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 위기 최전방’ 제주...개인의 노력만으론 막을 수 없다

100도를 넘나드는 아스팔트 위에서 하루를 견디는 노동자, 하루 300건의 배송물량에 숨이 턱 막히는 택배기사, 씨앗이 타들어가는 밭 앞에서 한숨 짓는 농민들, 냉풍기를 쉴 새 없이 돌려도 돼지가 사료를 거부하는 양돈농가, 30도 고수온 바다에 익어버린 넙치를 떠내는 양식어가, 자취를 감춘 갈취를 찾아 먼바다로 나서야 하는 어민들.
[제주의소리] 연속 기획 [기후재난, 위기의 산업현장]은 건설·물류·농업·양돈·양식·수산 등 일선 산업현장을 직접 찾아 폭염과 고수온, 가뭄 등의 이상기후가 우리네 일터의 생존을 어떻게 위협하는 지를 생생히 기록했다.
각 현장의 사정은 달랐지만, 공통된 키워드는 '재난의 일상화'였다. 기후위기는 더이상 미래의 위험이 아닌, 일상 속에 스며든 상시적 재난이라는 점이다.
노동자들은 저마다 얼음물, 냉풍기, 임시 양수기 등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명확히 드러났다. 피해는 반복되고, 대응 비용은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제주는 대한민국 최남단이라는 특성상 기후위기를 가장 먼저 맞닥뜨려야 하는 지역이다. 단순 지역 차원이 아닌 국가적인 대응체계가 구축돼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도정의 현실 인식은 대정부 정책 절충 과정에서 엿볼 수 있다. 제주도가 제21대 대통령선거를 전후로 정부에 요구한 20개 제주전략과제, 27개 지역현안과제 중 기후위기와 관련된 정책 제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나마 '자연과학기술 국책연구 기관 제주본부 설치' 과제에 아열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기관을 유치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기후위기 대응'으로 분류되기 보다는 '국책기관 유치'에 방점이 찍혀있다. 이마저도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기후재난이 당장의 위협이 아니라고 여기는 인식이다. 올해 제주도가 편성한 본예산 기준 기후변화대응 역량강화 예산은 14억829만원으로, 전년도 36억649만원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제주도는 이중 24억원의 '아시아기후변화교육센터 리모델링 시설비'가 빠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반적으로는 전년도에 비해 관련 예산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특히 추경을 통해 관련 부서 예산을 대폭 반영했다고 부연했다.
기후변화 관련 예산은 각 부서로 흩어져 있었다. 가령 '기후대응 도시숲 조성'은 산림녹지과,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연구'는 세계유산본부, '기후변화 대응 축산농장 지원'은 축산과, '기후변화 대응 병해충관리'는 농업기술원과 같은 식이다. 전반적인 대응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숨바꼭질하듯 관련 예산을 찾아야 한다.
대개 '기후변화'라는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기후위기, 기후대응, 기후재난 등의 단어가 혼용되고 있다는 점도 애를 먹는 요소다. 심지어 개중에는 기존에 진행되던 사업에서 '기후대응'이라는 꼬리표만 달아놓은 예산항목도 눈에 띄었다.
전체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가 미비하다는 점은 업무 배치에서도 확인된다. 기후위기 적응대책 수립은 현재 기후환경국 탄소중립정책과 산하의 탄소중립정책팀이 담당하고 있다. 탄소중립정책과는 올해 하반기 조직개편을 통해 신설된 부서다.
다만, 본래 제주도가 역점 추진하는 '탄소중립 2035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수행해야 할 핵심 부서에서 산업현장 적응 대책까지 떠안으며 업무 과중과 정책 우선순위 왜곡이 뒤따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기후변화 대응을 총괄할 독립적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타 지자체와 비교해봐도 상대적으로 1차 산업 비중이 높은 도(道) 단위의 경우 기후변화정책팀(전남·충북), 기후변화대응팀(전북·경남), 기후변화대책팀(충남) 등 이름을 조금씩 달리할 뿐 기후변화 대응 전담부서가 운용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 전담부서가 없는 곳은 강원도, 경상북도 정도다.
'탄소중립'과 '기후변화 대응'은 취지가 유사할지언정 본질은 다르다.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탄소중립 정책과 달리, 기후변화는 당장의 현실적인 대응을 필요로 한다. 기후변화대응과 탄소중립 정책을 등치시키기에는 각각 별도의 부서를 운영하는 지자체도 있다.
기후위기는 단순 환경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산업 현장의 형편과 안전을 동시에 위협하는 종합적인 문제다.
'재난'으로까지 일컬어질 정도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는 오늘날, 선언적 수준의 대책이 아닌 정책, 예산, 연구를 일원화하는 등 전방위적 대응체계가 절실한 시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