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미 정상회담에 ‘견제구’…“한국 전략적 자주성 갖춰야”

박민희 기자 2025. 8. 2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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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 33주년-한미 정상회담-중국 항일전쟁 승리 열병식의 정치학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특사단 단장인 박병석 전 국회의장이 24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 겸 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악수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누리집

중국이 한-중 수교 33주년을 맞아 한국 특사단을 맞이하고 관영 매체를 통해 “한국의 전략적 자유”를 강조했다. 25일(현지시각) 열리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을 의식해 견제에 나선 것이다. 중국은 한-중 ‘수교 초심’을 강조하고 오는 9월3일 ‘중국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열병식’에서 한국이 중국과 역사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이 한-미동맹 현대화 등 미국의 요구에 기우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 겸 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수교 33주년인 24일 박병석 전 국회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특사단을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맞이했다. 중국 측은 애초 25일 오전으로 예정했던 특사단과 왕 부장의 만남을 전날 급하게 하루 앞당긴다고 통보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특사단을 직접 만나지 않는다고 대통령실이 밝힌 이후 한국 ‘패싱’ 논란이 벌어지자, 수교 기념일 만찬으로 만회하려고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사단은 시진핑 주석에게 보내는 이재명 대통령의 친서를 왕 부장에게 전달했다.

면담 결과에 대한 양측의 발표문을 보면, 양측의 초점이 미묘하게 다르다. 박 전 의장 등 특사단은 “한국의 새 정부는 한-미동맹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가운데 국익과 실용에 기반해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성숙한 발전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한-중관계도 배려하는 외교를 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24일(현지시각) 워싱턴으로 향하는 기내 기자간담회에서 “한·미·일 안보, 경제 협력이 당연히 중요하다. 그렇다고 중국과 절연할 거냐”며 “(중국과) 절연 안 하는 걸 친중이라고 한다면 그런 의미의 친중이라면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왕이 부장은 “올해가 중국인민 항일전쟁과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이자 한반도 광복 80주년”임을 언급하며 “제2차 세계대전 승리의 성과와 국제적 공정·정의를 공동으로 수호하고자 한다”고 밝혔다고 중국 외교부는 전했다. 한국과 중국이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에 맞서 싸웠던 ‘항일의 기억’을 상기시키며, 한·미·일 협력 등을 경계한 것이다. 왕이 부장은 또 “한-중 양국은 국제 자유무역 체제를 함께 수호하고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해야 하며, 다자주의 이념을 실천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등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또 “박병석 특사가 한국 신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 발전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시종일관 ‘하나의 중국’ 입장을 존중해 왔고, 중국 등 주요대국들과의 관계를 병행적으로 발전시켜 지역의 평화와 안정, 번영을 공동으로 수호하기를 희망한다고 (박 특사가) 말했다”고 전했다. 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한-미동맹 현대화’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의 역할 등이 다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한국 쪽을 향해 수교 당시 밝힌 ‘하나의 중국’ 입장을 유지하고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도 고려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와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도 25일 “수교 초심으로 돌아와야 한-중관계가 안정적으로 멀리 갈 수 있다”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한국이 전략적 자주성을 갖춰야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진정한 존중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미국의 입장에 무조건 동조할 것이 아니라 ‘전략적 자율성’을 가지고 한-중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요구다.

사설은 “지난 몇 년간 한-중 관계는 수교 이후 본 적 없는 저점에 이르렀다”며 “전임 윤석열 정부 때 한국 외교정책은 명확히 바뀌어 (동북아) 지역 업무와 중국의 핵심 이익과 관련 있는 민감한 문제 등에서 전임 (문재인) 정부와 다른 입장을 취했다”고 했다. 이어 “일부 정객들이 맹목적으로 역외세력의 진열 대결에 호응해, 심지어 한-중 관계를 희생하는 대가로 전략적 기회주의를 도모했“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여러 차례 대중국 관계를 중시한다는 적극적 태도를 표명했다”고 이재명 정부에 대한 기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중 관계가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 동시에 제3국의 제약을 받아서도 안 된다”며 “한국이 전략적 자주성을 갖춰야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진정한 존중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역외세력’ ‘제3국의 제약’은 미국을 가리킨 것으로, 한국이 미국의 중국 견제 요구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사설은 특히 상하이 임시정부 등 일본 군국주의에 대항한 “역사적 기억과 전략적 이익”을 언급하며 “근대 이래 중화민족과 한반도 인민은 일본 군국주의 침략에 맞선 투쟁 속에서 고락을 함께하는 깊은 정을 쌓아왔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9월3일 2차 대전 항일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열병식을 대대적으로 준비중인 가운데, 한국과 중국이 ‘항일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선전에 힘을 쏟는 모양새다. 중국은 애초 9월3일 열병식에 이재명 대통령을 초청했지만, 한국 정부는 우원식 국회의장을 대신 참석시키기로 결정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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