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 탑골공원에 장기판 금지령… 어르신들 “장기알은 죄가 없다”
경찰, 112신고 급증에 장기판 철거
“살날 얼마 안 남았는데 이걸 막나”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장기판이 사라졌다. 경찰이 지난달 말 ‘장기 금지령’을 내리면서다. 탑골공원은 ‘노인들의 성지(聖地)’로 불린다. 매일 노인 1000여 명으로 붐빈다.
원래 탑골공원 북문 담벼락을 따라 장기판 20여 개가 놓여 있었다. 낮에는 ‘내기 장기’, 밤에는 ‘음주 장기’ 판이 벌어졌다. 매일 150여 명이 장기판 앞에 모였다.
종로구 관계자는 “내기 장기 판돈이 한판에 1000~5000원 정도 됐다”며 “시비가 붙어 싸우는 일도 잦았다”고 했다. 밤에는 소주나 막걸리를 들고 장기판에 모였다. 근처 노숙자들까지 합세했다.
이 때문에 112 신고가 끊이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탑골공원 북문 근처에서 접수된 112 신고는 지난해 1470건이었다. 하루 4건꼴이다. 3년 전인 2021년(763건)에 비해 2배로 늘었다. 주민 고한순(71)씨는 “밤 12시까지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며 “아침마다 소주병 20~30개, 막걸리병 70~80개씩 치우는 게 일이었다”고 했다. 탑골공원 근처에 산다는 이예지(22)씨는 “탑골공원도 문화재인데 깨진 소주병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며 “소리 지르는 할아버지가 많아 밤에 지나가기 무서웠다”고 했다.
이에 경찰이 지난달 말 장기판을 치우는 강수를 둔 것이다. 장기판이 있던 자리엔 ‘공원 내 관람 분위기를 저해하는 장기 등 오락 행위 등은 모두 금지됩니다’라고 쓴 표지판을 세웠다. 경찰 관계자는 “음주 자체를 막을 순 없어서 장기판을 치운 것”이라며 “화내는 노인들을 달래가며 자진 철거를 유도했다”고 말했다.
24일 오후 탑골공원은 조용했다. 노인들은 그늘에서 휴대폰을 보거나 잠을 청했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장기판이 사라진 뒤로 112 신고가 전년 동기 대비 37% 줄었다”고 했다.
노인들은 불만이다. 이원장(73)씨는 “이제 살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공원에서 장기 두는 것까지 막느냐”며 “여기 모이는 노인들은 대부분 갈 곳 없는 기초생활수급자인데 이제 어떡하느냐”고 했다.
주변 상인들은 반겼다. 과일 가게를 운영하는 최모씨는 “예전엔 밤마다 잠을 설쳤는데 이제 편하게 잔다”고 했다.
종로구는 탑골공원에서 약 500m 떨어진 서울노인복지센터에 ‘장기실’을 열었다. 그러나 여기서 장기를 두는 노인은 30여 명뿐이었다. 류도봉(90)씨는 “그 많던 노인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경수(75)씨는 “장기알은 죄가 없다”며 “취객들 때문에 우리 같은 장기 애호가들이 피해를 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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