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첨단 서비스' 키우는 나라일까? 기재부의 이상한 성장전략

한정연 기자 2025. 8. 2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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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부 경제성장 전략 발표
‘서비스’여야 하는 AI 전략
제조업 보조지표 정도로 전락
경쟁국보다 더딘 3%대 서비스 성장
우리나라 서비스 수출 대부분
대기업 계열사 내부거래서 나와
스타트업 5년 생존율 목표치 등
서비스 성장 구체적 목표 제시해야

만약 어느 국가의 미래 성장 계획에 실체가 있는 '상품'만 있고, 지식재산권(IP)이나 정보와 같은 무형의 서비스는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트럼프의 상품 관세를 방어하기 위해서라면 차세대 인터넷 쇼핑, 차세대 OTT, 법률서비스나 특허는 물론이고 문화 콘텐츠 IP까지 모두 넘겨도 괜찮은 나라가 된다. 우리는 IP와 같은 서비스를 키우려는 나라일까. 기재부가 발표한 성장전략에선 이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없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8월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성장 전략 관계 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8월 22일 발표한 '새정부 경제성장 전략'에는 서비스가 사실상 실종돼 있다. 정부는 매년 두차례씩 발표하는 '경제정책 방향'을 '경제성장 전략'으로 변경했다.

성장 전략에 나오는 30대 선도 프로젝트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6월 일반 국민 1000명, 경제 전문가 31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선정했다. 이 전략대로 가면 이재명 정부의 이른바 '소버린 인공지능(AI)'도 제조·대기업·수입 주도 성장으로 한정되고, 단기간 막대한 무역적자를 낼 가능성이 높다.

소버린 AI는 주권이라는 뜻의 'sovereign'과 AI를 합친 말이다. 세계 AI 생태계에 속하기보다는 우리가 기술 주권을 위해서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자는 주장이다. 엔비디아는 공식 블로그에서 "소버린 AI는 한 국가가 자체 인프라, 데이터, 인력,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사용해 AI을 생산하는 역량"이라며 "현지에서 개발하고, 현지 데이터 세트를 학습한 대규모언어모델(LLM)을 포함한다"고 정의했다.

쉽게 말해서, 소버린 AI는 우리나라 유일의 LLM인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처럼 일종의 폐쇄형 AI를 말한다. 소버린 AI는 주권을 강조하는 만큼 해외 주력 AI 생태계와의 경쟁에서는 멀어진다. 우리가 1970년대 유치산업 보호 전략을 택하면서 특정 몇몇 재벌 가문에 국가 부富의 대부분을 몰아줬던 상황이 발생하지 말란 법도 없다.

소버린 AI를 둘러싼 여러 논쟁을 제쳐 두고 외형적으로만 보면, 기재부의 경제성장 전략은 AI 15개 프로젝트, 초혁신경제 15개 프로젝트다. 앞에 AI가 붙었을뿐 기존 제조업 기반 산업 프로젝트와 다를 게 없다.

AI로봇, AI가전, AI납세관리…. 이런 식의 작명법은 초혁신경제도 마찬가지다. 모두 기존 제조업에 기반하면서 초전도체·그린수소 등을 첨가했다. 기재부의 계획에는 오로지 상품 제조 대기업의 영역만이 존재한다. 스타트업 양성에 관해서는 모태펀드 확대 등 원칙적인 내용만 들어가 있다.

소버린 AI를 구축한다는 얘기를 무역 관점에서만 보면 단기간 대량 무역적자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우리 AI 전략의 핵심은 정부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미국 엔비디아로부터 최대한 수입해 와서 핵심 AI 기업들에 나눠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생산량이 정해져 있고, 미국 정부가 첨단 칩 수출을 강하게 통제하는 상황에서 GPU를 확보하는 게 어려운 건 사실이다.

