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트럼프 만나기 전 한일 '미래·협력' 다졌다
日 '미래 지향'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
수소·AI 경제·산업분야 협력 및 워홀 확대
셔틀외교 복원 및 대미 협상력 제고 의도
과거사 진전 없이 미래 강조한 것은 한계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경제·통상 질서 아래 전략적 소통과 경제·안보·인적 교류 분야에서의 협력 강화에 합의했다. 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고 흔들림 없이 한일 및 한미일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1박 2일간 일본 일정을 마친 이 대통령은 24일 도쿄 하네다국제공항을 출발해 미국으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취임 후 첫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17년 만에 한일회담 후 공식 문서 발표
한일 정상은 23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회담을 갖고 △정상 간 교류 및 전략적 인식 공유 강화 △미래산업 분야 협력 확대 및 공동 과제 대응 △인적 교류 확대 △한반도 평화와 북한 문제 협력 △역내 및 글로벌 협력 강화 등에 대한 내용을 담은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한일 정상회담 이후 공식 문서를 발표한 것은 2008년 4월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야스오 총리 간 정상회담 이후 17년 만이다.
소인수회담(62분)과 확대회담(51분) 순서로 진행된 이날 회담에서 양 정상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한 공동 대응을 분명히 했다. 관세를 포함한 미국발 통상 압력과 미중 패권경쟁에 따른 국제 정세에 대응하려면 양국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을 포함한 역내 전략 환경 변화와 최근 새로운 경제·통상 질서하에 양국 간 전략적 소통 강화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같이하고, 안보·경제안보를 포함한 각 분야에서 정상 및 각급 차원의 소통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회담에서 "국제질서가 요동치고 있다"며 "가치·질서·체제·이념에서 비슷한 한일 양국이 어느 때보다 협력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시바 총리도 회담 후 공동언론발표에서 "경제, 안보 분야의 현재 전략 환경하에서 일한 차관 전략대화의 조기 재개에 더해 방위당국 간 대화 프레임워크도 활용하고, 일한미 협력 관점에서 일한 양국 간 협력 강화를 모색해 나갈 생각"이라고 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도 재확인했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을 위해 한미일 공조를 바탕으로 한 국제사회와 협력을 지속하기로 했다. 아울러 한일 및 한미일 협력 추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공동언론발표에서 "한일 관계 발전이 한미일 협력 강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계속 만들어 가기로 했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다.
경제·산업 분야 협력과 관련해선 수소와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의 협력을 강조했다. 또 한일이 함께 직면한 사회 문제로 저출산·고령화, 인구감소, 지방활성화, 수도권 인구집중 문제, 농업, 방재(재난 예방) 등을 꼽으며 공동의 해결방안 모색을 위해 당국 간 협의체를 출범키로 했다. 한일 젊은이들이 상대국에 장기 체류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 참여 횟수 상한도 기존 총 1회에서 2회로 늘리기로 했다.

'과거사'보다 '미래' 강조한 한일 회담
이번 회담에서 양 정상은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이며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를 위해 과거사 등 갈등 현안을 부각하기보다 '미래'와 '협력'에 방점을 찍었다. 공개 석상에선 한국 측 과거사에 대한 사과 요구나 일본 측 후쿠시마 수산물 재개 요청 등 현안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대신 이시바 총리는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죄가 담긴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을 언급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양국이 미래지향적 협력을 본격 추진하는 계기가 된 선언이다. 하지만 2023년 3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 간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기시다 총리는 "1998년 10월 일한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시바 총리의 발언이 특별히 진전된 입장은 아닌 셈이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24일 도쿄에서 브리핑을 갖고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논의가 있었으나 구체적 현안에 대한 논의라기보다 '이 사안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 '어떻게 다루는 것이 현재와 미래의 협력을 추동할 수 있을까' 등 철학적 인식에 기반한 접근으로 논의가 이뤄졌다"고 소개했다.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는 지혜를 발휘할 때"라는 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와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 확대 요구에는 "포괄적 논의는 있었지만,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한국, 대미 협상 앞 '한미일 협력' 주도 부각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양국 간에 '셔틀외교 복원', '미래 협력 강조'라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을 감안하면, 미국을 향한 메시지라는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과거사를 두고 갈등을 반복해 온 한일 관계를 한미일 협력의 '약한 고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 안보실장은 한일 정상회담 결과와 관련해 "우리가 일본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에 대해 미국도 긍정적일 것"이라며 "한미일 협력 강화를 실현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한미일 협력은 미국도 중시하는 과제"라고도 덧붙였다.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을 때마다 미국의 중재로 한미일 협력을 이끌었지만, 이 대통령이 이번에 일본을 거쳐 미국을 방문함으로써 한국이 한미일 협력을 주도하는 모양새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 측의 호의를 확보해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
다만 대미 협상력 제고를 위해 한일 협력을 강조하다 보니 과거사에 대한 일본 측의 전향적인 입장을 끌어내지 못한 것은 한계다. 최근 일본 정치의 우경화 흐름을 고려하면, 자칫 한국이 과거사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신호로 읽힐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도쿄=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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