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들판, 그 길… 번뇌에 쉼표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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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자신의 걸음에 의지해 그저 묵묵히 걷는 순례길.
22일 '한국의 산티아고'라 불리는 충남 당진 '버그내 순례길'을 걸었다.
버그내 순례길은 당진 솔뫼성지부터 합덕성당, 신리성지를 잇는 약 13.2km의 천주교 순례길.
버그내는 합덕 장터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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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떠나 자신 삶 돌아보는 걸음이길
온전히 자신의 걸음에 의지해 그저 묵묵히 걷는 순례길. 종교가 없어도 상관없다. 고즈넉하게 펼쳐진 들판 사이를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동안, 온갖 번뇌로 들끓던 마음이 어느새 부드럽게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으니.




‘헉헉’거리며 성당 앞 계단을 오르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빛의 광채가 온통 눈을 감쌌다. 작열하는 태양이 정확하게 성당 뒤에 숨어 마치 광배(光背)와 같은 효과를 냈다. 이런 점까지 고려하고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 힘든 삶을 살았던 이들에게는 성당에 오는 것만으로도 천국에 온 듯한 느낌을 줬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워낙 아름다운 건물이라 드라마, 영화에도 많이 등장한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수상한 파트너’ ‘정년이’,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을 여기서 찍었다고 한다.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년) 등을 거치며 40여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는 이름이 밝혀진 내포 지역 순교자 중 10%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순교해 성인이 된 사람만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1818∼1866), 성 오메트르 베드로 신부(1837∼1866), 성 위앵 루카 신부(1836∼1866), 성 황석두 루카(1813∼1866), 성 손자선 토마스(?∼1866) 등 5명에 이른다. 인근에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46기의 무명 순교자 묘지도 있다. 실제 순교자는 이보다 몇 배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저녁 무렵인데도 땅의 열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태양보다 뜨거운 마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걷던 길이어서일까. 종교를 떠나 자신의 삶을 진실함으로 채우려 했던 옛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하루였다.
당진=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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