[자료 | 세계은행, 2024년 기준]

하지만 이는 실무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지, 정부가 나서 GPU를 나눠주는 그 자체가 미래 전략이 될 수는 없다. 세계 각국이 AI에 승부를 거는 이유는 AI가 차세대 서비스 산업이어서다. 소프트웨어로서의 AI가 아니라 GPU나 데이터센터 등 이를 구현하기 위한 하드웨어 자체가 핵심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기재부의 계획에 서비스 기업 육성, 서비스 수출 증가 계획이 사실상 없다는 것은 AI를 하드웨어나 제조 대기업을 보조하는 정도로 인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저성장의 원인을 자본이 대기업 등 고자본 기업으로 집중되면서 총요소생산성이 감소한 결과로 보고 있다(7월 29일 '산업별 자원배분의 비효율성과 생산성' 보고서).

그 결과, 우리나라 기술 위주 스타트업의 5년 내 생존율은 2022년 34.7%로 61.9%인 네덜란드, 51.9%인 미국, 50.8%인 프랑스보다 현저히 낮았다. 생산성이 높은 서비스, 기술 위주 스타트업에 가야 할 자본이 제조 대형 회사들에 간 결과다.

하지만 우리가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디지털 서비스 위주 스타트업은 미국에서는 압도적인 경제력을 지탱하는 근간으로 발돋움했다. 미국 증시를 주도하는 '매그니피센트7'은 애플을 빼면 창업자가 생존해 있고, 마이크로소프트(MS)까지 제외하면 모두 스타트업 창업자가 지금까지 직접 경영하는 회사들이다. 테슬라, 애플도 단순 제조업이라고 하기에는 소프트웨어 매출의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선진국들은 무형의 재화인 서비스 수출로 방향을 돌린 지 오래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서비스가 상품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할 날도 머지않았다. 미국의 서비스 수출은 1999년 2780억100만 달러에서 18년 만에 4배로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1조1527억4700만 달러까지 급증했다. 2위인 영국은 지난해 서비스 수출이 6492억7842만 달러다.

그러나 우리나라 서비스 수출은 1389억5270만 달러로 일본·싱가포르 등보다 훨씬 낮은 세계 17위권이다. 서비스 무역수지에서 우리는 세계 2~3위권 적자국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3월 '우리나라 서비스 수출 현황과 나아갈 방향'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서비스 수출은 2010년 이후 연평균 3.8% 증가해 주요국에 비해 성장세가 더디고, 세계 시장에서의 점유율도 2010년 1.9%에서 2023년 1.6%로 오히려 하락했다" 지적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서비스가 역성장하는 이유는 뭘까. 기재부의 성장전략과 동일하게 우리 서비스 수출은 기존 제조 대기업의 상품 수출을 보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다. 우리 서비스 수출의 대다수는 여전히 동일 재벌 그룹 산하 계열사 간 거래다. 제조업체가 해외에 진출할 때 현지법인이 본사의 기술 등을 쓰고 사용료를 내는데 이를 수출로 표기한다는 얘기다.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가 지난해 8월 2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제78회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미국 나스닥에 직상장했다. [사진 | 뉴시스]

서비스 수출의 경쟁력도 없다. 원천기술이 없어서 해외 기업들에 단독으로 팔 만한 수준이 안 된다. 소프트웨어 수출의 46.3%는 게임에서 나오고, 멀티미디어 저작권 수출의 73.7%는 음악 저작권이다. 예를 들어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아무리 흥행해도 우리는 삽입곡 저작권 정도만 챙길 수 있다. 미국 넷플릭스가 지식재산권(IP)을 가지고 있어서다.

가끔 등장하는 주요 서비스 기업들은 모두 해외를 선택한다. 네이버의 라인, 웹툰 등 여러 서비스는 해외 기업에 지분 절반과 함께 경영권을 넘기거나, 본사를 해외로 이전해 현지 직상장을 선택했다.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 성장과는 큰 관련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까. AI를 소프트웨어로 접근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게 하는 정부의 경제성장 전략에 서비스 기업과 기술 스타트업의 구체적 목표를 적시하는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인터넷 서비스, 소프트웨어 기업의 매출 증가 목표치나 스타트업 5년간 생존율 향상의 구체적 숫자를 제시하는 게 그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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