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같은 인생이어도… 사랑과 함께라면 희망은 있다[주철환의 음악동네]

2025. 8. 25.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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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을 때도 집 지을 때도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옛날 제목엔 '사랑'이 많았다.

1990년대 들어 경쟁사(KBS)도 '사랑'을 앞세웠는데 이번엔 부부 얘기였다.

가사에 사랑(love)이 8번이나 나오는 애절한 노래인데 정작 '언체인드'는 한 번도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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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사랑과 영혼’ 주제곡 ‘언체인드 멜로디’

제목 지을 때도 집 지을 때도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한번 들어가 볼까 하는 느낌이 낯선 이에게 스며든다면 절반은 성공이다. 명성을 얻은 감독이나 작가라도 예외일 순 없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제목은 ‘어쩔수가없다’, 김은숙 작가의 신작 제목은 ‘다 이루어질지니’. 해석은 자유지만 창작자가 도화지에 마음을 그린 것만은 틀림없다. 어쩔 수가 없을지(비관 ‘헤어질 결심’) 아니면 다 이루어질지(낙관 ‘더 글로리’) 시간의 문이 열리면 감춰진 내부도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옛날 제목엔 ‘사랑’이 많았다. 이 두 글자로 시작하는 주말연속극(MBC)이 연거푸 시청률 70%를 넘긴 시절도 있었으니 바야흐로 1980년대였다. 명불허전 김수현 작가의 작품들로 ‘사랑과 진실’은 자매(효선 미선), ‘사랑과 야망’은 형제(태준 태수)가 이야기의 중심이었다.

1990년대 들어 경쟁사(KBS)도 ‘사랑’을 앞세웠는데 이번엔 부부 얘기였다. 제목부터가 좀 강했다. 펑크밴드 ‘사랑과 평화’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버무린 ‘사랑과 전쟁’이다. 형식은 드라마지만 예능국이 제작에 나선 사실로도 화제가 됐다. 소재들을 보면 현재 방송되는 ‘와 진짜 세상에 이런 일이’(SBS)를 제목으로 써도 감당할 만한 내용이었다. 독하기로 소문난 ‘이혼숙려캠프’(JTBC)의 원조 격이라 봐도 무방하겠다.

‘사랑과 진실’ ‘사랑과 야망’ ‘사랑과 전쟁’이 TV인 데 반해 ‘사랑과 영혼’(1990)은 영화다. 원제목이 ‘Ghost’인데 (그럴 린 없겠지만) 수입사에서 ‘유령’이나 ‘귀신’으로 직역했다면 극장 앞 문전성시는 이뤄내기 어려웠을 성싶다. 여주인공 데미 무어는 최근 다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전 남편 브루스 윌리스가 치매를 앓고 있는데 매주 방문하여 돌보는 걸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녀는 말한다. “이혼 뒤에도 삶이 있다. 모양이 다를 뿐 우리는 가족이다.” 나는 이 말이 이렇게도 들린다. “죽음 뒤에도 사랑이 있다. 잡히지 않을 뿐 마음은 움직인다.” 주말의 명화로도 여러 차례 방송된 ‘식스 센스’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초반 몇 분을 빼고 대부분 영혼으로 활약하는데 요즘 유행하는 ‘귀멸의 칼날’로도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다는 걸 현실의 두 사람은 전 세계에 유포 중이다.

‘사랑과 영혼’의 주제곡은 ‘언체인드 멜로디’다. 가사에 사랑(love)이 8번이나 나오는 애절한 노래인데 정작 ‘언체인드’는 한 번도 안 나온다. 감옥에 갇힌 죄수들이 사슬에서 풀려난다는 뜻의 ‘Unchained’(1955년 영화)가 출발점인데 흘려듣지 말아야 할 부분은 중간에 등장한다. 인생이 감옥이라면 시간은 죄수에게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올 거란 얘기다.

첫째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흘러간다(And time goes by so slowly)’, 둘째 ‘시간은 너무나 많은 걸 할 수 있다(And time can do so much)’. 첫째는 ‘어쩔수가없다’와 연결되고 둘째는 ‘다 이루어질지니’와 통한다. 요지를 새기며 계속 따라부르다 보면 어느새 절망은 희망의 전령사라는 믿음이 피어난다. 마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원곡 양희은)이 띄어쓰기(숨 고르고 읽기)에 따라선 ‘이루어질 수없이 많은 사랑’으로 바뀔 수 있는 것과 흡사하다.

명장면이 있어야 명화다. ‘사랑과 영혼’과 ‘타이타닉’엔 다른 듯 같은 장면이 나온다. 도자기 빚을 때, 그리고 뱃머리에서 바람을 맞으며 뒤에서 껴안는 장면이다. “절 믿으시나요(Do you trust me)” “믿죠(I trust you)” “그럼 눈을 떠보세요(Open your eyes)” “제가 날고 있네요. 잭(I’m flying, Jack)”. 도자기는 빚기 전 진흙에 불과하다. 믿음으로 통하면 함께 날 수 있듯이 사랑과 영혼을 입히면 진흙은 도자기로 거듭나 새 생명을 얻는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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