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연구자공제회와 학문공동체

김명하 안산대 유아교육과 교수 2025. 8. 26. 19:2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7일 공식 출범하는 ‘연구자공제회’
의료비·경조사 지원 단순복지 아냐
안정된 지위 보장받지 못한 연구자
개별적 고통을 사회적 문제로 전환
학문공동체의 새 기준 세우는 시도

김명하 안산대 유아교육과 교수

대학에는 안정된 지위를 보장받지 못한 채 강의와 연구를 이어가는 이들이 있다. 계약 단위로 고용된 전임교원, 강사, 독립 연구자들이다. 같은 교실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를 수행하지만, 제도적 조건과 처우는 정년트랙 교수와 다르다. 이들의 계약은 짧고 재계약 여부는 불확실하다. 연구비와 학술 지원에서도 후순위로 밀리고, 생활상의 기본적 지원에서도 제외되곤 한다. 대학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은 공유하지만 권리와 혜택은 공유되지 않는 구조, 이것이 불안정 연구자의 자리를 규정해 왔다.

독립연구자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사람은 사회 속에서 자리를 부여받고 타인의 환대를 통해 성원권을 확인받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러나 불안정 연구자에게 주어진 자리는 언제든 지워질 수 있는 임시 자리다. 대학은 이들의 기여로 유지되면서도 그 조건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았다. 성과를 요구하면서도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모순이 지속된 것이다.

교육부의 2023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2023년 국내 대학의 비전임교원 수는 8만1천678명으로 전년 대비 9.0% 늘었다. 이는 정년 보장이 없는 전임교원과 강사를 모두 포함한 수치다. 불안정한 위치의 교원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점은 학문 생태계가 더 많은 부분을 불안정 노동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더 이상 예외적 주변부가 아니라, 대학 운영의 중요한 축을 이미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조돈문 교수는 ‘불평등 이데올로기’에서 불안정 노동이 안정된 노동의 기반을 지탱해 왔다고 지적한다. 대학도 다르지 않다. 강의와 연구의 상당 부분을 계약 단위 연구자가 담당했고 그 위에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교수들의 지위가 가능했다. 따라서 불안정 연구자의 문제는 특정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문 공동체 전체의 문제임을 의미한다.

연구자공제회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다. 의료비와 경조사 지원, 연구 활동 보조 같은 사업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다. 대학과 학문 생태계가 어떤 구조 위에서 작동해 왔는지를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자 불안정 고용을 개인의 불운으로 남겨두지 않고 공동체 전체의 과제로 제기하는 실천이다. 그러므로 연구자공제회의 지향은 단순한 상호부조가 아니다. ‘능력에 따라 기여하고, 필요에 따라 나누는 연대’다. 이 원칙은 시장 논리나 경쟁 지표로 환산되지 않는 연구자의 삶을 유지하는 공동체적 방식이다. 불안정 구조를 전제로 한 최소한의 안전망이 아니라, 학문 공동체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려는 시도다.

2025년 8월27일 오늘, 연구자공제회가 공식 출범한다. 출범은 새로운 조직 하나가 추가되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연구자의 조건을 공적 의제로 끌어올리고 학문 생태계의 불안정을 사회적 과제로 드러내는 집단적 선언이다. 지금까지 불안정 연구자는 대학 안에 존재했으나, 제도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들이었다. 공제회의 출범은 보이지 않던 존재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그 조건을 사회에 묻는 첫 장면이다.

연구자공제회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출발이다. 불안정 연구자의 조건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학문 공동체의 문제로 제기하며 불안정한 조건을 정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방식의 연대를 모색하는 실천이다.

학문이 사회적 자산이라면 그 자산을 만들어내는 연구자의 삶 또한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 연구자공제회의 출범은 그 사실을 다시금 환기한다. 불안정 연구자의 상황을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전환할 때, 우리는 더 지속 가능한 학문 생태계를 이야기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연구자들이 공제회에 참여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학문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연구자공제회의 의의는 제도의 보완을 넘어 개별적 고통을 연결해 사회적 문제로 전환하는 데 있다. 그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다시 설 수 있다. 연구자공제회가 내민 연대의 손길에 더 많은 연구자와 시민이 함께하길 희망한다.

/김명하 안산대 유아교육과 교수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Copyright © 경인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