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대도 ‘승진 포기’ 언보싱 현상... 정교수 승진 자격 갖춘 교수 70% 신청 보류

정년 보장(테뉴어·tenure)을 받는 정교수 자격을 갖추고도 승진 신청을 하지 않는 서울대 교수 비율이 70%에 달하는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연차에 따라 일률적으로 월급이 오르는 호봉제를 시행하고 있는 서울대에선 정교수로 승진하더라도 연봉이 크게 오르지 않는다. 반면 정교수가 되면 보상에 비해 행정 업무 등이 이전보다 과도해진다고 보고 부교수 신분을 유지하려는 교수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스’(boss), 즉 임원급 관리자로 승진하는 것을 꺼리는 뜻하는 언보싱(unbossing) 현상이 대학에서도 번지자, 학계에서 “교수 역량에 맞는 연봉을 주는 체계로 바뀌지 않으면 승진 거부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본지가 서지영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서울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2020~2024년)간 정교수 승진 자격(부교수 5년 재직)을 갖추고도 승진 신청을 보류한 비율이 65~75%로 나타났다. 매년 정교수 승진 대상자는 200~250명이었지만, 실제 승진 신청을 하는 인원은 60~90여 명이었다. 정교수로 승진 신청한 부교수들의 심사 통과율은 지난 5년간 평균 91.4%였다. 대부분 승진 심사에서 통과하는데도 신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5년간 부교수 승진을 보류한 조교수 비율도 약 58%였다. 테뉴어는 뛰어난 교수들을 가려내 안정된 여건에서 연구·교육에 전념하게 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런데 정년 보장도 마다하고 ‘만년 조교수·부교수’로 남겠다는 교수가 절반을 넘기는 현상이 서울대에서 확인된 것이다.

◇“정교수 승진해봤자 행정 업무에만 시달려”
“어렵게 승진해도 월급은 10만원밖에 안 오르는데, 급할 게 없어요.”
서울대 A 부교수는 올해 정교수 승진 대상자에 올랐지만 신청을 미뤘다. A 교수는 “승진해도 연구 환경이 갑자기 좋아지지도 않는다”며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6년 차 부교수인 B 교수는 “강의나 학생 상담 등 각종 행정 업무가 면제되는 부교수로 평생 일하다가 은퇴하겠다며 승진 신청을 늦추는 동료가 많다”고 했다.
올해 기준 서울대 전임 교원 2200여 명 중 정년을 보장받는 정교수는 1500여 명(약 70%)이다. 나머지는 부교수 440여 명(20%), 조교수 230명(10%) 정도다. 서울대 관계자는 “수십 명의 일부 부교수가 예외적으로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정교수 승진 이전에 테뉴어를 받는 경우가 있다”며 “나머지는 정교수로 승진해야 정년이 보장된다”고 했다. 그런데 정년 보장이 안 되는 조·부교수 비율이 해가 갈수록 증가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교수들이 임원으로의 승진을 포기한 대기업 부장·과장들처럼 정년 보장을 포기하고 ‘만년 부교수’로 남으려는 현상이 등장한 건 2018년쯤부터다. 당시 서울대 본부는 교원 인사 규정에서 ‘교원은 1회에 한정해 재계약할 수 있다’는 조항에서 ‘1회’를 삭제했다. 교수 재계약 기준을 완화해 횟수 제한 없이 재임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시 재계약에 실패한 교수가 ‘재계약 횟수를 제한해 해고하는 건 피고용자 권한을 부당하게 침해한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교수 손을 들어주면서 규정이 개정됐다. 서울대의 한 전직 보직 교수는 “테뉴어를 받지 않고도 계속해서 재계약을 할 수 있게 되면서 기를 쓰고 종신 교수가 되려는 기존 분위기가 대폭 약화됐다”고 했다.
부교수와 정교수 간 연봉 차이가 크지 않은 것도 승진 동기를 떨어뜨리는 이유다. 전직 서울대 보직 교수는 “부교수에서 정교수로 승진해도 월급이 5만원밖에 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서울대 교수협의회가 지난 2023년 발간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정교수의 평균 연봉(2021년 기준)은 1억2173만원, 부교수는 9962만원이었다. 평균으로는 2000만원 차이지만, 정년이 가까운 고연봉 교수들을 제외하면 부교수에서 정교수로 진급했을 때 연봉 차이는 많아도 수십만원 선이다. 미국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해외 대학에서는 정·부교수 간 평균 연봉 차이가 1억원 가까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교수가 되면 강의와 학생 상담 등 행정 업무가 늘어난다는 점도 부교수들이 승진을 주저하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대의 까다로운 승진 심사 과정이 승진 신청을 막는다는 지적도 있다. 한 보직 교수는 “최근 교수들의 연구 성과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커지면서 서울대 심사 과정이 과거보다 까다로워졌다”고 했다. 서울대 학칙에 따르면 승진 심사에서 한 번 떨어지면 2년 동안은 재신청할 수 없다.
‘승진 기피’ 현상은 장기적으로 서울대의 연구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란 우려가 많다. 서울대 전직 보직 교수는 “규모가 크고 연구 기간이 긴 대형 연구는 재계약이 없는 정교수들이 주도한다”며 “부교수로 남아 있으려는 교수가 늘수록 이 같은 연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한 이공계 교수는 “특히 첨단 과학 분야에선 정교수가 되면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대가 교수들 연구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올 하반기에 도입할 예정인 성과연봉제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성과연봉제는 테뉴어를 받은 정교수와 일부 부교수를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성과연봉제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만년 부교수’가 늘면 교수들에게 동기 부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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