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정상 탈냉전·실용적 사고 공통점… '경제 안보 동반자' 야심 보여라"
美국방부 부차관보 출신 전략가 마이클 시퍼
"동맹 현대화, 中 억제 동참 요구만은 아냐"
"국익 거래 양자관계→세계 전략 동반자로"
"경제안보·기술협력 장관급 협의체 만들길"

“‘동맹 현대화’를 단순한 ‘중국 억제 동참’ 요구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이제 한국은 첨단 기술 선도 기업을 보유한 ‘글로벌 플레이어(세계적 행위자)’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의 위상을 염두에 두고, 한국이 어떤 동반자가 될지 그 야심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보여 줘야 한다.”
미국 국방부 부차관보 출신 정책 전략가인 마이클 시퍼는 25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는 이 대통령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버락 오바마 1기 행정부 시절인 2009~2012년 국방부 동아시아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그는 1995년부터 10년간 다이앤 파인스타인 미국 연방 상원의원(캘리포니아·민주)의 선임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지금은 미국 전략 정책 컨설팅 회사인 스캘러 어드바이저스의 파트너로 활동 중이다.
20·23일 한국일보 서면·전화 인터뷰에서 시퍼 전 부차관보는 한미 동맹이 한미일, 나아가 더 광범위한 인도·태평양 역내 미국 다자 동맹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미국의 지역 통합 구상이 역내 패권을 노리는 중국과 직접 맞서는 식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억지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민주적 가치와 시장 기반 원칙들을 역내에 전파하면 그 결과 자연스럽게 중국이 고립되리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지금은 군사뿐 아니라 경제·기술 분야에서 전방위로 벌어지고 있는 전략 경쟁 시대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때 열리는 8·25 한미 정상회담은 앞으로 한미 동맹이 주로 국익이 거래되는 양자 관계에서 전 분야 전략 비전을 공유하는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봤다. 마침 트럼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은 탈냉전적·실용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지도자란 공통점이 있다고도 했다. 그는 이번 회담이 “산업 협력을 공동 안보의 시각에서 다루는 장관급 한미 경제 안보 협의체가 출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그는 제언했다.
전략 경쟁의 시대
-8·25 한미 정상회담이 갖는 의미는.
“지금은 군사적인 억제만큼이나 공급망과 기술 표준, 정보 네트워크 등을 통해서도 힘이 이동하는 시대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한국과 미국이 이런 시대 조류에 맞게 전략적 관계를 재구성할 수 있는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동맹 현대화’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한미 동맹 틀은 70여 년 전(6·25 전쟁 직후인 1953년 한국) 영토 방어를 위해 설계됐다. 두 정상은 이를 21세기 경쟁을 관리할 수 있는 포괄적 동반자 관계(파트너십)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국방 비용 분담, 경제 안보 협력, 대북 정책 등 다양한 의제는 단순한 양국 국익 차원을 넘어선다.”
-잘될 것으로 보나.
“복귀한 트럼프 대통령과 계엄·탄핵 국면에서 대통령이 된 이재명 대통령 사이에는 근본적 긴장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방비 증액 요구를 한국은 파트너십 강화 투자보다 보호세(protection money)로 받아들이고 있다. (관세 부과 등) 일방적 무역 관계 변화도 동맹 압박으로 간주된다. 이 대통령은 대북 긴장 완화와 전략적 자율성을 공약하고 당선된 인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적 압박이 (한미가 공유하는) 전략적 비전을 압도할 경우 동맹이 정권 교체에 취약하고 협소한 안보 체제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반면 두 정상이 탈냉전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점은 기회 요인이다.”

전통적 안보 동맹을 넘어
-언제나 안보가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다.
“오늘날 안보 과제는 군사·경제·기술 등 전통적인 분야 간 경계를 뛰어넘는다. 특히 경제 안보는 동맹 틀 변화가 필요한 최전선이다. 반도체, 배터리, 첨단 제조업에서 한국이 확보하고 있는 우위는 회복력 강한 공급망을 구축하고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한 취약성을 줄이는 데 필수불가결이다. 미국의 반도체과학법(미국 내 반도체 시설 투자에 보조금 지원)과 한국의 K-반도체 벨트 구상은 더 깊은 통합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한다. 다만 이런 잠재력을 실현하려면 중상주의 논리를 넘어 진정한 전략적 일치(strategic alignment)로 나아가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8·25 정상회담을 계기로 산업 협력을 상업 경쟁이 아니라 집단 방어(collective defense)로 다룰 수 있도록 ‘한미 경제 안보 대화’ 틀이 구축돼야 한다. 반도체, 배터리, 조선업 논의 착수는 신호탄일 뿐이다. 기술 표준, 연구·개발(R&D) 조정, 경제적 강요에 대한 공동 대응 등이 저 틀을 통해 총체적으로 조율될 필요가 있다. 기술 거버넌스는 핵심적인 동맹 확장 영역이다.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6세대 이동통신(6G) 등에 대한 투자는 한국이 미국의 신흥 기술 글로벌 표준 형성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한미 기술 동맹은 민주적 혁신을 촉진하는 동시에 기술권위주의적 규범에 대한 방어벽 역할도 할 수 있다.”
-군사적 억지력은 여전히 필수적이다. 북한의 역량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한미 동맹은 사이버 정보전(戰)부터 경제적 강요까지 회색 지대 활동 전반에 걸쳐 역량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호환 가능한 무기체계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 걸쳐 복원력(resilience), 대응, 회복에 대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워싱턴 선언(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70주년인 2023년 4월 한미 정상회담 때 채택된 선언)에 포함된 확장 억제(핵우산) 협의 확대 역시 중요하고 거듭 강조돼야 한다. 그러나 핵 시나리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게 한계다). 한미 동맹은 활성화하지 않은(non-kinetic) 위협들에 대한 대응을 조정하기 위한 메커니즘도 이제 필요하다. 예컨대 제재 공조나 공동 사이버 역량 강화 등에도 협의 기제가 마련돼야 한다. 핵심 기반시설(인프라) 보호부터 공급망 안보까지 민군의 역량을 통합하는 신개념 작전의 개발도 긴요하다.”
중국을 고립시키는 방법
-미국이 한국에 더 큰 인도·태평양 역내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동맹의 진화는 더 넓은 지역의 역학 관계와 분리될 수 없다. 이제 한미일 협력은 위기 관리 차원을 넘어 3자 간 메커니즘의 제도화로 나아가야 한다. 3자 정기 군사 연습, 통합 방위 계획, 조율된 역내 대응을 일상화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이 구상은 더 광범위한 다자 간 협의체 틀에 포함돼야 한다. 다만 목표가 중국을 억제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적 가치와 시장 기반 원칙들이 반영된 역내 구조를 구축하고 보장하는 게 지역 통합 구상의 지향점이다.”

