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 8개 자치구 특수학교 ‘0’… “갈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뿐” [심층기획-'님비'에 갇힌 특수학교]
‘특수학교는 혐오 시설’ 편견 여전
주민 반대에 설립 계획도 지지부진
일부 학생들 취학유예까지 떠안아
학부모들 “‘신의 아이’만 입학” 한숨
서울 학생 8% 매일 1시간 등교 전쟁
32% 자가용 등교… 가족 동원 ‘원정길’
원거리 통학 장애 학생에 악영향 끼쳐
“컨디션 저하, 공격적 행동 유발하기도”
“명성아, 학교 가야지.”

준비가 끝난 뒤에도 2차전이 남았다. 최씨 집은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2층. 최씨는 명성이 몸을 지탱하며 계단을 하나씩 내려갔다. 명성이가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최씨의 입에선 “끄응차”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단 한 층을 내려오는 데만 꼬박 5분이 걸렸다.
활동보조사와 명성이를 태운 장애인 콜택시가 집 앞을 떠나자 최씨는 그제야 한숨을 쉬며 땀을 닦았다. 매일 아침 등굣길 준비는 최씨에게 ‘전쟁터’다. 명성이를 보내고 출근을 하면 진이 빠지지만, 최씨는 힘들다는 생각보다도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학교가 가까우면 준비하는 데 좀 여유가 있을 텐데… 일찍 깨우니 안쓰럽죠.”

◆학교 가기 힘든 아이들
명성이가 탄 택시는 한강을 건너 달렸다. 소리에 민감한 명성이는 차 안에서 불편한 듯 연신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출근해야 하는 최씨 대신 명성이의 등굣길에 동행하는 활동보조사 신금환(66)씨는 “명성이가 피곤한지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앉을 때가 많다. 수업 시간에 졸기도 한다”며 “본인이 말을 못해서 그렇지 상당히 피곤할 것”이라고 말했다.
명성이가 탄 택시는 출발한 지 약 1시간 만인 8시35분쯤 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신씨는 “비가 오거나 길이 막히는 날은 학교에 가는 데만 1시간30분이 걸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학교에 가기 위해 매일 머나먼 ‘원정길’을 떠나는 장애 학생은 명성이뿐만이 아니다.

문제는 이런 원거리 통학이 장애 학생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는 점이다. 2013년부터 특수학교 교사로 일해 온 A씨는 “원거리 통학은 컨디션 저하의 요인”이라며 “단순히 피곤해한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컨디션이 안 좋아 타인에 대한 공격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특수교사 B씨는 “매일 먼 거리를 오다 보니 수업에 집중하기 어렵거나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학생이 워낙 많다”며 “출석률도 좋을 수가 없다”고 전했다.
◆서울 8개 자치구 특수학교 ‘0개’
장애 학생들이 먼 학교에 가는 것은 특수학교가 턱없이 부족해서다. 학령인구 감소에도 특수교육대상자 선정 학생은 매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특수학교 설립은 제자리걸음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특수교육대상 학생(12만735명) 중 특수학교 재학생은 25.7%(3만1027명)에 그친다.

윤덕주(46)씨의 딸 예린(15)이도 지적·뇌병변 중복 중증장애인이지만 일반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윤씨네 집이 있는 동대문구는 물론, 인근 중랑구와 성동구에도 특수학교가 없어서다. 윤씨는 강북구의 특수학교 진학을 두 차례 시도했으나 모두 좌절됐다.
윤씨는 내년에 고등학교에 가야 하는 예린이가 특수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윤씨는 “예린이가 지난해 ‘UBTF 신경변성’ 희귀질환까지 인정받았다. 일반 고등학교에 가면 비장애인 아이들이 딸을 이해해줄지 걱정”이라며 “특수교육 대상자는 늘어나는데 특수학교 입학은 바늘구멍에 소 들어가듯 경쟁이 심하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신의 아이’란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특수학교 설립 난항… ‘님비’ 여전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내 모든 자치구에 특수학교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쉽지 않다. ‘특수학교는 혐오 시설’이란 편견이 여전해서다.
중랑구 동진학교의 경우 주민 반대로 12년간 8번이나 부지를 옮기다 올해 초 겨우 첫 삽을 떴다. 당초 2017년이던 개교일은 2027년으로 10년이나 밀린 상태다. 성동구 성수공고 폐교부지에는 2029년 개교를 목표로 성진학교 설립을 추진 중이지만, 역시 과정은 순탄치 않다. 올해 6월 열린 주민 설명회에서 일부 주민들은 집회 신고까지 하며 반대에 나섰다. 이들은 “성동구는 명품 동네인 만큼 ‘명품 학교’를 지어야 한다”며 서울숲 인근 등으로 부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성진학교 개교를 기다리는 장애 학생 학부모들은 동진학교처럼 개교가 연기될까 봐 노심초사다. 명성이 엄마 최씨는 특수학교를 혐오 시설로 보는 시선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누군가에겐 ‘집값’, ‘불편함’의 문제일 수 있지만, 장애 학생들에게 특수학교는 교육권이자 삶의 질과 직결된 사안이다. “우리 아이들이 동네를 더럽히거나 범죄를 일으키기라도 하나요. 우리 아이들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장한서·이지민·김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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