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96] 뼛조각 너머 불타는 하늘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5. 8. 25.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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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오키프, 골반뼈, 빨강과 노랑, 1945년, 캔버스에 유채, 91.4X121.9 cm, 개인 소장.

둥그스름한 밝은 노랑에서 오렌지색과 붉은색이 부드럽게 번진다.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1887~1986)가 그린 소의 골반뼈다. 사막을 걷다 백골이 된 소뼈를 발견한 오키프는 그 빈 구멍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며, 하얀 뼈와 파란 하늘이 공존하는 그림을 여러 점 남겼다. 그러나 이 그림은 온 사막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응시하고 있다. 첫눈에는 추상화 같지만, 알고 보면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화면이다.

뉴욕에서 화가로 활약하던 오키프는 마흔을 넘긴 어느 날 뉴멕시코를 찾았다가 그 황량한 사막과 아메리카 원주민·히스패닉이 혼합된 이국적 문화로부터 강렬한 영감을 받았다. 이후 매년 여름을 그곳에서 보내던 그는 남편이자 사진가였던 앨프리드 스티글리츠가 세상을 떠난 후, 1949년에 뉴욕을 완전히 떠나 뉴멕시코의 ‘고스트 랜치’에 정착했다. 유령이 출몰한다는 전설이 얽힌 그 땅에서, 오키프는 98세로 눈을 감을 때까지 구도자 같은 삶을 살았다.

1945년 여름, 고스트 랜치에서 약 300km 떨어진 앨라모고도 사막에서는 최초의 핵폭탄 시험, ‘트리니티’가 성공했다. 그로부터 3주 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졌다. 그즈음 오키프는 백골을 통해 타오르는 하늘을 바라보며, ‘인간의 모든 파괴가 끝난 뒤에도, 하늘은 존재할 것’이라고 했다.

거대한 생명체가 죽어 피와 살이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메마른 뼈. 그 뼈의 틈으로 불타는 하늘을 바라보는 경험은, 삶의 무상함과 시간의 위엄을 느끼게 한다. 인간의 오만과 폭력에는 반드시 끝이 있고, 그 너머에는 모든 걸 초월하는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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