 사람은 없다”고 했다. “재수 없는 일”로 치부하기엔 상처가 컸지만 개를 찾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에겐 개보다 무서운 게 따로 있는 듯했다.

조승연이 포비돈(소독약) 솜으로 상처 부위를 닦았다. 무영등(그림자가 지지 않는 수술 조명)을 비추고 봉합을 시작했다.

“병원 무서워서 안 오려고 했는데.”

묻지 않은 이야기를 홍승구가 한마디씩 꺼냈다.

“올 초 당뇨 때문에 여기 입원했었는데, 그 뒤엔 피를 토해서 원주 쪽 병원에 있었는데, 병원 너무 많이 와서 겁나는데, 자꾸 오게 되네요.”

그에겐 개의 이빨보다 소리 없이 달려들어 물어뜯는 질병들이 더 뾰족했다. 개든 사람에게든 물린 자리엔 세균이 많았다. 홍승구도 균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파상풍 주사를 놓으며 조승연이 말했다.

“너무 많이 찢어져서 곪을 수도 있어요. 며칠 입원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강원도 5개 지방의료원(강릉, 원주, 속초, 삼척, 영월) 가운데 영월의료원만 군 단위 병원이었다. 문 연 병원이 없는 시간대에 의료원 응급실은 영월·평창·정선 전체의 외래 진료실을 겸했다. 위준영 김승하 피디 marco0428@hani.co.kr

홍승구의 ‘평생 병원’ 영월의료원

70대 중반쯤 보이는 홍승구는 실제로는 55살이었다. “당뇨로 살이 빠지고 이빨도 빠졌다”며 고단함이 내려앉은 얼굴로 순하게 웃었다. 위정맥류 출혈로 고생한 그는 간경화도 앓았다. “술은 본래 음식이지만 출혈 이후론 끊었다”고 했다. 그는 영월에서 나고 자랐다. “일한다고 외지 생활도 잠깐 했지만” 곧 돌아와서 영월에서 줄곧 살았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 병원에서 차례로 돌아가”신 뒤 혼자 지냈다. 영월의료원(1945년 개원)은 그와 가족의 ‘평생 병원’이었다.

강원도 5개 지방의료원(강릉, 원주, 속초, 삼척, 영월) 가운데 영월의료원만 군 단위 병원이었다. “큰 도시인 강릉·원주·춘천엔 대학병원들까지 있지만 영월군민은 물론 종합병원이 따로 없는 평창과 정선 주민들도 영월의료원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서영준 원장)이었다. 입원 환자의 71.3%(2023년 기준)와 외래 환자의 71.8%는 영월 주민이었다. 14.1%와 10.9%는 정선에서 왔고 평창 환자는 7.5%와 4.7%였다. 충북 단양군민들도 1%와 1.2%를 채웠다. 입원 환자의 79.5%와 외래 환자 45.3%는 65살 이상이었다.

‘영월권’(영월·평창·정선) 자체가 전체 인구 중 33.39%가 65살을 넘긴 초고령(20% 이상) 사회였다. 33.39%는 전국 70개 중진료권(지역별 의료 서비스 단위로 광역단체인 ‘대진료권’ 내 시군구를 묶어 설정) 중 해남권 36.78%, 거창권 36.51%, 논산권 35.10%, 남원권 34.75%, 상주권 34.52%, 정읍권 34.22%, 안동권 33.65% 다음(중진료권 평균은 22.01%)이었으나 강원도에선 가장 높았다. 2019년 27.05%→2020년 28.71%→2021년 30.07%→2022년 31.64%로 계속 높아졌다. 도내에서 유일하게 30%(원주권 19.74%, 춘천권 23.31%, 강릉권 24.68%, 속초권 26.20%, 동해권 26.41%)를 넘긴 지역이기도 했다.

“작년에도 따냈는데 그 자리에 또 지었더라고요.”

아내가 남편을 대신해 ‘사태’를 설명했다. 남편은 얼굴이 잔뜩 부어 있었다. 떴으나 떴는지 모를 만큼 두 눈이 부풀어 있었다.

“말벌집이요.”

병원들이 문을 닫는 주중 야간이나 주말·휴일엔 영월권 전역의 진료가 멈췄다.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맞은 사람들이 영월·평창·정선의 하나뿐인 종합병원이자 긴급 대응이 가능한 규모로는 사실상 유일한 영월의료원 응급실로 달려왔다. 산이 많고 시골인 이 지역에서 여름철 가장 빈번한 질환은 벌 피해였다. 올해는 이른 폭염까지 덮치면서 활동성과 공격성이 강해진 벌들이 맹위(‘2025 소방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벌집 제거 출동은 2022년 19만3986건→2023년 23만2933건→2024년 30만4821건으로 크게 증가)를 떨쳤다. 의료취약지역일수록 기후 위기의 독성도 강해졌다. 몰릴 땐 두세 환자 중 한명꼴로 벌에 쏘여 찾아왔다. 조승연이 남편의 부은 눈과 몸의 발진을 살폈다.

“일단 주사 맞으시고 냉찜질하면서 가라앉는지 보세요. 약도 처방해드릴 테니 그래도 부기가 안 가라앉으면 한번 더 오시고요.”

말벌에 쏘이면 아나필락시스(격렬한 알레르기 반응) 쇼크가 올 수 있었다. 숨쉬기가 힘들어지면서 심할 땐 몇분 사이에 사망(최근 3년간 38명 심정지)하기도 했다. 아내가 남편을 데리고 나가며 말했다.

“119 불러서 벌집 따냅시다. 손주들 놀러 왔다가 쏘이면 큰일 나겠어.”

