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항쟁 희생자 아내와 딸의 ‘속울음’…“괴롭힘에 미친 사람 행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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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시인에게 소주 한병 마시고 그 시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맨정신으로는 못 하니까. (사찰) 경찰들이 입을 맞추겠다고 혀를 밀어 넣었을 때 내가 그걸 깨물어가지고 피가 내 입에 고여서, 그 피의 냄새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그래서 나는 한평생 누구하고 입 맞춘 적이 없어. 그래서 그 시인이 그 이야기를 시로 쓴 적이 있어.'
'여학교까지 다닌 신여성이었던 어머니는 40대 초반에도 경찰이 아버지 일로 부르면 항상 해진 삼베 치마 옷을 입고 얼굴엔 가마솥 밑 검정을 묻히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경찰서에 갔어. 어느 날은 집에 돌아올 때 아이들이 미친 여자라고 돌을 던지고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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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문학’ 최근호 구술에서
‘모녀 2대’의 경찰 사찰 피해 증언

‘내가 어떤 시인에게 소주 한병 마시고 그 시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맨정신으로는 못 하니까. (사찰) 경찰들이 입을 맞추겠다고 혀를 밀어 넣었을 때 내가 그걸 깨물어가지고 피가 내 입에 고여서, 그 피의 냄새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그래서 나는 한평생 누구하고 입 맞춘 적이 없어. 그래서 그 시인이 그 이야기를 시로 쓴 적이 있어.’
‘대구10월항쟁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를 16년 동안 이끌어온 채영희 회장이 계간 ‘사람의 문학’(2025년 여름호)에 실린 구술에서 밝힌 내용이다. 구술은 10월항쟁 전문 연구자인 김상숙 성공회대 연구교수가 진행했다.
채 회장 부친(채병기)은 해방 이후 사회주의 활동을 하다 1946년 대구 서구 책임자로 10월항쟁을 이끌었으며 4년 뒤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학살당했다. 조부(채충식)는 일제 강점기에 신간회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이다. 해방 전 여운형과 함께 건국동맹 활동을 했고 1948년엔 통일정부 구성을 위한 남북협상에 참여하기 위해 삼팔선을 건너기도 했다.
80쪽 분량 구술에서 채 회장은 1950년대 중반부터 30년 가까이 그의 모친(이분이· 1928~1995)과 자신이 사찰 경찰에게 당한 피해를 상세히 밝혔다.

불과 18살에 남편과 떨어져 재혼하지 않고 1남1녀를 키운 그의 모친은 많으면 다섯 명까지 수시로 짝을 이뤄 집에 드나드는 경찰의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단다. 당시 남편의 학살 사실을 몰랐던 어머니는 ‘빨갱이 남편이 언제 북에서 내려올지 모른다면서 아들과 딸까지 들먹이는 경찰 협박에 크게 저항할 수 없었다’고 채 회장은 밝혔다.
‘경찰이 우리 집 평상에 누워 어머니에게 국수 말아오라고 시키기도 했어.’ 어머니는 경찰의 괴롭힘에서 벗어나려고 미친 사람 행세까지 했단다. ‘여학교까지 다닌 신여성이었던 어머니는 40대 초반에도 경찰이 아버지 일로 부르면 항상 해진 삼베 치마 옷을 입고 얼굴엔 가마솥 밑 검정을 묻히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경찰서에 갔어. 어느 날은 집에 돌아올 때 아이들이 미친 여자라고 돌을 던지고도 했지.’
경찰의 괴롭힘은 딸에게로 이어졌다. ‘20대 때 경찰이 나를 불러 지프에 태우고 갔어. 그때 ‘이놈에게 당하겠다’는 마음이 들어 힘겹게 차 문을 열고 계단식 논두렁에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쳤지.’
평생 독신으로 산 채 회장은 이런 말도 했다. ‘딸이 엄마 팔자를 닮는다는데…. 엄마가 목울음을 많이 울었어. 이를 깨물고 그렇게 울음을 참고 그랬어. 나도 엄마처럼 똑같이 속울음을 그렇게 울었어. 소리 내어 울어본 적이 없어.’
그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너무너무 사랑했다’고도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사주고 간 양산을 천갈이를 몇번이나 하면서 끝까지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 김장도 따로 했어. 아버지에 대해 나쁜 얘기도 하지 않았어. 용기 있고 좋은 사람이라고, 좋은 일을 하다 억울하게 돌아가셨다고 늘 이야기했지.’
정대호 사람의 문학 발행인은 “10월항쟁 희생자 부인들 중 재혼을 하지 않은 이들이 경찰의 성적 괴롭힘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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