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 있다. 전국에 잇다] 우리나라 비닐하우스의 발상지 ‘김해’

박준언 2025. 8. 2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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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해수 씨 기름 칠한 한지가 모태…비닐 생산 이후 대중화
전국서 견학 발길…박정희 전 대통령도 두 번이나 방문 격려
우리나라 농업은 비닐하우스가 도입되기 전까지 자연에만 의지하는 후진형 농업에서 벗어 나지 못했다. 한 해 농작물 생산량은 오직 그해 날씨에 따라 결정되면서 농업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기에는 생산 규모가 턱없이 부족했다.

이러한 전통적 농업에 비닐하우스의 등장은 농업계의 '혁명적 사건'이었다. 이른바 '백색혁명'은 후진형 농업의 틀에서 벗어나 사계절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농업이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초가 됐다.

그런 비닐하우스가 처음 시작된 곳이 '김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오늘날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스마트농업의 뿌리가 된 비닐하우스를 개발하고 우리나라 전역으로 확대시킨 이가 김해 농업인 고 박해수(1926~1985)씨다.
 
우리나라 초창기 비닐하우스 재배 모습. 박해수 씨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고 있는 채소류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해시
우리나라 비닐하우스 개발자 박해수(1926~1985년) 씨. 사진=김해시

◇비닐하우스 선구자 박해수 씨와 개발 과정

1926년 김해군 가락면 식만리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박해수 씨는 열여덟의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여덟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됐다.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박 씨는 인근 양계장에서 일하며 푼푼이 모은 돈으로 과수원 농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농업 지식이 부족한 탓에 과수원은 실패하고 이후 닭과 돼지도 키워봤지만 역시 실패했다.

농사에도 지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박 씨는 독학으로 외국의 영농서적을 찾아 공부하다, 1958년 김해 어방동 일대 딸기밭에 배추씨를 뿌리고 기름 먹인 한지로 보온용 고깔을 만들어 덮어 씌우는 색다른 재배 방법에 도전했다.

박 씨의 시험 재배는 이듬해 2월 한 겨울인데도 배추와 딸기를 수확하며 성공했다. 이 기름 먹인 한지 고깔이 훗날 비닐하우스의 시초이자 우리나라 농업 백색혁명의 첫걸음 이었다. 그해 11월에는 오이, 가지, 고추 재배에도 잇따라 성공했다.

당시 11월에 오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 했다. 1947년 해방 후에는 기름 먹인 종이를 이용한 하우스에서 토마토 재배까지 성공했다.

자신감을 얻은 박 씨는 마침 씨 없는 수박 원리를 규명한 우장춘 박사가 일본에서 귀국해 인근 부산 동래에서 원예시험장의 종묘 개량에 매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게 된다. 우 박사로부터 품질 좋은 채소 재배 기술을 익힌 박 씨는 1952년 겨울 대나무를 휘어 연결하는 '터널식 하우스'를 개발했다. 여기에서 토마토와 오이의 '촉성재배'와 '억제재배'에도 성공하며 농한기에도 고소득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기술을 익혔다.
 
김해 비닐하우스 단지. 사진=김해시

◇공업용 비닐 출시와 비닐하우스 대중화

박해수 씨는 자신이 개발한 하우스에서 각종 채소와 꽃을 대량으로 재배하면서 주변의 이웃에게도 기술을 전파했다. 1960년 우리나라에서 공업용 비닐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박 씨는 종이 대신 공업용 비닐을 이용해 '터널형 비닐하우스 농사법'을 개발했다.

이 농법은 김해에서 경남 전역으로, 경남에서 전국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농한기에도 고소득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당시 박 씨가 운영하던 '해원농장'에는 비닐하우스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박 씨의 비닐하우스 성공은 김해의 경제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비닐하우스에 사용되는 대나무를 실은 트럭들이 줄지어 김해를 찾아왔고, 진례면에는 비닐하우스 위를 덮는 가마니를 짜는 기계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당시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거래되는 고등 채소의 70%가 김해에서 생산될 정도로 김해는 우리나라 채소 생산의 중심지가 됐다.

