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88] 슬기로운 AI 생활

2016년, 알파고의 등장은 바둑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오랫동안 바둑은 예술과 철학의 경지에 가까운 활동으로 여겨졌으나, 인공지능(AI)이 이세돌 국수를 4대1로 완파한 뒤 바둑은 단지 복잡한 연산의 산물일 수 있음이 드러났다. 프로 기사를 둘러싼 일종의 신비한 아우라는 사라졌고, 최고 몇 명을 제외하면 기사들 수입과 위상도 예전 같지 않게 되었다(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 인간 최고수가 AI를 넘어서리라는 기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받아들여지면서, 프로 바둑의 인기도 식었다.
그러나 체스는 다른 궤적을 보였다. 1997년 딥 블루가 세계 챔피언을 꺾은 지 오래됐지만 체스의 인기는 오히려 과거보다 높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이유는 체스를 애초부터 머리 쓰는 ‘게임’으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체스 챔피언은 세상과 인생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지닌 존재로 신비화되지는 않았다. 반면 바둑은 (대부분 동양권에서) 오랫동안 인간 정신의 정수를 보여주는 예술로 간주되어 인간 고수를 까마득히 뛰어넘는 AI의 등장으로 그 신비가 무너진 충격이 훨씬 크게 느껴졌다. 또한 체스는 바둑보다 20년 일찍 AI의 도전을 받아 공동체가 충격을 흡수하고 완화할 시간이 더 길었다는 점도 차이를 낳았다.
이제 AI는 바둑을 넘어 예술·과학·법, 나아가 인문학과 종교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다. AI가 그린 그림과 사진이 콘테스트에서 종종 1등 상을 거머쥐고, 연구 질문 산출부터 연구 수행까지 전 과정을 자동으로 수행하는 ‘사카나 AI’가 쓴 논문은 머신러닝 학회의 동료 심사를 거쳐서 출판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중요한 교훈은, 어떤 영역이 지나치게 신격화되어 있을수록 AI의 충격이 크고 회복이 어렵다는 점이다. 인간 활동이 AI와 비교해 생존력을 확보하려면 아우라와 신비화를 걷어내고, 그 뒤에도 남아 있는 본래 가치를 움켜쥘 필요가 있다. 그것이야말로 AI 시대에도 인간이 여전히 의미 있는 주체로 남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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