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쓰는 일에 애착 지닌” 한 검사 이야기 [기자의 추천 책]

이은기 기자 2025. 8. 2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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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 만에 검찰이 써 내려간 사과문이자 반성문이었다.

7월23일 검찰은 피고인석에 앉은 최말자씨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죄 유죄판결을 받았던 최말자씨가 재심을 거쳐 61년 만에 무죄 구형을 받아냈다.

최씨를 피고인이 아닌 '최말자님'이라고 지칭하고는 고개를 숙여 깊이 사죄하는 단발머리의 검사, 낯선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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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정명원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61년 만에 검찰이 써 내려간 사과문이자 반성문이었다. 7월23일 검찰은 피고인석에 앉은 최말자씨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검찰의 역할은 범죄 피해자를 범죄사실 자체로부터는 물론이고 사회적 편견과 2차 가해로부터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이 사건에서 검찰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작동했다. 그 결과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했을 최말자님께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 깊이 사죄드린다.”

그러고는 무죄를 구형했다. “1964년 5월6일 발생한 이 사건은 갑자기 가해진 성폭력 범죄에 대한 정당한 방위 행위이다. 과하다고 할 수 없으며 위법하지도 않다. 피고인에 대해 정당방위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해주시기를 바란다.” 그 순간 부산지방법원 352호 법정을 빽빽하게 메운 방청객들 사이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전국 곳곳에서 최씨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이들은 무죄 구형 내내 눈시울을 붉혔다.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죄 유죄판결을 받았던 최말자씨가 재심을 거쳐 61년 만에 무죄 구형을 받아냈다. 아직 선고가 남긴 했지만, 스스로를 지키기를 포기하지 않은 끝에 세상을 바꾼 최씨와 곁에서 그를 도왔던 변호인단과 여성단체 활동가, 시민들이 만든 승리다. 이 ‘역사적 재판’ 현장에서 한 사람이 더 눈에 띄었다. 최씨를 피고인이 아닌 ‘최말자님’이라고 지칭하고는 고개를 숙여 깊이 사죄하는 단발머리의 검사, 낯선 풍경이었다. 누구일까.

호기심 끝에 이 책을 펼쳤다. 그 검사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정명원 부산지검 공판부 부장검사다. 그는 자신을 “문장을 쓰는 일에 애착을 지닌 인간”이라고 소개한다. 앙상한 언어들이 오가는 ‘유무죄 세계’에도 “사람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기 위해 애쓴다. “공판검사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늘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버팀목이 될 수 있다”라는 사실을 “겨우” 알기 때문이다. 저자가 직업인으로서 ‘더 나은 검사’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분투했던 과정과 그가 마주했던 사람들의 세계가 이 책에 담겼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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