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플리트우드의 선한 카리스마가 일군 위대한 승리

[골프한국] 그리스어가 어원인 카리스마(Charisma)는 원래 선물, 사람이 갖고 태어난 재능을 의미한다. 기독교에서는 어떤 사람에게 성령이 베푼 은총으로 인간이 얻게 된 능력을 뜻한다. 한국어로는 번역이 애매하지만 '존재감'에 가깝다. 공포에 의한 것이건 경외에 의한 것이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중요하게 인식되고 아무도 쉽게 무시할 수 없을 때 "카리스마가 강하다"라는 식으로 쓰인다.
흔히 외모 경제력 권력 지성 언변 등이 카리스마를 뒷받침하는 요소로 인식되지만 원래 카리스마 개념에는 이런 납득할 만한 원인은 없었다고 한다. 뚜렷한 인과관계 없이 상대방에게서 자발적인 동조와 굴복을 끌어내는 힘을 의미했다. 기독교에서 예수의 은총을 카리스마로 받아들이듯이.
25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이스트레이크GC에서 막을 내린 PGA투어 플레이오프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에서 합계 18언더파 262타로 우승컵을 들어 올린 토미 플리트우드(34·잉글랜드)는 '필드의 예수'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예수를 연상케 하는 헤어스타일과 수염, 예수를 닮은 얼굴, 경기 내용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항상 구도자의 자세를 잃지 않는 모습 등이 어우러져 빚어진 별명이다.
잉글랜드 사우스 포트가 고향인 그는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근처에 있는 로열 버크데일GC를 자주 찾으면서 골프와 가까워져 2010년 프로로 전향, 유럽투어인 DP월드투어에서 8승을 올린 실력자지만 PGA투어에서는 우승이 없었다. 'PGA투어에서 우승이 없는 선수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실력자'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가 164번째 PGA투어 출전 끝에 드디어 챔피언 자리에 섰다. 그것도 골프 사상 가장 많은 우승 상금(1,000만 달러, 약 140억원)이 따라오는 챔피언으로.
선한 카리스마를 풍기며 순례자처럼 경기에 임하는 그에게 골프의 신은 가장 빛나는 은총 즉 카리스마를 선물한 셈이다. 플리트우드는 이번 우승으로 PGA투어 첫 우승을 시즌을 총정리하는 투어 챔피언십에서 일군 사상 첫 선수가 됐고, 2018년 저스틴 로즈에 이어 페덱스컵을 들어 올린 두 번째 잉글랜드 선수가 됐다.
그가 뿜어내는 조용하고 선한 카리스마의 발자취는 곳곳에 선명하다. 나이키 계약 선수였던 그는 회사가 골프용품 생산을 중단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나이키 클럽을 사용하는 의리를 지켰고 캐디는 그의 어릴 적 동네 친구이고, 어린 시절 그를 지도했던 코치에게 지금도 배우고 있다.
그는 무명 시절 에이전트였던 23세 연상의 클레어를 아내로 맞았다.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도 있어 클레어는 "바보 같은 짓"라며 거절했지만 플리트우드의 끈질긴 구애에 2017년 결혼해 잘 살고 있다.
PGA투어의 한국선수는 물론 주변의 한국 사람들과도 따뜻한 카리스마를 나눈다.
플리트우드는 올해도 여러 번 우승을 놓쳤다. 6월 트레블러스 챔피언십과 2주 전 플레이오프 1차전 세인트 주드 클래식에서도 막판 역전패를 당했다. PGA투어 관계자들은 플리트우드가 실력은 좋지만 마음이 너무 여려 우승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았지만 선한 카리스마의 힘으로 163전 164기의 드라마를 완성했다. 공동 2위 패트릭 캔틀레이와 러셀 헨리(15언더파 265타·이상 미국)를 3타 차이로 제쳤다.
강한 카리스마의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는 사상 첫 페덱스컵 2년 연속 우승에 도전했지만 최종 합계 14언더파 266타, 공동 4위를 기록하며 기록 달성에 실패했고 임성재는 이븐파 공동 27위로 플레이오프를 마쳤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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