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인간세상을 점령하라!” 너구리족에 주어진 지상명령
생김새와 습성 빼닮은 한국 너구리와 미국라쿤
분류학적으로는 완전히 딴 종...교배도 불가능

국민 놀이공원으로 사랑받는 서울 잠실의 실내 놀이동산이 올해 문을 열었다면 절대로 너구리를 마스코트로 내세우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 놀이공원이 생기던 1980년대 후반만 해도 너구리는 라면 이름이나 인기 전자오락, 프로야구 선수의 별명으로는 친숙해도 주변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동물이었을 테니까요. 지금은 어떨까요? 공원과 하천 둔치는 물론 아파트 단지까지 출몰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접촉했을 때 광견병 감염을 걱정해야 하는 유해 조수로 슬슬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인간 세상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이 너구리를 이야기할 때 바늘과 실처럼 딸려오는, 너구리와 빼닮은 녀석이 있죠. 라쿤이라고도 알려진 미국너구리입니다. 오늘은 너구리, 미국너구리와 그 친척들을 아우르는 ‘너구리족’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나가려고 합니다. 회색 얼굴에 검은 눈두덩, 짧은 네 다리, 퉁퉁하면서도 다부진 몸집…. 너구리의 첫인상은 애매하다는 겁니다. 귀엽다고 보기엔 징글맞고, 위험해 보이는 것 같아도 친근한 인상이죠.

깜찍한 것 같지만 이름이 주는 느물느물한 인상의 그림자가 짙어요. 이런 너구리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바로 개의 한 종류라는 겁니다. 미국에서도 자기네 너구리(미국너구리)를 라쿤(racoon)이라고 부르고, 한국 등 아시아의 너구리는 라쿤 독(racoon dog)이라고 부르죠. 다시 말해 너구리는 일반적인 동물 분류 기준으로 볼 때 늑대·여우·코요테·리카온 등과 함께 갯과 패밀리의 일원입니다. 왜 너구리가 광견병을 옮기는지의 의문이 여기서 풀립니다.

반면 미국너구리는 미국너구릿과라는 별도의 집안을 형성하고 있어요. 갯과와 미국너구릿과 모두 포식자들의 거대 파벌인 식육목에 속해 있습니다. 하지만 과가 다르다는 것은 아예 완전히 별개의 종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이 둘 사이에 불꽃이 일어나 흘레모드로 돌입한다 한들 하이브리드종이 탄생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를 터전으로 삼는 너구리와 미주대륙의 토종종물인 미국너구리는 습성이 아주 빼닮았어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환경 적응력입니다. 너구리와 마찬가지로 미국너구리도 서식 영역을 도시와 주택가로 넓혔어요.

뉴욕 같은 초거대 도시의 한복판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며 음식물 쓰레기로 식사를 하는 모습조차 당연한 일상처럼 여겨지고 있을 정도니까요. 너구리와 미국너구리는 몸집도 눈두덩진 얼굴도 빼닮은 외모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차이점이 있어요. 우선 미국너구리가 주둥이가 오똑하고 털의 명암이 뚜렷해 조금은 더 친근하고 귀여운 인상입니다. 몸통 색깔과 거의 비슷한 꼬리를 가진 너구리와 달리 미국너구리는 꼬리가 흑백 고리 무늬를 하고 있는 것도 확연한 차이점이죠. 이렇게 보면 미국너구리가 좀 더 유순하고 연약할 것 같지만, 의외로 식단을 보면 미국너구리가 맹수 색채가 확연해요.

너구리는 육식(쥐·개구리·뱀·벌레)과 채식(과일·곡식·도토리)을 골고루 즐기는 반면 야생에서의 미국너구리의 식단은 개구리·지렁이·가재·벌레 등 육식 중심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자연에서 도시로 서식지를 넓히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접촉면이 넓어졌다는 공통점을 가진 두 너구리는 여러 형태로 캐릭터화됐다는 점까지 공유하고 있어요. 한국과 함께 너구리의 서식지인 일본에서는 만화영화의 명가 지브리스튜디오에서 1994년 너구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폼포코너구리작전’이 만들어졌죠. 미국에서는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 마스코트로 ‘로니’라는 미국너구리가 등장했어요.

이는 미국이 뒤이어 올린 올림픽에서 국조 흰머리수리(1984년 로스앤젤레스) 곰·토끼·코요테(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등 토종 동물들을 올림픽 마스코트로 내세우는 첫걸음이 됐죠.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95년 개봉된 디즈니 만화영화 포카혼타스에서는 어마어마한 먹성을 자랑하는 ‘미코’라는 이름의 미국너구리가 주인공 인디언 공주 포카혼타스의 단짝 친구로 등장했습니다. 너구리라고 이름지어진 짐승은 이 둘 뿐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미국너구릿과에는 간판격인 미국너구리에 가려진 다른 종류들이 있어요.

우선 남아메리카 대륙 중·북부에 살고 있는 게먹이미국너구리가 있어요. 역시 미국너구릿과이지만 족제비에 원숭이의 외모를 합친 듯한 생김새를 한 긴코너구리가 있습니다. 얼룩무늬털이 돋은 꼬리를 바짝 세우고 풀숲을 뒤져 사냥감을 찾아내는데, 이구아나의 천적 중 하나예요. 우리나라 여러동물원에서 야행성 동물로 전시하고 있어 대중에 친숙한 킨카주 역시 미국너구릿과의 일원이에요. 이밖에 너구리라고 이름붙였지만 너구리와는 전혀 무관한 놈들이 두 종류가 더 있습니다. 오리너구리와 바위너구리인데요. 알다시피 오리너구리는 알로 번식을 하는, 가장 원시적인 젖먹이짐승입니다. 바위너구리는 바위에서 살면서 너구리와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믿기힘들게도 분류학상으로는 코끼리와 육촌뻘 정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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