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를 위해 고인돌 옮겼다” 포항 인비리 유적 훼손 논란

서의수 기자 2025. 8. 2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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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고고유산 임의 이전에 주민 반발…비지정 문화재 보호 사각지대 드러나
전문가 “원위치가 곧 역사”…문화재 관리 기준과 제도 보완 시급
포항시 기계면 인비리 고인돌이 기계 새마을운동발상지 운동장으로 옮겨져 있다.서의수 기자
수천 년간 자리를 지켜온 선사시대 유적이 지역 축제를 이유로 자리를 떠났다.

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 인비리에 있던 고인돌 5기가 최근 '기계 고인돌 축제'를 위해 새마을운동발상지운동장으로 옮겨지면서 "역사적 의미를 파괴한 문화재 훼손"이라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대형 크레인이 고인돌을 옮기는 모습.경북일보 독자 제공
수천 년 세월을 버텨온 고인돌이 단 몇 시간의 축제 전시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 절차적 정당성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역사적 의미와 문화재 보존의 원칙이 흔들린 셈이다. "축제를 위해 옮겼다"는 선례가 문화재 관리 전반의 경계선을 허무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파장은 작지 않다.

이번에 옮겨진 인비리 고인돌은 국가나 지자체 차원의 지정은 받지 않은 비지정 문화재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청동기 시대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고학적 가치가 크다고 본다. 무엇보다 고인돌은 원래 자리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적 의미라는 지적이다.

도굴 현장을 보는 듯한 처참함에 인비리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크레인이 고인돌을 옮기며, 고인돌을 실은 트럭의 모습.경북일보 독자 제공
박만수 이장은 "고인돌이 옮겨졌다는 사실을 열흘 전쯤 제보로 처음 알았다"며 "주민 누구도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 행정 절차를 거쳤다 해도 자리를 지켜온 유물을 뽑아 옮기는 것은 본질적 훼손"이라고 지적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원상복구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주민들은 이동 과정 자체도 문제로 삼는다. 주민 이동렬(78)씨는 "흙으로 메워진 자리를 보니 도굴 현장을 보는 듯했다"며 "비지정이라 해도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데 일반 바위처럼 다룬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포항시 기계면 인비리 고인돌들이 땅이 흙으로 메워져 있다.서의수 기자
이에 대해 축제를 주최한 기계문화의집 추진위원회는 "축제에서 실물 전시 필요성이 제기됐고, 사유지 토지주가 불편을 호소해 이전을 추진했다"며 "문화재청과 포항시 협의를 거쳐 승인을 받았고, 경주문화재연구소 참관 조사 후 이상 없음 판정을 받아 절차대로 옮겼다"고 해명했다. 이어 "400만 원을 자부담해 옮겼고 훼손은 없었다"면서도 "주민에게 미리 알리지 못한 것은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를 강하게 비판한다.

포항시 기계면 인비리 고인돌이 기계 새마을운동발상지 운동 장으로 옮겨져 있다.경북일보 독자 제공
강호진 전 영일고 교장(향토사학자)은"지정 여부와 무관하게 고인돌은 원위치에 있을 때 가치가 있다"며 "위치를 바꾸는 순간 고고학적 의미가 상실된다"는 것이다.

또 "축제를 명분으로 유적을 옮기는 선례가 남으면 다른 문화재도 비슷한 이유로 훼손될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제도적 허점이다. 현행 문화재보호법 체계에서 비지정 문화재는 법적 보호 장치가 미약하다. 지정문화재처럼 개발 제한이나 복원·보존 의무가 강제되지 않아 행정기관이 허가를 내주면 이동·변형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도난·도굴, 무단 이동 등 훼손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음에도 공공 자원 투입은 제한적이다.

전문가들은 "비지정 문화재라도 장차 지정문화재로 승격될 수 있는 잠재 가치가 크다"며 "원위치 보존 원칙을 명확히 하고 제도적 보완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