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최선의 수는 가장 나다운 수"
이세돌 9단 인터뷰
자신의 생각과 가치 담긴 수로
내 세계 구축해야 승부수 나와
AI가 주는 정답지엔 개성 없어
삶도 매일 복기해야 단단해져
보드게임 제작자·대학교수 등
미생으로 더 많은 도전하고파

'쎈돌' 이세돌 9단이 2016년 알파고를 상대로 '신의 한 수'를 뒀을 때 전 세계는 전율했다. 최종 결과는 1승4패로 이세돌의 패배. 그러나 세상은 '인공지능(AI)을 넘어선 유일한 인간'으로 그를 추앙했다. 열렬한 환호를 뒤로하고 돌아온 이세돌은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하나 쌓아온 나만의 세계가 완벽하게 끝났다." 그리고 3년 뒤 그는 바둑판을 떠났다.
25일 매일경제와 만난 이세돌은 "은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고 말을 던졌다. 바둑 AI '알파고'의 등장은 바둑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였던 바둑에 AI라는 정답지가 생긴 것이다. 많은 바둑 선수가 창의적인 수를 고민하기보다 정답지를 따랐다. 새로운 수의 개척자였던 이세돌에겐 받아들일 수 없는 변화였다. 그는 "(바둑기사로서) 나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며 돌을 놓았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를 떠난 승부사의 표정은 오히려 활기찼다. 그는 보드게임 제작자, 대학교수, 강연자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최정상 자리에서 다시 '미생'으로 돌아온 이세돌은 "새로운 일을 하는 게 재밌다. 더 많은 걸 해보고 싶다"고 의욕을 드러냈다. 그는 최근 알파고와의 승부, 바둑 인생에서 얻은 깨달음을 담은 책 '이세돌, 인생의 수읽기'를 출간했다.
세간에 '신의 한 수'로 알려진 네 번째 대결의 78수에 대해 묻자 이세돌의 표정은 살짝 굳었다.
"사실 진짜 승부수는 68수였어요. 오직 알파고의 버그를 유도하기 위한 꼼수였죠. 그 전 대국부터 정상적으로는 이기기 힘들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평소 중요하게 여겼던 바둑의 가치에 완전히 위배되는 수인 거죠. 그래서 승부수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 최선의 수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최선의 수란 뭘까. 이세돌은 "결국 자신만의 수"라는 언어로 표현했다. 승부수는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중요한 수이지만 남발할 수 없다. AI가 던져주는 수는 보편적인 상황에 쓸 수 있는 몰개성의 수다. 결국 자신만의 세계와 생각이 담긴 수야말로 가장 최선의 수라는 것이 이세돌의 설명이다. 그는 "사람들은 자주 남들이 다 하는 선택에 끌리지만, 결국 오래 남는 건 '나다운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자신만의 세계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는 복기를 권했다.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매일 질문을 던져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이는 곧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진다. 믿음이 생기면 내가 던진 수가 실패할까 하는 두려움도 사라진다. 다만 이세돌은 너무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AI 시대에 직격탄을 맞은 바둑에 대해선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프로와 아마추어 간 차이가 있다는 점을 전제로 "인간에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추상적인 부분이 있다"며 "바둑은 유일한 추상전략게임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가치가 더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AI에 결여된 창의성 등 생각의 그릇이 확장되는 데 바둑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바둑의 높은 진입장벽은 현장에서 어려운 숙제로 남아 있다. 이세돌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바둑을 이용한 교육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다"며 "좀 더 쉽게 바둑을 접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이세돌은 두 집 개념 등을 단순화한 보드게임 '그레이트킹덤'을 만들었다. 이를 더 단순화한 앱도 다음달 출시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올해부터 울산과학기술원(UNIST) 특임교수로 강단에 선 이세돌은 더 좋은 수를 던지기 위해선 절박함을 가져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나도 5개월 전 기보를 보고 알파고와 대결에 나섰다가 낭패를 봤다"며 "AI는 빠르게 발전하는데 사람들은 안정된 현재에 머무르려 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AI 시대에는 미래를 생각하고 수읽기를 하는 사람이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압박감을 푸는 방법을 묻자 "그런 꼼수는 없다"는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필요한 순간에 실수나 스트레스를 확 낮추는 방법이 있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 저는 그런 일이 있으면 그날 다시 곰곰이 되짚어봐요.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미리 대비를 하는 거죠. 평소 준비가 안돼 있는데 판을 뒤집는 수가 나올 리 없잖아요?"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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