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멸 위기, AI 기반 ‘직주락 플랫폼’에 해답 있다 [GCF 2025]
박정호 교수 “위기는 곧 기회…지역에서 선제적으로 AI 수용하면 균형발전 가능”
(시사저널=이태준 기자)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에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고 활기 넘치는 공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사저널이 주최한 '굿시티포럼(GCF) 2025'에 강연자로 나선 4인의 전문가는 주거, 일자리, 여가 공간이 통합된 복합도시 모델인 직주락(職住樂)에 그 해답이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AI 생태계 구축을 통해 지역 인구 유입을 견인하는 동시에 정부의 맞춤식 재정 지원 및 규제 개선 등이 뒷받침한다면 수도권 외에도 일(Work)하고, 거주(Live)하고, 놀(Play) 수 있는 도시가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모종린 교수 "성공하는 동네는 오프라인-온라인 결합된 곳"
25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굿시티포럼(GCF) 2025'에 첫 번째 강연자로 나선 모종린 연세대 교수는 소멸지역을 콘텐츠 타운으로 만들자는 해법을 제시했다. 대규모 도시 개발의 결과가 공실 폭증이라는 결과를 낳은 반면, 서울의 성수동·홍대·한남동·을지로처럼 오래된 골목과 문화가 살아있는 원도심의 경우 다시 경쟁력 있는 도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으로 확장해 보면 경주의 황리단길, 전주의 한옥마을을 꼽을 수 있다. 모 교수는 "경주를 방문한 관광객 612만 명 가운데 152만 명이 황리단길을 찾았고, 한옥마을도 연간 152만 명 이상이 몰린다"며 "단순 관광지가 아니라 '살고 싶은 동네'가 도시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공급한 신도시의 상가 공실이 심각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모 교수는 "아파트 값이 높아도 상권이 텅 비면 매력은 떨어진다. 성공하는 동네는 오프라인 공간과 온라인 플랫폼이 결합된 곳"이라며 "성수동 같은 지역은 입지 자체가 고객 유치의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공간·커뮤니티 콘텐츠가 메운다. 무신사가 성수동을 플랫폼처럼 활용하듯, 앞으로 패션·푸드·K-뷰티 기업들이 비슷한 전략을 차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모 교수는 여전히 비수도권 소도시에 기회가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역의 많은 군청소재지가 역사와 문화 자원을 갖고 있지만 관리 부족으로 잠재력을 살리지 못하고 있음을 짚었다. 그는 "모든 마을을 살릴 수는 없어도 군청소재지는 선진국 시민들이 살고 싶다고 느낄 수준의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며 "예술가와 크리에이터가 온라인을 기반으로 지역에 뿌리내리는 흐름은 소도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준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도시 재생과 문화 공간 조성에는 적지 않은 예산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기술을 접목하면 설계·운영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게 모 교수의 설명이다. 소상공인과 창작자에게 더 많은 공간을 제공하고 지역 콘텐츠를 확산시키는 것도 AI의 역할이다. 물론 일자리 대체 우려가 존재하지만, 모 교수는 "오히려 AI는 크리에이터와 관광산업을 육성할 기회"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모 교수는 "도시 경쟁력은 아파트가 아니라 동네에서 나온다"라며 "원도심의 문화와 온라인·오프라인 플랫폼, AI 기술을 결합해 '머물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것, 그것이 한국 도시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박정호 교수 "기업 유치로 지역경제 살리는 시대 끝났다"
이날 포럼에선 AI 시대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기존 도시계획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정호 명지대 교수는 "AI가 대두되면서 자율주행·휴머노이드·스마트시티 등 신산업이 부상했지만 산업 현장은 '고용 없는 성장'에 직면했다"며 "반도체·조선·자동차 등 주요 산업의 고용유발계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령층 비중이 높은 지역 주민들은 새로운 일자리보다 기존 일자리 상실을 더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생각이다. 과거처럼 기업 유치만으로 인구와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미국 빅테크의 구조조정 사례를 소개했다. 인텔·마이크로·메타 등이 AI 도입 이후 수만 명을 감축했고, 아마존은 자기소개서 항목에 "입사 후 할 일이 AI로 대체되지 않음을 증명하라"는 문항까지 신설했다.
