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피즘 파고’ 넘은 李대통령…140분간 냉·온탕 오간 한·미 정상회담

박성의 기자 2025. 8. 26. 06:49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회담 3시간 전 “韓에서 숙청·혁명 일어나” 돌발발언에
긴장 속 대면한 양 정상…회담 시작 되자 ‘화기애애’ 분위기 연출
李대통령 “조선업 르네상스 함께”…트럼프 “韓과 협력해 부흥”
회담 140분만 종료…주한미군 기지 부지 소유권 문제는 숙제로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후 첫 한·미 정상회담이 25일(현지시간) 종료됐다. "한국에서 숙청·혁명이 일어나는 것 같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폭탄 발언' 탓에 회담 시작 전 긴장감이 감돌았으나, 이후 마주한 양 정상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약 2시간20분간 대화를 나눴다.

회담 후 재계가 기대했던 추가 관세 인하 등의 낭보는 없었다. 다만 정치권이 가장 우려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오벌 오피스(미 대통령 집무실) 매복 공격'이 발생하지 않았고, 한·미 정상은 지난달 30일 체결한 무역 합의를 유지하는 선에서 첫 정상회담을 마쳤다. 이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피즘(트럼프주의)에 맞서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트럼프 "韓 숙청 일어나"…李 만나자 "오해라 확신"

이날 한·미 정상회담 직전 대통령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회담을 3시간 여 앞둔 25일 오전 9시20분(미국 동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사회관계망서비(SNS) 트루스소셜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숙청이나 혁명처럼 보인다"는 메시지를 남기면서다. "우리는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고 거기(한국)서 사업할 수 없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숙청 및 혁명'의 의미를 정확히 밝히진 않았다. 다만 윤석열 전 대통령을 겨냥한 특검 수사를 의식한 발언이란 해석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 서명 행사가 열린 집무실에서 게시물 의미 관련 취재진 질문에 "최근 며칠간 한국에서 새 정부에 의한 교회와 미군기지 압수수색이 있었다고 들었다"며 "그렇게 해서는 안 됐을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정치권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악명 높은 '오벌 오피스 매복 공격'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백악관을 찾아오는 일부 정상들에게 '공개 면박'을 주며 논란을 불렀다. 지난 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5월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과 대좌한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그 희생양이 됐다. 정가에선 상대를 당황시키는 특유의 화법이 협상 주도권을 쥐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된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직접 집무실 밖으로 나와 이 대통령을 맞이했다. 나란히 붉은색 넥타이를 맨 양 정상은 서로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눴다. 웃으며 조우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내내 서로를 치켜세우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러·우 전쟁 중재 노력 등을 거론하며 "대통령님의 평화를 지키는 미국 역할을 넘어서 새롭게 평화를 만들어가는 피스메이커 역할이 정말로 눈에 띄는 거 같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세계 지도자 중에 전 세계 평화 문제에 트럼프 대통령처럼 관심을 갖고 실제로 성과를 낸 경우는 처음으로 보인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이 대통령이 "대통령께서 피스메이커를 하시면 저는 페이스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과 배석한 참모들은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굿잡'(훌륭하다)이라며 만족감을 표한 뒤 "큰 진전을 함께 이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의 대북 정책과 관련해 과거 한국 대통령들보다 "이 대통령의 접근법이 훨씬 좋다"며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에 힘을 실어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했을 당시 김정은 위원장을 알지 못했지만, 이후 두 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아주 좋은 관계를 구축하게 되었다"며 "우리는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했으며, 이는 매우 중요한 성과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북한과 관련해 큰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분명히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의 펜을 선물하기도 했다. 정상회담을 기록한 서명식(방명록 서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저기 (사인에 사용하는) 펜이 이 대통령의 펜인가"라고 물었고 이 대통령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가져갈 건가"라고 즉석에서 농담을 건넸고, 이 대통령은 웃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의 펜을 선물했다. 이 대통령에게 깜짝 선물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가시기 전에 제가 대통령과 대표단께 선물을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이른바 '숙청·혁명' 발언에 대해선 트럼프 대통령이 "오해라고 확신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며 일단락됐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친위 쿠데타로 인한 혼란이 극복된 지 얼마 안 된 상태고, 내란 상황에 대해 국회가 임명하는 특검에 의해 사실 조사가 진행 중"이라면서 특검 수사 과정에서 교회와 미군 기지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진 데 대해 "미군을 직접 수사한 것이 아닌, 그 부대 안에 있는 한국군의 통제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확인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회담, 변수 없이 종료…'주한미군 기지 부지 소유권' 숙제로

이날 양 정상은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를 구심점 삼아 경제 협력을 확대하자고 합의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님의 꿈처럼 미국이 다시 위대하게 변하고 있는 것 같다"며 "조선 분야뿐 아니라 제조업 분야에서 르네상스가 이뤄지고 있고, 그 과정에 대한민국도 함께하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한국과 협력을 통해 미국에서 선박이 다시 건조되길 바란다"며 "미국의 조선업을 한국과 협력해 부흥시키는 기회를 갖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아가 한·미·일 협력 강화 의지도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아주 소중한 우방이라고 생각하지만, 한·일관계가 다소 껄끄러운 부분이 있었다"며 "저는 위안부 문제가 과거에 몇 차례 해결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 일본은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께서 한·미·일 협력을 매우 중시하고 계시기 때문에 제가 트럼프 대통령을 뵙기 전에 일본과 미리 만나서 (트럼프) 대통령께서 걱정할 문제를 미리 정리했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다"고 답했다.

소인수 회담에 이어 업무 오찬을 겸한 확대회담을 가진 두 정상은 회담 결과에 관한 공동 기자회견을 갖지는 않았다. 다만 지난달 30일 체결한 무역 합의를 큰 틀에서 그대로 지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이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마친 뒤 진행한 포고문 서명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과 무역 협상 결론을 내렸냐'는 질문에 "그렇다. 난 우리가 협상을 끝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한국)은 합의와 관련해 약간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는 우리 입장을 고수했다"며 "그들은 그들이 타결하기로 동의했던 합의를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지난달 30일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1000억 달러 상당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 등을 조건으로 미국이 한국에 부과한 상호 관세율을 기존 25%에서 15%로 10%포인트 낮추는 데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따르면, 무역 합의와 관련해 한국 측의 재협상 요구가 있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성과를 거두진 못했으나 우려됐던 '최악의 상황'도 발생하지 않으면서 이재명 정부의 첫 한·미 정상회담은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가 미국 현지에서 나온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날 정상회담에 대해 "이 대통령의 설득 노력이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해석했고, 워싱턴포스트 역시 "트럼프 대통령은 SNS에서 한국 정국을 비판했지만 회담에서는 긴장을 피해갔다"고 전했다.

다만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기지 부지에 대한 소유권 요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해당 문제가 향후 한·미 관계의 또 다른 난제로 부상한 모습이다. 한·미간의 기존 합의는 미군기지를 위한 부지에 대해 한국이 반환을 전제로 미국에 빌려주는 것임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담 도중 "우리는 (주한미군) 기지를 건설하는 데 엄청난 돈을 썼고 한국이 기여한 게 있지만 난 그걸(기지의 부지에 대한 소유권을) 원한다. 우리는 임대차 계약(lease)을 없애고 우리가 거대한 군 기지를 두고 있는 땅의 소유권을 확보할 수 있는지 보고 싶다"고 밝혔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