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루미는 목욕탕에서 '수치심'을 '수용'으로 바꾼다

2025. 8. 26. 04:3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 정신과 의사의 코멘터리]
<12>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루미
편집자주
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용, 오동훈, 허규형 전문의가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심리를 분석하며 우리의 마음도 진단합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루미는 몸에 있는 악령의 문양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넷플릭스 캡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의 걸그룹 헌트릭스가 악령을 사냥하는 헌터로 활동하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겉으로는 헌트릭스와 악령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의 대결 구도가 중심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를 깊이 따라가다 보면 진짜 주인공은 헌트릭스의 멤버 루미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몸에 새겨진 악령의 문양을 감춘 채 살면서 그 흔적이 만들어 낸 수치심과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매 순간을 버텨내고 있다.


'온전한 선'에 대한 강박

루미는 헌터가 되기를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 아니다. 집안의 내력과 세계의 질서가 그를 이미 헌터로 규정해 놓았고 그는 그 자리를 물려받은 채 살아간다. 동시에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악령의 문양이 몸에 남아 있고 그 사실을 아는 어른은 그것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루미는 배웠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과 함께 있어도 문양만큼은 숨겨야 한다고. 더 나아가 그는 문양 자체를 없애려는 시도를 이어간다. ‘혼문’을 완전히 닫으면 문양이 사라질 수 있다. 루미에게 혼문을 닫는 일은 단순한 과업이 아니라 소망이자 생존이었다. 문양이 사라지면 비로소 ‘온전히 선한 나’가 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믿음이 루미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마음이 멈추지 못하고 계속 달리게 만든다. 휴식 시간이 주어져도 그는 진정으로 쉬지 못하고 곧바로 다음 곡을 위해 연습실로 발걸음을 돌린다. 목이 잠기고 소리가 잘 나오지 않을 때도 그는 단순히 컨디션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혹시 내가 혼문을 닫지 못하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이 치고 들어온다.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잠깐이고 스스로를 점검하며 몰아붙이는 시간은 훨씬 길다.

루미의 마음은 심리학적으로 분열(splitting) 상태와 맞닿아 있다. 루미는 ‘좋은 나’와 ‘나쁜 나’를 나누어 생각한다. 문양이 남아 있는 한 자신은 ‘나쁜 나’이고 그것이 지워지면 비로소 ‘좋은 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자기 수용을 더 멀어지게 할 뿐이다. 죄책감이 “내가 한 행동이 잘못됐다”라는 감정이라면, 수치심은 “나는 잘못된 사람이다”라는 감정이다. 루미에게 문양은 곧 수치심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 환하게 조명을 받으며 서 있어도 루미는 오늘도 들키지 않았는지 한쪽에서 확인한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아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목소리는 더 굳고 긴장도 커진다.


숨길수록 커지는 수치심

루미는 어릴 때부터 "악령의 문양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배운다. 넷플릭스 캡처

목욕탕은 루미가 오랫동안 피하던 장소다. 같은 헌트릭스 멤버 조이와 미라가 여러 번 함께 가자고 하지만, 루미는 번번이 거절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의 몸에 새겨진 문양이 드러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는 의상과 조명, 콘셉트라는 방패가 있어 어느 정도 가릴 수 있다. 하지만 목욕탕은 그 어떤 장치도 없는 곳이다. 한 겹의 옷조차 벗겨지는 그 공간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루미는 바로 그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봐 두려운 것이다.

흔히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은 ‘머릿속 카메라’를 켜 놓고 산다. 실제로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데 자신만을 향해 수십 개의 시선이 꽂혀 있다고 상상한다. 평범한 공간이 어느새 심판대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루미가 목욕탕을 거부하는 건 단순히 공간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곳에서 ‘머릿속 카메라’가 더 크게 작동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러한 반응은 진료실에서도 자주 경험한다. 팔의 자해 흉터 때문에 수년째 찜질방에 가지 않던 환자, 선천적 반흔 때문에 한여름에도 긴소매 옷을 고집하던 환자가 있었다. 그들의 핵심 두려움도 루미와 다르지 않았다. “남들이 볼까 봐”였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은 거의 신경 쓰지 않지만, 내담자 스스로는 끊임없이 상상 속 시선을 의식한다. 그 시선이 현실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져서 결국 일상의 공간을 피하게 된다.

