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돌발변수 긴장감 최고조에 만난 한·미 정상…140분 뒤 웃으며 나왔다

정환보 기자 2025. 8. 26. 11:4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 도착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영접을 받고 있다. 2025. 8. 26. 김창길 기자

이재명 대통령에게 취임 후 첫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25일(현지시간)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하루였다.

정상회담 직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한국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글을 올리며 파국 가능성까지 제기된 가운데 시작한 회담은 양국 정상이 대화에 대화를 거듭하며 서서히 분위기를 풀어갔다. 생중계된 정상회담에 이어 확대회담에 오찬까지 함께한 한·미 정상은 시간이 갈수록 속 깊은 대화를 나누며 신뢰를 쌓았고, 140분 뒤 이 대통령은 기분 좋게 백악관을 나설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 대통령과의 첫 만남을 불과 3시간 앞두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게시물을 올렸다.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로 글을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은 “숙청이나 혁명처럼 보인다”며 “우리는 그곳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늘 백악관에서 새 대통령(이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라며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하다”고 글을 마쳤다.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급작스럽게 한국과 관련한 트럼프의 언급이 올라온 탓에 회담을 준비하던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허위 계정이거나 가짜뉴스 아니냐는 설왕설래가 오갔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워싱턴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공식 계정인지 좀 확인을 해봐야 될 상황인 것 같다”며 “지금 상당히 페이크 뉴스(가짜뉴스)들이 이래저래 국내에도 그렇고 좀 많이 뜨고 있는 상황이라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회담 상대인 트럼프 대통령이 올렸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당황하고 있는 듯한 답변이었다.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그 내용이 탄핵 반대 집회나 부정선거론자들의 주장을 수용했을 법한 내용으로 유추될 소지가 있어 회담준비팀의 당황스러움과 충격이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측의 요청으로 정상회담 시간까지 지연되면서 이 대통령 등 회담 참석자들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 대통령은 당초 예정된 낮 12시를 30여분 넘긴 12시33분 회담장이 있는 백악관에 도착했다. 이 대통령은 초조한 표정이 묻어난 채로 백악관 입구에서 차량에 내렸고 마중을 나온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지켜보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펜에 관심을 보이자 이 대통령이 즉석에서 선물했다. 김창길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방명록에 ‘한·미동맹의 황금시대 강하고 위대한 미래가 새로 시작됩니다’라고 적었다. 서명용 펜은 선물용으로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심을 보여 선물했다. 대통령실 제공

이 대통령이 백악관 방명록에 ‘한·미동맹의 황금시대 강하고 위대한 미래가 새로 시작됩니다’라고 쓴 뒤부터 얼어있던 분위기는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영어와 한국어 중 어느 언어가 정확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며 대화를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서명에 쓴 대통령실 제작 펜에 큰 관심을 보였다. “직접 가져온 것이냐”, “어디서 받은 것이냐”, “두께가 굉장히 마음에 든다”, “정말 멋지다”며 관심을 보인 트럼프 대통령은 “가져갈 거냐”라고 물었고, 이 대통령은 즉석에서 선물로 증정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께서 하시는 아주 어려운 그 사인에 유용할 것”이라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감사를 표하며 “가시기 전에 선물을 드리겠다”고 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받고 싶은 선물이 있다”면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받은 선물을 봤는데, 사진첩이더라”고 말했다.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시작된 회담은 배석자들과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1시간 가까이 생중계로 진행됐다. 한국 측에서는 조현 외교부 장관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미국 측은 J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양 정상의 좌우에 착석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과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등 참모진도 배석자 뒤에 서서 회담에 참석했다. 강경화 주미국 대사 내정자도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회담장에 함께했다.

생중계로 공개된 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피스메이커 역할이 정말로 눈에 띈다” “실제로 성과를 낸 경우는 처음”이라는 등 한껏 치켜세웠고, 트럼프 대통령은 “힐러리 클린턴이 이겼다면 한국에는 핵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하는 모습도 보였다.

기자들의 질의가 이어지며 30분으로 예상했던 공개 회담 시간은 53분 동안 진행됐다. 시작 전 긴장감은 어느샌가 사라진 모습이었다. 강 대변인은 회담 후 브리핑에서 “서로에 대한 칭찬과 덕담이 오가며 끝날 때까지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고 전했다.

비공개로 전환 후 백악관 캐비닛룸에서 열린 확대회담과 연이어 열린 오찬은 화기애애해진 분위기를 끌어올린 시간이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줬고, 중국과 북한의 관계,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 등에 대한 생각을 묻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초청 의사를 전하며 김 위원장과의 만남도 추진해 보자고 권했다. “슬기로운 제안”이라고 평가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당신은 전사다”“미국으로부터 완전한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며 여러 차례 친밀감을 강조했다. “위대한 사람이고 위대한 지도자”라고 이 대통령을 극찬한 뒤 “난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다”는 메시지를 써 전달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과거 암살 위협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며 “우리 둘은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다”고 했고 상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여자 프로선수들의 골프 실력이 왜 좋은지” 물었고, 이 대통령은 “손재주가 좋은 민족적 특성과 연관 있는 듯하다”고 답했다.

대통령실이 25일(현지시간) 공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이재명 대통령에게 준 선물. 백악관 기념 메달과 트럼프 대통령이 사인한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와 오찬 메뉴판.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오찬장에 자리한 한국 참모진 이름표에 서명해주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기프트룸으로 안내해서는 모자, 골프공, 골프티, 커프스핀 등을 가리키며 “마음에 드는 걸 골라 가라”며 서명을 해준 뒤, 백악관 기념주화까지 선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을 만나라고 한 지도자는 처음”이라며 이 대통령을 향해 “정말 똑똑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예정보다 길게 진행된 오찬을 마칠 때 아쉬워한 트럼프 대통령은 “대단한 진전, 대단한 사람들, 대단한 협상이었다”라며 이 대통령과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눴다고 강 대변인은 전했다. 146분의 정상회담과 오찬을 마친 이 대통령의 손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피습 당시 사진이 담긴 책자가 들려 있었다. 이 대통령이 백악관 입장 때 “이시바 총리가 선물로 받았다”고 말한 책자였다.

워싱턴 |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