1963년 박 씨는 부산에 주둔하고 있던 미8군 부대가 채소류를 전량 일본에서 수입해 먹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양채류 재배에도 도전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재배에 성공한 박 씨는 미군 부대를 찾아가 납품을 타진했다. 미군 부대에 식품을 납품하려면 토양 검사를 비롯해 조건이 아주 까다로웠다. 당시 미군 부대는 처음에는 박 씨가 재배한 샐러리와 양상추가 한국에서 재배한 것이라고 믿지 않았지만 박 씨의 해원농장을 방문해 현장을 확인하고서는 바로 계약을 체결했다. 첫 계약 금액은 1만 2000달러, 4년 뒤에는 10배인 10만 달러(1억 4000여 만원)가 넘는 대형 계약을 체결해 외화 획득에도 크게 기여했다.
 
1960대 비닐하우스 내부 모습. 사진=김해시

◇성공 사례, 이웃과 지역에 함께 나눠

"농사를 지으려면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박해수 씨는 그동안 벌어들인 돈으로 고향 김해에 연수원을 세워 선진농업을 배우려는 농업인들을 무료로 가르쳤다. 신어산 등성이를 개간해 고랭지 재배에도 착수해 성공했다.

또 개인 돈으로 마을 길을 넓히고, 경지 정리도 하는 등 당시 지자체가 하지 못하던 일을 해냈다. 박 씨는 1962년 농업기술상을 수상하고, 동탑산업훈장도 수상했다. 1963년 전국농업기술자협회를 창설하고 전문 농업인 양성에도 기여했다. 김해에서 전해진 비닐하우스 재배기술은 1966년 전국 4233가구, 1만 7272㎡에 달하는 면적에서 각종 화훼와 채소류를 재배하기에 이르렀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좌측 세번째)이 김해를 찾아 박해수 씨(좌측 첫번째)의 비닐하우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김해시
한 사람의 노력으로 시작된 비닐하우스 영농기술이 몇 년 만에 우리나라 전역으로 퍼져 나간 것이다. 박 씨의 노력과 성과가 해가 갈수록 커지자 정부도 화답했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은 김해 해원농장을 직접 찾아 박 씨를 격려했다. 박 대통령은 이후에도 한 번 더 김해를 찾아 박 씨를 만났다.

비닐하우스 농법은 6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엄청난 성장을 가져왔다. 국민 1인당 비닐하우스 면적은 세계에서 가장 넓다. 전체 재배면적은 중국에 이어 2위다. 비닐하우스애서 재배하는 채소도 초기에는 배추, 상추 등 저온성 채소류가 주였지만, 기술이 발달되면서 수박과 참외 등 고온성 과채류가 많아졌다. 이는 채소류 생산과 공급에 '계절'이라는 제한이 없어졌다는 뜻이다. 김해의 화훼, 함안의 수박, 산청의 딸기 등도 모두 비닐하우스 농법의 산물이다.

비닐하우스 면적의 확대는 통계를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1970년 우리나라 시설재배 면적은 763㏊에 불과했지만, 1990면 2만 5450㏊, 2022년에는 5만 4850㏊까지 확대됐다.
 
우리나라 비닐하우스 최초 재배지인 김해 어방동 1045번지. 사진=김해시
현대식 비닐하우스에서 재배 중인 화훼. 사진=김해시
비닐하우스 재료도 초창기 대나무에서 철재로 발전했고, 비닐하우스 형태도 단동형, 연동형 등 재배 품목에 따라 종류도 다양해 졌다. 태풍과 폭설에도 견딜 수 있는 내풍형, 내설형 시설도 보급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lot)을 이용한 측면과 천장 자동개폐, 관수시설 조절, 탄산가스 발생 등 하우스 내 환경을 자동으로 관리하고 노동력을 절감하는 장치도 개발됐다. 현재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는 농가에 필요한 비닐하우스 구조와 신품종 등을 연구 개발해 농가 소득에 도움을 주고 있다.

김해시는 김해 출신이자 '김해의 흙'으로 시작해 가난한 나라의 농업기술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박해수 씨를 기리기 위해 2008년 그가 처음 비닐하우스 재배를 시작한 어방동 1045번지에 기념비를 세웠다.

박준언기자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김해를 방문해 비닐하우스 개발자 박해수 씨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사진=김해시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김해를 찾아 비닐하우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김해시
현대식 비닐하우스에서 화훼를 재배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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