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칼럼] ‘친미주의자 이재명’의 귀환

이번 미국 워싱턴 한미정상회담은 한편의 반전극이었다.
회담을 앞두고 워싱턴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반미주의자’로 보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아마도 경기지사 시절 해방 후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한 것을 두고 ‘점령군’으로 표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욱이 회담 직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한국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가. 숙청이나 혁명같아 보인다”는 글을 남기며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회담이 시작되고 이 대통령의 설명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오해였다’고 하면서 일단락됐다. 회담은 오히려 화기애애했다.
사실, 이 대통령을 반미로 볼 만한 언행은 찾기 힘들다. 오히려 친미적 발언을 해왔다. 12·3 비상계엄이 실패로 돌아가고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된 후 권력이 거의 손 안에 들어왔다고 여겨진 상황에서 표를 생각한 전략적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는 운동권도 아니었고 반미 시위에 적극 가담했던 적도 없다. 그가 좌파적 사고를 지녔고, “셰셰” 등 친중으로 인식될 만한 말을 했기에 그 반대급부로 ‘반미’가 붙은 게 아닌가 싶다.
이 대통령은 누구처럼 미국문화원을 난입해 점거했거나, 심야에 미 대사관저에 침입해 기물을 부수고 시너를 뿌려 불을 지르려 한 전력도 없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칭송하는 것을 회담 전략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세계 평화를 홀로 지키는 위대한 파수꾼’으로 치켜세웠다. 한반도 평화를 가져올 유일한 지도자라고도 했다. 낯간지러운 수사지만 지능적 전략이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압박할 때 말해온 주한미군 철수를 입 밖에 내지 않았고,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도 하지 않았다. 나아가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 의사까지 비쳤다.
상대를 높이고 나를 낮추면서 국익을 취하는 협상은 역사의 물길을 돌려놓는다. 세계 2차대전 때 영국 윈스턴 처칠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세계 자유를 지키는 미국의 영웅적 역할”을 강조하며 끝없는 찬사를 보냈다. 겸양과 구애 속에서 영국은 무기대여법(Lend-Lease Act)을 통해 미국의 군수지원과 참전을 이끌어냈다.
자존심을 접고 상대를 높이는 것이 때로는 국익을 살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반미주의자’로 알려졌던 이 대통령의 변신은 아무리 전략적 운신이라 해도 놀라울 따름이다. 그의 미국관에 우려를 갖고 있던 자유우파 진영의 걱정을 상당히 덜어내는 효과를 얻었다.
문제는 중국이다. 이 대통령은 ‘친중주의자’로 통해왔다. 최대 교역국 중국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제와 안보를 모두 확보하는 것은 난제 중 난제다. ‘정교한 전략적 투트랙’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미국으로 향하는 공군1호기 기자간담회에서 “친중도 혐중도 없다”며 “국익에 도움이 되면 가까이, 아니면 멀리하는 것”이라고 잘라말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는 “과거에 한국은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태도를 취한 게 사실이지만, 이제 과거처럼 이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용과 원칙을 절묘하게 섞은 태도다.
이 대통령의 트럼프 칭송을 두고 ‘아첨으로 환대를 샀다’는 말도 한다. 그렇지만 그는 ‘국익을 위해서는 미국 대통령의 가랑이 사이를 기겠다“고 했다. 그의 진심이 원래 친미인데 이번에 드러난 것인지, 아니면 변심인지 두고 볼 일이다. 외교는 밖으로 표현된 것, 결과로 평가받는다.
이 대통령이 이런 기조로 일관한다면, 한국은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필요한 동맹’으로 인정받으며 동시에 경제적 파국을 피하는 균형 외교로 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는다. ‘친미주의자 이재명’의 귀환이 이재명에게도 좋고 대한민국에도 좋길 바란다.
이규화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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