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과 누적] 에로스와 타나토스

여전히 잘못 쓰는 용어가 있다. 신디사이저가 그렇다. 돼지 꼬리(ð)가 아니라 번데기(o) 발음이다. 한글 표기는 신시사이저, 줄이면 신스다. 신시사이저는 여러 주파수의 소리를 합성해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악기다. 1960년대부터 대중음악에 쓰였지만, 거대한 크기에 초고가를 자랑했다. 비틀스 같은 밴드가 아니면 써볼 엄두조차 못 냈다. 이후 1980년대가 되면서 신시사이저는 가격과 크기 모두 경량화에 성공했다. 신스팝이 당시 정점을 찍을 수 있던 기술적 바탕이다.
전성기였던 만큼 1980년대 신스팝 명반은 부지기수다. 하나만 고를 순 없다. 그러나 2025년의 신스팝을 묻는다면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찬혁의 신보 <에로스(EROS)>(사진)다. 이찬혁은 망원경과 현미경을 함께 탑재한 작가주의 음악가다. <에로스>에서 그는 신스팝, 가스펠 등 장르 디테일에 치열하게 집착하는 와중에 명확한 주제 의식을 놓치지 않는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에로스는 세상을 향해 행동하는 창조 의지다. 그 반대인 타나토스는 본능적인 죽음 충동을 뜻한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비비드라라러브’는 에로스를 향한 타나토스의 반문으로 구성된 노래다. 타나토스는 “vivid lala love”라고 노래하는 에로스를 향해 “처음부터 그럴 만한 게 없었지”라고 부정하지만 결국 세상이 변할 거라고 외치는 에로스를 밀어내지 못한다. 마지막 곡 ‘빛나는 세상’의 가사가 그 증거다. “빛나는 세상은 오지 않겠지만/ 그런 걸 바라는 우린 빛이 날 거야.”
창조를 위해 에로스는 주체를 잡아채어 타자를 향해 내던진다. 그것이 충돌이든 합일이든 이 순간 어떤 ‘관계’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예술가란 관계를 통해 매몰된 진실과 아름다움을 구조하는 자일 것이다. <에로스>는 202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빛나는 성취로 기억될 것이다. 과연, ‘예술을 담는 병’이라는 찬사를 얻을 자격 있다.
배순탁 음악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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