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이 지운 아프간 여성의 목소리, 영화로 되살려

김은형 기자 2025. 8. 2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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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여성영화제 참석한 아프간 감독 로야 사닷
제2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SIWFF)에 참석한 아프가니스탄 영화 감독 로야 사닷. SIWFF 제공

“2017년 첫 장편영화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왔을 때는 모든 순간이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이번에는 비행기가 공항에 내렸던 그 순간은 기뻤지만 동시에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모국이 아닌 타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탄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그렇습니다.”

지난 25일 제2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SIWFF)가 열리고 있는 서울 메가박스 신촌 근처 카페에서 만난 감독 로야 사닷(42)이 말했다. 극영화 ‘시마의 노래’, 다큐멘터리 ‘날 선 평화의 경계’ 두 작품을 들고 한국에 온 그의 모국은 아프가니스탄이다. 그는 2021년 새 영화 제작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에 갔다가 탈레반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그 이후 아프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모국에서 여성이 영화 연출은커녕 학교도 다닐 수 없게 된 지금, 그는 나라 밖에서 아프간 여성의 목소리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망명과 함께 개인의 삶까지 크게 변한 상황에서 영화 두편을 동시에 만드는 건 큰 도전이었습니다. ‘시마의 노래’는 2018년쯤 남편과 함께 시나리오를 썼고 아프간에서 촬영할 계획이었어요. 하지만 탈레반 정권이 들어오면서 제가 운영하던 스튜디오의 촬영 기기들도 멈춰 섰죠.”

제2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SIWFF) 상영작 ‘시마의 노래’. SIWFF 제공

2001년 미국의 침공과 함께 축출됐던 탈레반이 2021년 다시 권력을 장악하기 직전까지 아프간 여성들은 빼앗겼던 목소리와 교육의 기회, 이동의 자유를 되찾았었다. 사닷 감독은 그때 대학 교육을 받고 2006년 부산영화제가 주최하는 아시아필름아카데미(AFA)에서 영화를 배웠다. 이후 그는 다양한 작품과 프로젝트로 부산영화제에 여러번 참여했으며, 아프간 여성 최초로 티브이(TV) 드라마를 만들고 아프간의 첫 여성영화제를 만드는 등 눈부신 활동을 해왔다. 비록 아프간에서 그의 활동은 중단됐지만, 남편과 여동생은 여전히 가장 가까운 동지이자 동료로 이번에 출품한 두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

“의도치 않게 두 작품을 동시에 진행했어요. ‘시마의 노래’ 촬영 준비를 하는 동안 군 철수를 앞둔 미국의 중재 아래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의 평화 협상이 시작됐죠. 어렵게 되찾은 여성의 권리를 다시 빼앗길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정부에 강하게 요구해 대표단 21명 가운데 4명이 여성으로 채워졌습니다. 그 현장을, 탈레반과 정면으로 마주한 여성들을 꼭 찍고 싶었습니다.”

사닷 감독이 처음 만든 다큐멘터리 ‘날 선 평화의 경계’는 2021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렸던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의 평화 협상에 참여한 여성 정치인 4명을 따라간다. “당시 탈레반뿐 아니라 정부 지도자들도 카메라를 든 여성에게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냈습니다. 탈레반은 이미 곳곳에서 여성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고 있었고요. 그럼에도 여성들이 만들어가는 희망의 현장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죠.”

하지만 협상은 소득 없이 끝났고 2021년 여름 탈레반은 미군이 떠난 카불을 접수했다. 여성들은 다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려야 하고, 공공 장소에서 목소리를 숨겨야 하며 교육 기회도 박탈당했다. 영화에 등장한 여성 정치인 4명도 사닷 감독처럼 국외로 망명길을 떠나야 했다.

제2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SIWFF) 상영작 ‘날 선 평화의 경계’. SIWFF 제공

희망을 찾아내기 힘든 국면이 됐지만 그는 아프간 여성들과 전세계 여성들이 연결되고 소통하기를 바란다. 아프간 촬영이 불가능해졌을 때 유럽의 제작자들과 북미와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출연을 위해 촬영지 그리스로 날아와 준 아프간계 각국 여성들이 연대해 2024년 완성한 ‘시마의 노래’는 연결과 소통의 증거이기도 하다. 1978년을 배경으로 하는 극영화 ‘시마의 노래’는 소련이 침공하기 직전 두 엘리트 여성의 서로 다른 행보를 통해 아프간이 오늘에 이른 연원을 추적한 작품이다.

사닷 감독은 “전세계 어디든지 전쟁의 첫번째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점에서 아프간의 참상은 특정 종교나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의 문제다. 영화를 통해 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지 한국 여성들과 함께 생각하고, 평화와 자유, 여성의 권리에 대한 가치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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