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입방아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발끈하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그랬다. 오십 년 지기의 생각 없는 허룽거림에 같은 급으로 쌍클하게 쏘아붙이고 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얼마 전의 일이다. " 저기 왜 있잖아.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로 남편 죽은! 너랑 친한 그 여자 말이야. 그 여자 요즘 남자랑 동거한다며?" 흥미 있는 얘깃거리를 발견했다는 듯 달뜬 목소리였다. 혼자인 그녀를 걱정하거나 곁에 있어 줄 누군가가 생겨서 다행이라기보다 단순히 흥밋거리를 확인하려는 말투였다. " 그게 왜 궁금한데? 걔 남편 가신지가 언젠데 남자랑 살면 어떻고 시집을 가면 어떤데? 비싼 밥 먹고 할 일이 그렇게도 없냐? 나는 알지도 못하지만 궁금하지도 않다!" 전화를 건 친구의 달뜬 목소리에 걸맞게 목청을 높여 쏘아붙였다. 친구는 무르춤했는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도 내 험담을 들은 듯 쉽게 분이 풀리지 않았다. 나이를 어디로 먹었나 싶었다. 전화를 건 친구에 의하면 파크 골프장에 가서 운동하러 온 남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단다. 그들의 친구 한 명과 남편을 여읜 친구가 동거 중이라는.
2017년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나 보다. 대중목욕탕과 스포츠센터가 들어있는 건물에 큰불이 났었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고 몇몇은 평소에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이라 오랫동안 황망했었다. 사고를 당한 친구네는 우리 부부와 동갑내기이고 아이들 젖먹이 시절부터 모임을 같이 해서 다른 회원들보다 각별했던 사이였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들이었다. 건강했던 사람이라 사고 현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다른 사람과 이층 계단까지 같이 내려왔는데 사우나에 사람들이 있다며 알려줘야 한다고 남자 사우나가 있는 3층으로 다시 올라갔다는 것이다. 남편을 잃은 슬픔에 한동안 넋 놓고 지내는 그녀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다. 남편 가시고 일 년쯤 지났을 때 아들이 사는 아파트 옆으로 이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금방이라도 남편이 살아서 나타날 것 같은 그 집에서 혼자 살기가 너무나 힘들단다. 직장 다니는 며느리를 대신해 가까이에서 손녀를 키울 작정이라고 했다. 손녀가 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놀이 삼아 파크 골프를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참 잘한 일이라며 응원했다. 가끔 안부 전화를 하면 파크 골프에 재미가 들려 연습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고 하였다. 사람들과 어울려 게임을 하다 보면 잡생각도 없어지고 시간도 빨리 가서 좋단다. 나에게도 같이 하지 않겠느냐고도 하였다. 그녀의 성품을 익히 아는 나로서는 다른 사람들의 입에 재밋거리로 오르내린다는 것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아들 옆에 살면서 섣불리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행동을 할 리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안부가 뜸했구나 싶어 전화를 걸었다. "잘 지내? 날이 더워도 너무 덥지? 요즘도 운동 열심히 가?" "응, 잘 지내고 있어. 한동안 운동을 못 했어. 보름 동안 고추밭에 가서 품 팔았어.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도 부탁을 해서. 운동 대신 돈 벌었다! 하하하" 하며 호탕하게 웃는다. 그러면 그렇지, 소문이 진실이라면 그 상황에 고추밭에 품을 팔러 갈 리가 없는 것이다. 밥벌이를 하지 않아도 궁색하지 않을 만큼 가진 그녀였다. 더구나 소문의 그 남자는 이 작은 도시에서 누구네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재력가였다.
그래. 그도 혼자고 친구도 혼자이니 만나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실 수 있겠지. 상실의 아픔을 가진 사람끼리 서로 위로하며 좋은 만남을 이어갈 수도 있겠지. 그러면 친구라는 사람들이 잘했다고 보듬지는 못할망정 뒤에서 재미 삼아 수군거리다니 생각할수록 불쾌했다. 소문을 확인하려고 전화를 한 오십 년 지기에게 버럭 화부터 내서 데면데면한 사이가 된 것도 마음이 쓰인다. 듣기 거북한 말이었어도 숨 한 번 고르고 차분히 이야기했어야 했다. 말 한마디가 불러올 파장을 생각하면서 더 신중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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