이는 수치심의 힘이다. 수치심은 은폐와 회피를 동반한다. 내가 드러나는 순간 정체성 전체가 부정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올라온다. 루미가 문양을 숨기려 애쓰는 마음도 내담자들이 흉터나 반흔을 감추려 애쓰는 마음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이럴 때 필요한 건 ‘흉터 없애기’ 같은 직접적인 교정보다는 함께 있는 경험이다.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는 한 사람 앞에서 아주 작은 조각만 먼저 드러내 보는 것이다. “여기에 흉터가 있어” “나는 이런 반흔이 있어”와 같이 구체적으로 언어로 표현해 보는 것. 그 작은 경험이 쌓이면 머릿속 카메라는 조금씩 조용해진다. 이후에는 친구 한 명, 두 명, 더 넓은 공간으로 경험을 확장할 수 있다. 그렇게 한 발씩 내디디면 회피했던 공간이 다시 생활의 공간으로 회복된다.


'상처 없는 삶'이 이상적일까

루미는 악령이지만 다정한 진우를 만나 오랜 믿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넷플릭스 캡처

루미는 오랫동안 ‘문양은 악령의 흔적이고, 악령은 곧 악이다’라는 믿음으로 살아왔다. 그 믿음은 자신을 지키는 방패이자 동시에 족쇄였다. 그런데 진우라는, 그 믿음을 흔드는 존재가 등장한다. 그는 악령임에도 다정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루미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루미가 의지해 온 세계의 단순한 이분법인 선과 악, 빛과 어둠이 더 이상 명확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루미가 곧바로 “악령 문양이 있어도 괜찮다”는 수용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혼란은 더 커지고 불안은 깊어진다. 하지만 바로 그 혼란이야말로 이후 변화를 위한 출발점이 된다. 견고하다고 믿었던 세계관이 흔들릴 때 비로소 다른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내담자가 자신의 흉터나 실패를 드러내려 할 때도 그렇다. 처음부터 “괜찮다”는 확신에 닿지는 않는다. 대신 ‘내가 믿어 온 기준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작은 질문이 생기고 그 질문이 마음을 열어 놓는다. 루미에게 진우는 바로 그 질문의 인물이었다. 익숙했던 믿음이 깨지고 혼란이 시작되었기에, 그는 마침내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자리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다.

이 흐름은 영화 후반 노래 장면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루미가 부른 가사 속에는 그간의 긴장이 압축돼 있다.

'My head was twisted, my heart divided'

(머리는 뒤엉켰고, 마음은 양쪽으로 갈라졌어)

이 문장은 오랫동안 루미가 겪어 온 분열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어지는 구절은 다르다.

'But now I'm seeing all the beauty in the broken glass'

(하지만 이제는 깨진 유리 조각 안에서도 아름다움을 봐)

'The scars are part of me, darkness and harmony'

(상처는 내 일부야, 어둠과 조화 속에 살아있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걸그룹 헌트릭스. 넷플릭스 제공

상처를 지워야 할 결함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 빛과 어둠을 함께 품으려는 시도가 담겨 있다. 내담자가 흉터를 혼자 감추다 친구에게 보여주고, 다시 일상의 자리에서도 드러낼 수 있을 때 마음이 한 단계 놓이는 것과 닮아 있다. 통합은 큰 구호가 아니라 작은 경험의 축적 속에서 이루어진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악령과의 전투를 넘어 상처와 수치심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묻는다. 루미가 보여준 것은 상처를 없애는 싸움이 아니라 상처를 끌어안는 과정이었다. 수치심은 교정이나 조언보다 안전한 사람 앞에서 조금씩 보여주는 경험을 통해 가벼워진다. 숨기던 흔적을 드러내도 버틸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새겨질 때 상처는 결함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된다. 우리는 흔히 상처 없는 상태를 이상화하지만 실제로는 상처와 함께 살아가며 만들어지는 관계와 경험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한다.

영화의 후반부, 루미가 동료들에게 먼저 목욕탕에 가자고 하는 장면은 이 메시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오랫동안 피하던 공간을 스스로 찾는 그 한 걸음은 우리 모두가 언젠가 내디뎌야 할 자기 수용의 순간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것은 특별한 사건이나 화려한 무대 위에서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허규형 연세가산숲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