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역사 한반도 기상학의 뿌리... 기후변화 미래 내다본다
1904년 일본의 전쟁 도구로 조성
다음해 응봉산 정상에 청사 신설
기온 측정 시간 알림용 대포 쏘고
1929년 망원경으로 첫 천문관측
해방이후 기상 조직제도 등 개편
2015년 수도권기상청 산하 소속
인천서 관측 자료 전세계로 공유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기상대, 인천기상대의 역사는 일제 강점이라는 아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전쟁 도구'였던 인천기상대는 120년간 격동의 시기를 극복하고, 한반도 기상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기관으로 굳게 자리를 지켜왔다. 가속화되고 있는 기후변화의 흐름 속에 인천기상대가 어떤 미래를 제시할지도 기대를 모은다.
25일 수도권기상청에 따르면 일본은 1904년 러일전쟁 당시 한반도 근해와 만주의 기상 정보를 군에 제공하기 위해 인천, 부산, 목포, 용암포(평안북도), 원산(당시 함경남도, 현 강원도) 등 총 5개 지역에 '임시 기상관측소'를 설치했다.
김훈상 인천기상대장은 "전쟁에서 기상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면서 "당시에는 병력이나 물자가 모두 배를 타고 올 수밖에 없었기에, 바닷가를 중심으로 기상 관측이 이뤄지게 됐다. 파고 등을 관측할 수 있는 산 정상 부근에 관측소가 들어오면서, 근대 기상이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인천에 일본 중앙기상대 소속 '제3임시관측소'를 짓고, 1904년 4월 10일부터 하루 6회의 정규 기상 관측을 실시했다. 다음해인 1905년 1월 1일에는 현재의 인천기상대가 있는 인천 중구 전동 해발 69m의 응봉산 정상에 제3임시관측소 청사를 새로 세웠다.
당시 청사 본관은 2층 규모의 의양풍(일본 목수들이 서양식 건물을 모방한 목조 건물) 양식이었다. 1층에는 관측실 2개와 기기실 3개, 암실 1개, 관측 서비스실 3개 등이 있었다. 2층은 소장실과 비서실, 연구실, 비품실 등으로 쓰였다. 지붕이 굴뚝 위로 나와 있었다는 점에서 난방시설도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05년 8월의 기상 관측 현황을 소개하는 기록을 보면, 제3임시관측소에서는 자동풍속기록계와 전동풍속계, 자기우량계, 미지진계, 지중온도계 등을 사용했다.
1906년에는 기온 측정 등으로 파악한 시간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관측소 남쪽 언덕에 '구식 대포'를 설치, 매일 낮 12시마다 포를 쏘기도 했다. 1929년 9월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망원경에 의한 천문 관측도 시작됐다. 또 1939년에는 15㎝ 적도의 굴절 망원경을 통한 혜성 관측이 이뤄졌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는 기상과 관련한 각종 조직·제도 개편이 수십 년에 걸쳐 이뤄졌고, 지난 2015년 신설된 수도권기상청 산하에 인천기상대가 속하게 됐다. 인천기상대에서 관측·생산하는 자료는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 전 세계로 공유돼 활용되고 있다.
현재는 인천과 옹진, 강화, 김포, 부천, 시흥, 광명 지역의 방재기상서비스 업무를 담당하며, 지역 특성에 특화된 해양기상서비스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기능도 한다.
수도권청 관계자는 "120년 전에 시작된 인천기상대는 우리나라 기상학 발전의 출발점"이라며 "인천기상대는 앞으로도 정확한 기록으로 기후변화의 현실을 고증하고,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경고를 우리 사회에 울려 퍼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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