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때문에 주목받는 이색보험' 데이터센터도 가입하는 FM코리아의 권성준 대표
인공지능(AI) 확산으로 관심을 끄는 보험사가 있다. 바로 약 200년 역사를 가진 미국의 팩토리뮤추얼 인슈어런스컴퍼니(FM)다. 1835년 설립된 이곳은 특이하게 재물보험만 다룬다. 재물보험이란 공장, 창고 등 각종 시설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보상해 주는 곳이다.
설립된 지 190년 된 이곳은 2023년부터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오랜 역사에 비하면 늦은 편이지만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 AI 확산 등 정보기술(IT) 산업과 관련 있다. 최근 서울 을지로 사무실에서 만난 권성준 FM코리아 대표는 "정부가 100조 원을 투자해 AI 강국을 만드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며 "데이터센터, 반도체, 바이오 등 한국 산업이 FM과 잘 맞는다"고 말했다.

보험 가입하면 회사 주인 돼 이익을 공유
FM은 보험상품부터 회사 구성 등 많은 부분이 독특하다. 엄밀히 말하면 FM은 주식회사가 아니다. "FM은 보험가입자가 곧 회사의 주인이 되는 상호회사입니다. 이사회 구성원 13명 중 FM 직원은 1명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고객사죠. 따라서 일반 보험사와 달리 보험 가입자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어요."
이런 구조는 특이한 설립 배경에서 나왔다. 설립자 재커라이어 앨런은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에서 방직공장을 운영했다. 화재 위험이 있는 방직공장의 특성상 보험을 가입하려고 했으나 많은 보험사들이 위험 산업이라는 이유로 기피했다. 수년간 노력해 안전한 공장을 만들었으나 섬유산업이 화재에 취약하다는 인식 때문에 여전히 보험 가입이 힘들었다. 할 수 없이 앨런은 방직공장들을 모아 공제조합 형태의 보험사를 직접 차렸다. "사후 보상보다 사전 예방을 잘해서 안전한 공장을 만들자는 철학을 공유해 탄생했어요."
고객이 주인이라는 말은 이익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곳은 보험 가입 연차에 따라 이익을 차등 배분하는 '크레디트' 제도를 운영한다. "가입한 지 4년 미만 회사도 보험금 일부를 매년 환급 받아요. 20년 이상 가입한 곳은 연 15%를 돌려받죠. 회사 주인이 고객이니까 이익을 함께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축구장 900개 크기의 재난 연구시설 운영
보상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춘 기업 철학은 지금도 유지된다. 그래서 보험사인데도 절반 가까운 직원이 시설의 안전을 연구하는 공학도다. "전 세계 5,500명 직원 가운데 약 2,000명이 기계공학과 화학, 건축, 방재, 기후학 등을 전공한 공학도입니다. 이들이 각 산업시설과 FM 연구소에서 안전을 연구해요."
이를 위해 로드아일랜드에 초대형 연구시설을 운영한다. "축구장 900개 크기의 부지에 지진, 폭발, 화재, 강풍, 홍수, 정전 등 각종 재난을 연구하는 시설을 운영해요. 세계에서 제일 큰 재난 실험 연구소입니다."
이런 연구를 토대로 만든 'FM인증'은 업계에서 유명하다. FM인증이란 건축자재 등의 안전성 평가를 의뢰받아 시험을 통과한 제품에 FM에서 다아이몬드 형태의 표시를 붙여주는 제도다. "FM인증은 전 세계에서 통용돼요. 소방자재의 경우 FM인증 제품을 사용하라고 관련기관에서 권고하기도 하죠. 안전 표준 같은 제도입니다."
10년 뒤 닥칠 자연재해까지 예측…사이버 공격 사고도 보상
최근 FM에 가입 문의가 부쩍 늘어난 분야가 데이터센터다. "전 세계적으로 AI 사용이 늘면서 데이터센터를 운용하는 기업들의 가입이 늘고 있어요. 데이터센터는 단 1분도 멈추면 안 돼요. 무엇보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사후 보상보다 사전 사고 예방을 위해 FM에 보험 가입을 하며 안전 상담을 하죠."
눈길을 끄는 것은 통상 보장에서 제외하는 천재지변까지 포함한 보상 범위다. 이상 기후에 따른 태풍, 홍수, 지진, 산불 등 자연재해까지 보상 범위에 포함한다. 그래서 기후 위기 관련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공을 들인다. "기업에 영향을 미칠 만한 여러 자연적 요소를 평가해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공해요. 10년 뒤 닥칠 자연재해까지 예측하죠."
사이버 공격으로 발생한 화재, 시설 고장 등의 사고도 보장한다. "해킹까지 담보하지는 않지만 사이버 공격으로 발생한 폭발 등의 사고는 보상해 주고 출입 통제 및 보안 솔루션 등 개선책도 제시해요."
대신 보험 가입이 까다롭다. 가입 신청을 하면 내부 위험 관리 지침인 FM코드에 따라 해당 기업의 시설을 점검한다. "비밀 유지 계약을 맺고 산업 현장에 기술자를 보내 2주간 시설을 모두 살펴봐요."
이런 점을 높게 평가한 반도체, 바이오, 통신업체, 병원, 발전소, 호텔 등 다양한 곳들이 FM 보험에 가입한다. 심지어 정부 기관, 대학도 고객사다. "전 세계 6만 개 시설에 보험 서비스를 제공해요."
한 번 계약을 체결한 곳은 수십 년 가입자가 된다. 대표적인 곳이 중장비업체 캐터필러와 콘텐츠기업 디즈니다. 캐터필러는 100년이 넘었고 전 세계에 영화제작소와 놀이공원을 갖고 있는 디즈니도 77년 된 고객사다. FM 홈페이지를 보면 가입자가 주인인 상호회사답게 디즈니 전 임원이 이사회 구성원으로 나와 있다. "가입 기업의 44%가 20년 이상 된 고객이죠."
덕분에 FM은 탄탄한 재정 상태를 유지한다. "지난해 전 세계에 걸쳐 계약한 보험이 11억 달러, 약 16조 원입니다. 일반 회사의 자본금에 해당하는 금액이 매출의 두 배가 넘는 26억 달러, 약 37조 원이죠."

"재난은 피할 수 없지만 사고는 막을 수 있다"
권 대표는 보험업계에서 25년 이상 근무한 전문가다. KB손해보험에서 해외 사업, 영업, 보험심사 업무 등을 담당했고 에이온코리아보험중개에서 기업고객 상담 및 보험중개를 담당하는 상무로 일했다. "보험업계에서 오래 일하며 만족하는 삶을 살았는데 어느 순간 허전했어요. 돈을 많이 버는 것 이상의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죠. 이를 고민하던 중 FM의 기업 철학과 역량을 통해 우리 사회에 기여할 부분이 있다는 생각에 옮겼죠."
그는 한국을 FM 보험이 필요한 곳으로 꼽는다. "한국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산업 재해에 따른 사망자 숫자와 화재 발생 건수 등이 높아요. 가슴 아픈 일이죠. 이런 문제를 줄이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그가 회사의 전략으로 강조하는 것은 사고 예방이다. "자연재해 등 재난은 피할 수 없지만 사고는 막을 수 있어요.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해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철학이자 전략이죠."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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