도시 응급실과는 크게 다른 풍경이었다. 벌뿐 아니라 개, 뱀, 지네에 물린 사람들이 고통과 당황이 뒤섞인 얼굴로 찾아왔다. 진드기가 팔을 파고든 환자도 있었다. ‘병원의 지역성’이 환자들의 병증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모기 물린 자리가 심하게 부어오른 청소년(7월6일 오후 3시40분)이 엄마와 함께 와서 주사를 맞았다. 옻이 벌겋게 오른 남성(6월30일 저녁 7시58분)은 온몸을 덮은 두드러기에 시달리며 태백에서 넘어왔다. 나뭇가지를 자르다 가시에 손을 찔린 사람(7월6일 오후 3시35분)도 “진짜 이렇게 아픈 건 처음”이라며 “엄살 아니니 믿어달라”고 호소했다.

지난달 18일 오전 영월군 영월읍내에서 주민들이 도로 옆을 걸어가고 있다. ‘영월권’(영월·평창·정선)은 전체 인구 중 33.39%가 65살을 넘긴 초고령 사회였다. 위준영 김승하 피디

“가만히 있어도 쓰러질 판인데 땡볕에 큰일 나요.”

7월6일 밤 10시45분. 속 울렁임과 어지러움으로 병상에서 링거를 맞고 있던 74살 할머니의 혈압을 확인하며 조승연이 주의를 줬다. 할머니를 데려온 초로의 사촌 동생이 고자질하듯 전했다.

“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할아버지를 어제 요양병원으로 보내느라 신경을 많이 쓰더니만. 밤중에 전화가 와서 속이 뒤집어진다길래 제가 모시고 왔어요. 글쎄, 자식들 준다고 종일 감자를 캤더라고.”

동생은 계속 일렀다.

“혼자 계시면서 잡수지도 않고. 감자 캐지 말라고 그렇게 말렸는데도 자식들 준다면서. 그놈의 자식들은 다 도시로 나가버려 없고 가까운 데 사는 죄로 만날 나만 불려 다니지.”

핀잔과 걱정을 번갈아 쏟아놓으며 동생은 언니의 손을 꼭 잡고 곁을 지켰다.

“한동안 감자 캐시면 안 돼요. 선풍기 틀어놓고 집에 누워 계세요.”

당부를 남기고 옆 병상으로 이동한 조승연이 89살 할머니에게 물었다.

“아직 목사님 통화 안 됐어요?”

어깨 통증으로 구급차에 실려 온 고령의 할머니가 머리를 저었다. 조승연이 진통제 주사를 처방하며 입원하자고 했으나 할머니는 “목사님을 기다려야 한다”며 수속을 밟지 않았다. 보호자 없이 혼자 사는 할머니가 의지하고 상의할 사람은 동네 교회 목사뿐이었다. 일주일 중 교회가 가장 바쁜 일요일이었다. 전화가 걸려 온 건 응급실에 도착하고 3시간이 지난 뒤였다. “입원 잘하시라”는 목사의 말을 듣고서야 할머니는 간호사를 따라 입원실로 올라갔다.

지난 6월30일 저녁 영월의료원 응급실에서 당직 의사 조승연씨가 개에 물려 피를 흘리며 찾아온 환자의 찢긴 다리를 봉합하고 있다. 이문영 기자

응급실이 곧 휴일 외래 진료실

대학병원 응급실이라면 들어갈 수도 없는 환자들이 영월의료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문 연 병원이 없는 시간대에 의료원 응급실은 영월·평창·정선 전체의 외래 진료실을 겸했다. 병원 선택지가 넓은 대도시와 달리 의료취약지역의 지방의료원 응급실은 1차 병원부터 종합병원까지의 역할을 모두 감당했다. 지역 주민과 가장 먼저 접촉하며 ‘의료전달체계의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수행하는 ‘주치의제도’는 의료취약지일수록 시급했다. 주위에 갈 병원이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환자들에겐 상급병원 진료 필요를 판단하고 예약까지 처리해주는 주치의가 절박했지만 국내에선 제도화되지 못하고 있었다.

띵동댕 띵동댕.

환자들이 문밖에서 누르는 벨 소리가 응급실을 잇따라 울렸다. 경찰 체포 과정에서 무릎이 찢어진 남자(7월6일 오후 1시)가 수갑을 찬 채 조승연의 봉합을 받았고, 작업 도중 그라인더에 손목이 갈렸으나 다행히 혈관은 무사한 남성(오후 3시59분)도 그가 바늘로 꿰맸다. 손으로 배를 누를 때마다 비명을 뱉는 환자(오후 4시10분)는 혈압이 계속 떨어졌다. 그의 가슴 안엔 ‘페이스 메이커’(인공심장박동기)가 심겨 있었다. 한달 전에도 복수가 차서 응급실로 내원한 적이 있는 그는 혈소판 수치가 3만7000/μL(μL·마이크로리터)밖에 되지 않았다. 5만은 넘어야 피가 나더라도 지혈이 됐다. 어지러움으로 넘어졌다가 상처라도 나면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의료취약지역이라도 지혈은 돼야 했다. 작은 상처가 생명의 위기로 비화되지 않으려면 공공병원부터 안정된 ‘페이스’로 끌어올려야 했다. 경증과 중증 환자들이 5분 단위로 응급실로 밀려들고 있을 때 영월의료원도 치료해주지 못하는 환자들은 약과 의사를 찾아 영월 밖을 헤매고 있었다.

※ 4회에선 투석을 받기 위해 평창에서 주 3회 영월로 와야 하는 86살 환자와 영월 유일의 종합병원에서도 투석받지 못해 군 밖으로 나가야 하는 46살 환자의 엇갈린 고충을 옮깁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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