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여행자] 우리는 한 계절을 꿈으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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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마을, 인도 보드가야. 그곳에서 나는 스물여섯 살의 젊은 요리사 모하메드를 만났다. 그의 천막 식당은 단출했지만,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로 여행자들을 끌어들였다. 햇살이 스며드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벽을 따라 마주 앉아 식사하는 풍경,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바쁘게 음식을 만들던 수줍은 청년의 미소.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몇 해 동안 나는 배낭여행 팀을 이끌고 그의 식당을 드나들었다. 그때마다 자연스럽게 부엌에 머물며 이야기를 나눴다. 음식에 대한 열정, 손님을 대하는 태도, 무엇보다도 '이 가난한 마을에서도 사람들을 웃게 만들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이 마음에 와닿았다. 언젠가 이 친구와 함께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조금씩 자라났다.
마침내 나는 여행사 일을 그만두고 보드가야에 돌아왔다. 손님들에게 음식을 나르고, 계산을 돕고, 주방을 오가며 몇 해의 겨울을 모하메드와 함께 보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한 순간도 많았지만, 함께 땀 흘리고 부대끼는 사이 우리는 '사장과 손님'이 아니라 '일터의 동료'가 되었다.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면서도 우리의 우정은 이어졌다. 그가 식당을 넓혀갈수록 나는 '언젠가 나만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러던 어느 날, 호주에서 바리스타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나를 본 모하메드가 먼저 제안했다.
"여행자들이 커피를 찾고 있어. 네가 커피를 해보는 건 어때?"

그 한마디가 모든 것을 움직였다. 인도의 작은 마을, 그 식당 안에서 두 사람의 첫 번째 동업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오토릭샤를 타고 델리 외곽까지 달려갔다. 본사 간판도 없는 허름한 사무실에서 은빛으로 반짝이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보고, 나는 한 모금 아메리카노를 맛본 순간 결심했다. 바로 이거였다. 그 자리에서 커피 머신과 그라인더를 구입했고, 스무 시간 기차에 몸을 싣고 보드가야로 돌아왔다.
며칠 뒤, 식당 마당에 도착한 트럭에서 거대한 나무 상자가 내려졌다. 낯선 기계 앞에 호기심 어린 인도 소년들이 빙 둘러섰고, 드디어 첫 에스프레소가 내려졌다. 풍성한 거품이 올라온 카페라테를 본 소년들의 눈빛은 놀라움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우리의 커피숍은 문을 열었다.
하지만 날씨는 여전히 덥고, 뜨거운 커피만으로는 장사가 쉽지 않았다. 나는 그 시기를 케이크 연습으로 채우기로 했다. 반죽은 잘 부풀지 않았고, 가스 오븐에서는 케이크가 겉만 시커멓게 타오르기 일쑤였다. 몇 번이나 실패한 끝에 주저앉은 나를 모하메드는 다독였다.
"괜찮아, 계속하면 돼."
그 격려를 붙잡고 다시 일어섰다. 그렇게 시작한 브라우니와 초콜릿 케이크, 당근 케이크, 녹차 파운드케이크가 결국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로 자리 잡았다. 커피와 함께 달콤한 케이크를 찾는 손님들이 늘어나면서 비로소 작은 균형이 생겼다.

12월이 지나자 보드가야 거리에 티베트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전통 의상을 입은 티베트와 부탄, 미얀마의 순례자들, 그리고 붉은 가사를 입은 수많은 승려들이 몰려왔다. 1월, 달라이 라마의 티칭이 시작되자 마을은 말 그대로 사람들로 넘쳐났다.
식당은 하루아침에 전쟁터가 되었다. 오전 내내 밀려드는 커피 주문에 정신을 잃을 만큼 분주했다. 카푸치노와 라테를 구분하지 못한 소년들과 함께 웃으며 실수했던 일, 한꺼번에 수십 잔의 주문을 처리하느라 진땀을 흘린 순간들이 잊히지 않는다.
아침 장사를 끝내고 첫 끼를 먹는 시간이 오후, 저녁 장사가 끝나고야 두 번째 끼니를 챙길 수 있는 날들이 이어졌다. 설거지에 허리가 굽은 소년들, 음식 주문에 목청을 높여야 했던 주방 친구들, 손님들 틈에서 음식과 커피를 날라야 했던 아이들. 그럼에도 그들의 얼굴에는 늘 미소가 있었다. 그 미소는 나를 버티게 한 힘이었다.

그들은 타지에서 온 내가 똑같이 일터를 뛰며 땀을 흘린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노 프라블럼, 우린 인도인이야." 그들의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삶을 관통하는 철학처럼 들렸다. 힘들고 벅찼지만, 우리는 같은 꿈을 위해 같은 공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다투기도 했지만, 그만큼 가까워졌다.
그 첫해의 겨울 장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어느덧 8년. 하지만 매해 겨울이면 나는 다시 보드가야로 향한다. 처음의 성과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한 계절을 오롯이 꿈으로 채웠다는 사실이다.
보드가야의 작은 마을에서 내린 첫 에스프레소, 그리고 그 한 계절의 실험. 그것은 여전히 내 삶에서 가장 뜨겁고도 아름다운 계절로 남아 있다.

글쓴이 최윤성 '망고 요가 트래블'의 1인 여행 기획자. 국내외 요가 여행을 진행하고, 틈틈이 산티아고 순례길 인솔을 한다. 겨울에는 인도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만들며 생활하는 여행자로 살고 있다.
기획 하은정 기자
글 사진 최윤성 제공
하은정 기자 haha@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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