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 에너지 충전소, 佛 - 사색의 무대, 韓 - 취향 놀이터 카페, 이름은 같아도 다른 가치관 입은 저마다의 공간[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자정이 가까운 시각, 파키스탄 카페 앞에 아저씨들이 도로를 향해 나란히 앉아 있다. 달빛 아래 전통 복장을 차려입고, 술잔 대신 뜨거운 차이(서남아시아 전통차)를 들고 심각하게 앉아 있는 풍경은 그냥 지나칠 수 없게 이국적이다. 술이 금지된 나라라 밤 문화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그들의 밤은 꽤 낭만적이었다. 여자 여행자가 범접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남자들의 세계였다는 점만 빼고. 하지만 알코올 한 방울 없이도 새벽까지 이어지는 카페의 여유라니, 매력적인 문화다.
이탈리아의 카페 풍경은 또 다르다. 유명한 고급 카페를 찾았는데, 웬걸. 커피 가격이 다른 음식과 비교했을 때 차이 나게 저렴했다. 혹시 잘못 본 건가 싶었는데, 이탈리아 커피는 사치재가 아닌 필수재라서 정부에서 가격 상한선을 두기 때문이란다. 그래서인지 아침 출근길, 이탈리아인들이 앉지도 않고 서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원샷’하고 유유히 나가는 모습은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다. 그들에게 카페는 만남의 장소라기보다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에너지 충전소’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분위기가 정반대다. 솔직히 처음에는 파리지앵들이 왜 노천카페에 앉아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음식 먹는데 흙먼지 날리고, 대화하기에도 시끄러운 곳을 왜 고집하는지. 하지만 그들 사이에 섞여보니 커피는 그냥 거들 뿐, 그들은 공간 자체가 주는 여유를 즐기는 듯했다. 책을 읽고, 친구와 담소를 나누고, 혹은 그냥 행인을 구경하는 것. 카페는 오래전부터 사색과 교류의 무대였다. 낮에는 커피, 저녁에는 메뉴가 와인으로 바뀌는 풍경까지 참 프랑스답다.
미국에서 카페는 스타벅스를 필두로 확산된 ‘제3의 공간(Third place)’이다. 집과 직장 사이, 누구나 머무를 수 있는 열린 장소다. 전원 콘센트와 와이파이가 보장된 넓은 테이블은 언제든 사무실이 된다. 테이크아웃 컵을 들고 거리를 바쁘게 오가는 풍경은 미국적 효율의 상징이다. ‘톨-그란데-벤티’로 이어지는 대형 사이즈 문화와 드라이브스루 카페 역시 미국적인 풍요와 속도를 단편적으로 잘 보여준다.
한국의 카페문화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진화를 이뤘다. 한겨울에도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켜는 국민성, 독서실을 방불케 하는 스터디 카페,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테마 카페,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대형 카페, 새벽까지 불을 밝히는 24시간 카페까지. 이제는 유명 카페와 디저트 가게를 찾아다니는 ‘카페 투어’가 하나의 관광 콘텐츠로 자리 잡을 정도로 카페는 한국인들의 취향 놀이터다.
여행자에게 카페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춥거나 덥거나 날씨가 변덕스러울 때, 걷다 힘들고 지쳤을 때, 누군가를 떠올리며 편지를 쓰고 싶을 때, 당 충전이 필요할 때, 카페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다. 나아가 유명 카페나 디저트 순례가 여행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파키스탄에서 카페가 야간 사교의 장이라면, 이탈리아는 에너지 충전소, 프랑스 카페는 사색의 무대, 미국은 제3의 공간, 한국에서는 취향과 경험의 무대가 된다. 같은 ‘카페’라는 이름을 달고도 이렇게 다르다니. 한 잔의 여유는 어디서나 비슷해도, 마시는 방식과 공간의 분위기는 각 사회의 생활과 가치관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여행객으로 카페에 앉으면 그간 보이지 않던 우리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한국 사람들은 참 바쁘게도, 열심히도 산다.
서울대 웰니스융합센터 책임연구원
■ 한 스푼 더 - 차이(Chai)
차(茶)는 전 세계인이 즐기는 음료지만, 파키스탄은 1인당 차 소비량이 연간 1.5㎏이나 되는 차 소비 대국이다. 차이(Chai)는 가장 널리 마시는 밀크티로 홍차와 우유, 설탕, 카르다몸이나 생강, 계피 등의 향신료(마살라·Masala)를 넣어 끓여 만든다. 카후아(Qahwa)는 카슈미르 지역에서 즐기는 허브티로 녹차에 각종 향신료를 넣고 우린 뒤 설탕이나 꿀, 레몬, 견과류를 첨가해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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