중국은 이미 11개 도시에서 무인 택시를 운영 중이며, 샤오미는 '다크 팩토리(Dark Factory·조명 없이 가동되는 무인 자동화 공장)'를 통해 무인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박 교수는 "한국 기업들도 반도체 등 분야에서 대규모 클러스터를 조성 중이지만, 더 이상 대규모 인력 채용을 전제로 한 공장은 지향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AI는 위기이자 기회"라며 "교통편이 끊긴 지방 읍면 지역에 무인택시를 도입하면 재정 부담을 줄이고, 절감한 재원으로 미래 산업 유치에 투자할 수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에너지·수도 관리 등 인프라에도 AI·사물인터넷(IoT)를 접목하면 효율이 높아지고, 데이터 센터 유치와 같은 민감한 시설도 사회 인프라 개선 패키지와 연계하면 수용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날 포럼에서 박 교수는 "AI는 흉기가 될 수도, 메스가 될 수도 있다"라며 "서울 같은 대도시가 아니더라도 지역이 선제적으로 AI를 수용한다면 균형발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영탁 부사장 "'메가 샌드박스' 도입, 지역균형발전 자석될 것"
마지막 강연자로 나선 이영탁 SKT 부사장은 "지역에 메가 샌드박스를 도입해 기업과 사람이 모이면 AI는 지역균형발전의 자석이 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청년층의 지방 이탈은 인구와 세수 감소로 이어지며 지역 소멸을 가속화한다고 본 이 부사장은 "재정이 부족해지면 지자체는 디지털 전환 등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도 실행할 수 없다"면서도 AI가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과 기업을 끌어오는 '강력한 자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AI는 산업뿐 아니라 행정·서비스 전반의 '촉매제'라고 치켜 세운 이 부사장은 "국방 분야처럼 정확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영역뿐 아니라 일반 행정 서비스에서도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을 가능케 한다"며 "실제로 정부는 보도자료 초안 작성 등에서 이미 AI를 활용하고 있으며, 제조업에 AI를 접목하면 제품 경쟁력 향상은 물론 사회·문화적 변화까지 촉발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AI 강국이 되려면 인프라·모델과 산업 적용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봤다. 인프라 기반 위에 우수한 모델이 개발되고, 이를 제조업·서비스에 적용해 국민 편익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 부사장은 "전력 데이터 같은 핵심 자원이 투입돼야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역 차원에서는 AI 데이터센터 구축이 핵심"이라며, "직접 고용은 30~50명에 불과하지만, 연구자·학생·스타트업이 모여들며 클러스터가 형성되고 인구 유입 효과를 낳는다. 광주광역시 동구 사례처럼 연구진이 몰리고,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도 산업 적용이 확산된다"고 했다. R&D 활성화는 지역 인재 유출을 막고 수도권으로의 인재 이동을 줄여, 역으로 서울 인재가 지방으로 내려오는 순환까지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그 근거다.
AI가 가져올 영향력은 이뿐만 아니다. 이 부사장은 "AI는 제조업뿐 아니라 농업·축산업, 가정 전력 효율화, 스마트 그리드 등에도 활용되고 민원 상담, 지능형 CCTV 교통 관리, 의료 연결, 교통편 조정 등 지역 현안 해결 수단으로도 강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AI 강국을 위한 생태계 구축을 위해선 △AI 인프라 구축 △R&D 활성화 △AI 기반 현안 해결과 광역 지자체장의 의지와 파격적 인센티브, 규제 개선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 부사장은 이를 '메가 샌드박스'라고 지칭하며, "전력·데이터 등 여러 규제를 한꺼번에 풀어야 AI 생태계가 정착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임택 구청장 "지역 경쟁력 강화 위해 산업 생태계 지원 필요"
한편, 이날 강연 후에 이어진 패널 토론에 나선 임택 광주동청장은 "AI가 지역 소멸을 막는 데 필요한 요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라며 "광주 5개 자치구 중 가장 작은 동구에 절반 가까운 AI 기업이 몰린 것은 문화·교통 인프라와 병원 기반 헬스케어 산업 덕분"이라고 말했다.
임 구청장은 또 "광주에서는 북구 첨단산단에 데이터 센터가 구축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구가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데이터 센터가 광주 내 어디에 위치하느냐는 큰 의미가 없다"며 "인구 소멸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AI를 본다면 결국 수도권과 경쟁하는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임 구청장은 "수도권에 (대적하는) 지역이 새로운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선 정부가 적극적 산업 생태계 육성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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