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시인(詩人) / 정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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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여섯 문청 시절 나는, 시를 사랑하는 열아홉 살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녀의 행간을 곰곰이 사유해 보면,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 그 자체가 되어야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그녀는, 시와 시인의 동일성을 말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그녀는 시인의 몸과 사물의 의식을 한 몸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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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詩人) / 정이랑
배추씨를 뿌렸다/ 배추가 올라왔다// 다음에는 고추씨를 뿌렸다/ 고추가 주렁주렁 달렸다// 감자씨를 심으면 감자들이/ 고구마 순을 꽂으면,/ 고구마잎들이 고랑을 덮는다// 밭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평생 닮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청어』(2018, 천년의 시작)
스물 여섯 문청 시절 나는, 시를 사랑하는 열아홉 살 그녀를 처음 만났다. 가을 햇밤처럼 빛나는 눈빛의 처녀였다. 이미 한국 현대서정시의 대가(大家)들의 주옥같은 작품을 환히 꿰고 있었다. 시의 아름다움과 오묘한 시법을 자기 나름으로 터득하고 있었다. 어휘의 적절성, 작품 구성의 치밀함, 리듬과 미적 감각, 감동과 울림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따금 시에 푹 빠져 정신없이 사는 그녀를 보곤 하였다. 그 후, 각자 인생에 묻혀 온갖 풍상을 겪은 후에 시인이 되어 다시 만났다. 처서를 막 지난 오늘 아침, 정이랑(1969~, 경북 의성 출생) 의 「시인(詩人)」을 꺼내 읽다가 깜짝 놀랐다. '글의 풍격은 그 사람과 같다.(文如其人, 문여기인)'는, 동양 문학의 정수를 떠올리게 했다. 그녀는 시의 윤리성과 진실성을 질문하고 있다. "밭"이 "거짓말"을 하지 않듯, '시'도 그러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에서의 비유는, 허구가 아니라 세계의 진실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편이다. 그녀의 행간을 곰곰이 사유해 보면,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 그 자체가 되어야한다는 뜻이다. 시가 사라지면 시인도 사라지고, 시인이 침묵하면 시도 침묵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그녀는, 시와 시인의 동일성을 말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말하는 순간, 그 말은 이미 '작품'이 아니라 '자신'이 된다. 결국 그녀는 시인의 몸과 사물의 의식을 한 몸으로 보고 있다. '시인이 시와 같다'는 것은, 시의 상처와 아름다움, 모순과 비극을 그대로 감당해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이랑의 「시인(詩人)」속엔 "배추씨"가 그렇듯, "고추씨"가 그렇듯, 뿌린 대로 거둔다는 놀라운 통찰이 숨어 있다. 시인은 천문(天文), 지문(地文), 인문(人文)을 시 속에 심는 사람이다. 천지 만물이 시임을 선험적으로 알고 있는 천명을 받은 자이다. 대 자유를 꿈꾸며, 시 행간 속에서 시흥(詩興)을 불러내 노니는 자이다. 그녀의 말처럼, 시문(詩文)의 오묘한 깨달음을 얻으려면, 성정(性情)이 곧고 발라야 한다.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지만, 아무나 명시를 얻지 못하는 까닭은, 시와 시인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무릇, "마음에 느낌이 생기면 언어로 확립되고 언어가 확립되면 문장으로 표현되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이다.", "그러므로 조용히 생각을 모으면 천년의 세월도 접할 수 있고 천천히 얼굴을 움직이면 만 리를 내다볼 수 있다."(유협 『문심조룡(文心雕龍)』,「신사」편). 현대시가 번잡한 것은 '시와 시인''이 같지 않기 때문일까?
김동원(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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