-한미 동맹 현대화가 미국의 중국 견제 구상에서 비롯됐고, 한국이 곤란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걱정이 한국 내에 적지 않다.
“내 생각에 동맹은 무엇에 맞서느냐(what it is against)가 아니라 무엇을 추구하느냐(what it is for)에 의해 정의돼야 한다. 한미 두 나라가 70여 년간 공유해 온 관계와 가치에 기반한 긍정적 의제가 필요하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을 정착시키고, 무역과 경제 관계를 심화하고, 사람들 간 교류를 증진하고, 문화적 유대를 강화한다. 역내 모든 사람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미국과 한국부터, 일본, 호주, 뉴질랜드, 대만, 나아가 인도까지 민주주의 국가들을 하나로 결합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면 중국이 창조하려 하는 지역 질서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중국이 자연스럽게 고립된다는 뜻인가.
“그렇다. 동맹 구조를 억제에 기반할 필요가 없다. 단지 올바른 방향으로만 나아가도 중국과 효과적으로 경쟁하는 데 필요한 메커니즘이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가 그런 동맹 구조의 구축에 성공한다면 중국은 선택해야 한다. 거기에 반대할지 아니면 건설적인 일원으로 소속될지 말이다. 결국 중국을 억제하고 중국과 효과적으로 경쟁하는 데 필요한 전략을 갖게 되지만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라기보다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접근의 결과인 셈이다.”
양자 거래 관점 지양해야
-8·25 정상회담이 양국 간 ‘윈윈’이 되려면.
“여러 차원의 권력과 영향력을 통합하는 진정한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나아가야 한다. 단순한 양자 거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8·25 정상회담은 두 정상에게 민주주의 동맹국들이 권위주의 경쟁자들보다 더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상황에 적응할 수 있음을 보여 줄 기회다. 자기 사회를 방어할 만한 곳으로 만드는 가치와 제도를 보존하는 게 민주주의 동맹의 방식이다.”
시퍼 전 부차관보는 “정상회담 한 번으로 난제들이 해결될 수는 없지만, 동맹 변화를 위한 개념 틀과 제도적 장치는 이번 회담을 통해 마련될 수 있다”며 도출돼야 할 구체적 성과물로 △21세기 파트너십 공유 원칙을 명시한 동맹 현대화 관련 한미 공동 성명 △경제 안보 및 기술 협력 대화를 위한 장관급 정례 협의체 설립 △전통적 안보 협력을 넘어 동맹 가치를 드러내는 구체적 구상들에 대한 합의 등 3가지를 꼽았다.
그는 “한미 동맹은 협소한 양자 국익보다 더 광범위한 명분, 즉 양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이익이 되는 지역 안정, 민주적 가치, 경제적 번영 등을 증진시킬 때 성공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번 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무엇에 가장 집중해야 할까.
“무엇보다 한미 동맹이 한반도 문제에 국한된 시대를 우리가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앞으로도 북한은 한미 동맹의 중심에 있을 것이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고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제 ‘글로벌 플레이어’다. 그저 고립되거나(insular) 지역에 갇힌 나라가 아니다. 그렇다면 ‘글로벌 한국’의 야망은 무엇인가? 한국은 ‘글로벌 미국’의 동반자이자 선도 기업들을 보유한 첨단 기술 커뮤니티의 중심지다. 지정학(지리적 위치의 정치·안보적인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은 물론 지경학(국가가 경제적 수단을 정치·안보적으로 활용하는 현상을 다루는 학문) 시각에서 한미 파트너십이 어떤 모습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이 호혜적 방식으로 미국에 투자하려 할 때 그 투자 파트너십의 형태 같은 것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고 한미 동맹 협력을 심화할 수 있는 첩경이 거기에 있을 것 같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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